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 육신에는 감각이, 영혼에는 충동이, 이성에는 원칙이 포함된다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9. 1. 7. 16:50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천병희 역, 숲 출판사


내 기억이 맞다면 이양하 선생의 페이터의 산문을 범우문고로 읽었었다.

(교과서에 실린 그이의 글도 함께....)

에세이라는 쟝르는 그냥 신변잡기의 글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은 일깨워준,

그럼에도 여전히 사변에 머무른 수필집이었다.

그 속에 인용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실제로 읽기까지는 강산의 변화를 댓번을 보내야 했다.


150년 무렵에 이런 사고를 문자로 남길 수 있는 그이의 세계관이, 그 시대가 놀랍다.

그것이 재산을 가진 시민의 이성과 신성에 한정된 것이긴 하겠지만, 시대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하기야 공자의 연대가 기원전 500년경이란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사유는 놀랄 일도 아니다.


명상록을 읽는 내내 이 같은 지적 유산이 불교의 바라밀행과 닮아 있음을 생각했다.

우주와 보편적 자연을 空과 佛性으로 바꾸어 읽어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이러한 어색한 책읽기를 반대하지만, 나의 집착은 딱 그만큼이 한계일진대.

대승적 바라밀행을 요구하는, 공동체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이성적 인간을 목표로 하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I, 14

나와 형제간인 세베루스 덕분에....

동등한 법률이 적용되고 평등권과 언론의 자유에 기초한 국가와

특히 피지배자들의 자유를 존중하는 왕정의 개념을 지니게 되었다.


II, 2


나라는 존재는 육신과 짧은 호흡과 지배적 이성에 불과하다...

이렇게 생각하라, 너는 노인이라고 말이다.

너는...더 이상 현재의 운명을 불평하거나 다가올 운명을 슬퍼하지 않게하라.

II, 5

시간마다 명심하고...꾸밈없는 위엄과 자연스러운 호감과 독립심과 정의감을 갖고 의연하게 행동하고....

네 모든 행동을 네 인생의 마지막 행동으로 간주한다면,

온갖 무목적성과 이성적 판단으로부터의 격정적인 일탈과 위선과 이기심과 주어진 운명에 대한 불만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너도 보다시피, 사람들은 몇 가지만 극복하면 신을 두려워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는가!

이런 가르침을 따르는 자에게는 신들도 더 이상은 요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II, 8

누가 남의 영혼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유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하다고 간주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자기 영혼의 움직임을 추적하지 않는 자들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

II, 9

항상 명심해야 할 것들은, 전체의 본성이 무엇이고,

내 본성은 무엇이며, 내 본성은 전체의 본성과 어떤 관계이고 어떤 전체의 어떤 부분인지와,

네가 그 일부인 자연에 맞는 것을 늘 행하고 말하는 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III, 4

이성적인 존재는 모두 자기와 동족이고,

만인을 보살피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맞다 해도 만인이 아니라 자연에 맞게 사는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III, 16

육신에는 감각이, 영혼에는 충동이, 이성에는 원칙이 포함되어 있다....

이성을 자신들의 의무라고 여겨지는 일로 인도하는 길라잡이로 삼는 것은,

신을 믿지 않는 자들과 조국을 배신하는 자들과 문을 걸어 잠그고 무슨 짓이든 하는 자들도 할 수 있는 일이다.


IV. 3

그러니 앞으로는 너 자신이라는 작은 영역으로 은신할 생각을 하라....

첫째, 사물들은 네 영혼을 장악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영혼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

불안은 오직 우리 안에 있는 의견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둘째, 네가 보고 있는 이 모든 것은 한 순간에 변하여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너 자신이 이미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경험했는지 항상 명심하라.

"온 우주는 변화이고, 인생은 의견이다."


IV, 36

만물은 변화를 통하여 태동하고 있음을 끊임없이 지켜보고,

우주의 본성은 존재하는 것을 변화시켜 같은 종류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를 무엇보다 좋아한다는 생각에 익숙해져라.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거기에서 생겨날 것의 씨앗이기 때문이다.


IV, 42

변화하고 있는 것들에게 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변화의 산물로 존재하는 것들에게 선한 것은 아무것도 없듯이.


IV, 51

언제나 짧은 길로 달려라. 자연에 맞는 길은 짧다.

그러면 너는 말과 행동에서 가장 건전할 것이다.


V, 6

또 어떤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자신이 (공동체를 위해서) 한 일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는 포도송이들이 열려 있으나 일단 제 열매가 맺힌 뒤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 포도나무와 같다.

...그와 같이 선행을 베푼 사람도 나팔을 불지 않고 다음 선행으로 넘어간다.

제철이 되면 포도나무에서 다시 포도 송이들이 열리는 것처럼.


* 흡사 반야를 깨우치고 이를 행하는 보살의 삶과 같다.


V, 13

나는 원인과 소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어느 것도 무에서 생성되지 않았듯이,

무로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모든 부분은 변화에 의해 우주의 어떤 부분으로 옮겨갈 것이고,

그 부분도 우주의 다른 부분으로 변할 것이며, 이런 과정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V, 16

나아가 각각의 존재가 만들어진 이유 또한 그 존재가 만들어진 목적이며, 각각의 존재는 그것을 지향한다.

각각의 존재가 지향하는 곳에 그의 목표가 있고, 그의 목표가 있는 곳에

각각의 존재의 이익과 선이 있다. 그런데 이성적 동물의 선은 공동체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생명이 없는 것보다 더 우월하고,

이성이 있는 것은 생명만 있는 것보다 우월하다.


V, 27

신들과 함께 살라. 자신의 영혼이 자신에게 주어진 몫에 만족하고,

제우스가 자신의 분신으로서 각자에게 지배자와 길라잡이로 준 신성이 원하는 것을 행하고 있음을

신들에게 늘 보여주는 자야말로 신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런데 신성이란 다름아닌 각자의 정신과 이성이다.


VI, 13

...보랏빛 귀족의 옷감을 보고는 이것은 조개의 피에 담궜던 양모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성교라는 것도 장기의 마찰과 진액의 발작적 분비라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멋진 발상인가.

그런 생각은 사물의 본질과 핵심을 건드려 그 사물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볼 수 있게 해준다.

너도 평생 동안 그렇게 함으로써, 사물이 너무 믿음직해 보이거든 옷을 벗겨서 그것의 무가치함을 꿰뚫어보고

그것이 뻐기는 후광을 걷어내야 한다.


VII, 12

똑바로 서라, 아니면 똑바로 세워질 것이다.

VII, 61

불의의 공격에 대비하여 꿋꿋이 서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삶의 기술은 무용의 기술보다는 레슬링의 기술과 더 비슷하다.


VIII, 7

인간의 본성은 각자에게 제 몫의 시간과 실체와 원인과 활동과 경험을 자격에 따라 공평하게 배분하는 한

결코 방해받을 수 없는 이성적이고 정의로운 본성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물의 개별 특징을 비교하지 말고 한 종의 전체를 다른 종의 전체와 비교하도록 유의하라.

VIII, 27

너에게는 세 가지의 관계가 있다.

하나는 너을 담고 있는 그릇과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거기에서 모두에게 일어나는 것의 모든 원천인 신적인 원인과의 관계이고,

나머지 하나는 더불어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VIII, 36

네 인생 전체를 그려보고 낙담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네가 겪었고 겪게 될 온갖 어려움을 한꺼번에 떠올리지 말고,

그때그때 현재의 일과 관련하여...나아가 너를 짖누르는 것은 미래도 과거도 아니고 언제나 현재라는 사실을 상기하라.

그러나 현재는 네가 그것만을 떼어서 살펴보고, 또 네 마음이 그런 사소한 것도 감당하지 못할 경우 네 마음을 나무라고 나면,

그 의미는 축소될 것이다.

VIII, 46

인간에게는 인간에게 맞지 않는 사건이 일어날 수 없다...그렇다면 각자에게 통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 일어나는 것인데

어째서 너는 네 운명에 불만인가?

보편적 자연은 너에게 네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가져다주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VIII, 50

보편적 자연은 자신의 바깥으로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보편적 자연은 자신으로 한계가 정해져 있음에도

자신 안에서 상하거나 노후하거나 쓸모없어 보이는 모든 것을 자신으로 변화시켜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다른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IX, 5

무엇을 행하는 것 뿐 아니라, 무엇을 행하지 않음으로써 불의를 저지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IX, 17

위로 던져진 돌에게는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악이 아니고,

위로 오르는 것이 선이 아니다.

IX, 42

네가 어떤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네 본성에 맞는 행동을 한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 대가를 바랄 것인가?

그것은 눈이 보는 행위에 대하여 대가를 요구하고,

발이 걷는 행위에 대하여 대가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

마치 눈과 발이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만들어졌고 자신의 고유한 소질에 맞게 그 목적을 달성함으로써 대가를 받듯이,

선행을 베풀도록 태어난 인간도 선행을 베풀거나 공동체에 유익한 다른 일을 행함으로써 태어날 때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X, 4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태고적부터 너에게 미리 정해져 온 것이다.

그리고 원인들의 연쇄는 태고적부터 네 존재와 이 일의 발생을 함께 엮어놓았던 것이다.


X, 6

나의 첫번째 원칙은 나는 자연에 의해 지배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두번째로, 나는 다른 동종의 부분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을 명심한다면, 내가 부분인 한 전체에서 내게 할당된 그 어떤 것에도 나는 불만을 품지 않을 것이다.

전체에 유익한 것은 결코 부분에 해롭지 않은 까닭이다. 전체는 자신에게 유익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내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본성의 공통점이다.


X, 16

이제 더 이상 선한 사람은 어떠어떠해야 하는 지 토론하지 말고, 그런 사람이 되라.

X, 17

항상 시간의 전체와 실체의 전체를 상상하라. 그리고 모든 개별 부분은 실체에 견주면 무화과 씨에 불과하고,

시간에 견주면 송곳을 한 번 돌리는 순간에 불과하다.


XI, 10

"어떤 자연도 기술에 뒤지지 않는다." 기술은 여러 가지 자연현상을 모방하기 때문이다.

XI, 18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람들의 행동이 아니다....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실은 그들의 행동에 대한 우리의 의견이다.

따라서 우리의 의견을 근절하고 그들의 행동이 끔찍하다는 판단을 버릴 각오를 하라. 그러면 분노는 가라앉을 것이다.

...인간의 성격은 감정에서 자유로와질수록 그만큼 더 힘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슬픔이 허약함의 표시이듯, 분노도 허약함의 표시이다.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인간은 상처받고 항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XI, 29

쓰기와 읽기는 네가 먼저 배우기 전에는 남을 가르칠 수 없다.

인생은 더욱 그렇다.


XII, 1

그리하여 네가 생을 마감하게 되어 다른 것은 모두 포기하고 네 지배적 이성과 네 안의 신적인 요소만을 존중하고,

언젠가는 살기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자연에 맞는 삶을 시작하지 못한 것을 두려워한다면,

너는 너를 낳아준 우주에 어울리는 인간이 될 것이며,

네 조국에 더 이상 이방인이 되지 않을 것이며,....이런 것 또는 저런 것에 더 이상 매달리지 않을 것이다.


XII, 6

도저히 해내지 못할 것 같은 일들도 연습하라.

많이 써보지 않아 다른 일에는 느린 왼손도

고삐는 오른손보다 더 단단히 잡는다. 왼손은 이 일을 익혀두었기 때문이다.


XII, 36

인간이여, 너는 이 거대한 국가의 시민이었다. ...

너를 그 국가로 데려다준 자연이 너를 그 도시에서 내보내기로서니 뭐가 가혹한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나는 5막이 아니라 3막만을 연기했을 뿐이오." 좋은 표현이다. 그러나 네 인생에서는 3막이 연극 전체인 것이다.

왜냐하면 언제 끝날 것이지 결정하는 것은, 전에는 너의 구성에, 지금은 너의 해체에 책임이 있는 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는 어느 쪽에도 책임이 없다. 그러니 호의를 품고 떠나라,

너를 해고하는 자도 호의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