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 토오루 - 변경에서
딸내미 책장에서 찾아낸 만화, 이즈 토오루 작품집, <변경에서>
기찻길에 대한 이야기로서, 당연히 나의 블로그에서 언급해야겠다.
아울러 그 기술적 바탕이 토목기초, 최근의 적확한 (사실상 일본식) 용어로 지반 地盤의 이슈들을 다루고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Izu Toru 伊図透 의 단편만화집 표제작 <변경에서> 境で에서는 철도 건설과정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한 단면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유통혁명이라고 볼 수 있는 '국가적' 사업인 철도의 부설을 위해,
중앙에서 파견된 철도기술자는 책상 물림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정치화되어 있고 또 사태를 정치적으로 대응한다.
철도현장에서의 범죄보도를 국가 반역죄로 몰고 가는데 있어서는 동서와 고금의 이편 저편이 다르지 않다.
여기에 철도건설현장의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 단순 노동 신입으로 들어온 초보기자가 긴장의 축이다.
그러나 정작으로 우리가, 오늘의 우리가, 관심있게 지켜보고픈 사내는, 케니티라고 불리는, 닳고 닳은 반장급 인물이다.
"난 이 일이 좋다."라고 자기 위안과 합리화를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고픈 사내...
그리고 부조리한 현실에서 정의와 부조리에 어느 쪽에도 피해를 입고 싶어하지 않는,
오늘의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사내...
콘크리트 바이브레이터를 다루다 기초 콘크리트 속으로 매몰되는 인부와
이를 구할 방도가 없기에 그냥 매몰시키고 작업 일정을 맞추어 나가는 비인간적 구조 속에서,
작가는 중앙에서 파견된 기술자가 덜 마른 타르가 칠해진 침목에 미끄러져 타설직후의 콘크리트 속에 매몰되는 반전을 보여줌으로써,
오늘의 우리를, 현실 속에서 살아 버티는 사내를 위무한다.
"난 이 일이 좋다니까."
그러고도 만화는 '이 일을 할 사람이 대기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한) 현실을 잊지 않는다.
대체 가능한 노동력은 빼어먹은 철근과 동일한 소모품인 그러한...
오랜만에 좋은 만화가를 만났다는 기분이다. 박흥용 이후로...
P.S
약간의 기술적 오류를 언급하자면, 만화 속의 기초 콘크리트는 두 종류이다.
하나는 매스 콘크리트라고 불리우는 문자 그대로 흙을 대신하는 구조체이고 (이 경우라면 철근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상부 구조물을 받치는 기초로서 땅속에 들어가는 콘크리트이다.
(이 경우에는 철근이 필요한 수준에서 충분히 들어간다. 물론 사람이 빠질 정도는 아니다.)
만화 속에서 노동자의 죽음은 전자에 기인하고-여기에서는 철근을 빼먹었고 시공한다고 설정되어 있다-,
철도 기술자의 죽음은 후자에 해당한다-동일하게 철근을 빼먹고 시공비를 줄였다고 되어 있다.
여기에 조금의 억지가 놓여있다. 왜 그곳에 역청재를 입힌 침목이 있어야 하는지도 의문이지만.
아울러 만화가 언급하는 지반의 보강을 위한 보강액 주입은
사실상 환경적 위해보다는 시공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는 공법이다. 만화적 시공간에 얼추 어림잡아 보자면.
물론 이 억지와 기술적인 이해의 부족이 만화적 설정을 방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 전공자에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