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경화역에서 (2)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1. 4. 23. 02:27
한꺼번에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쇠뜨기 푸룻푸룻한 철길,
올리브빛 더미를 감싼 방수포 퍼덕이며 서쪽으로 달리던 화차와
좁아진 운동장 낡은 교사(校舍),
먼지가 사르락거리던 노을 빛 마루에 남겨진 시간과
가쁜 숨으로 가랑가랑한 파도를 밀쳐내는
경화동 2가,
큰 대섬 작은 대섬을 돌아나오는 할메 뱃가죽같은 파도의 소리와.
느티는 항상 작은 열매를 후둑이며 유혹했지만
타박타박 집으로 가는 소년, 동무같은 제 무게를 뒤로 남기는 땅거미,
나의 손 끝은 늘 그 저녁으로 닿지 못하여
골마루 촛칠광을 내던
맑갛게 반질거리던 깻돌을 만지작 거린다.
한꺼번에 가질 수 없는 것들.
타닥 타닥 교사를 무너뜨리는 발동기 엔진의 숨가픈 소리와
바다를 떠난 갈매기의 멀고 또 가까운 울음과 분필을 털어내는 소년의 늦은 오후는
배고픔만큼 촤르라락 쏟아지던 수돗물 소리 속에
느티의 그늘 속으로 달리던 철길로 흐려지면.
웃자란 피비풀의 목대가 화차에 스러져도
철길 옆 풀숲은 늘 무성하였으므로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은
늘 한꺼번에 흘러가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