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유신, 이노우에 가쓰오 저, 이원우 옮김, 일본근대사 시리즈 1, 어문학사
머리말
1960년대가 되면서 베트남 전쟁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아시아의 전통사회가 재평가되기 시작... 전통문화. 사회의 세계적인 재평가 동향을 이어받아 1980년대부터 일본에서도 에도 (7쪽) 시대 후기를 바라보는 견해가 새롭게 변하고 있었다. 이전의 일본문화는 서양에 비해서 반미개라고 규정되었다. 일본도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그러한 평가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특히 민중 역사 연구분야의 전통사회를 새롭게 해석... 막부 외교도 성숙한 전통사회를 배경으로 그 역량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극동의 동쪽 끝이라는 지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일본은 전통사회가 발전된 상태에서 개국을 받아들여서 서서히 정착했고, 그리하여 일본의 자립을 지켰다고 하는 것이 이 책의 일관된 견해이다. (8쪽)
근대 국제법
... 서양에서는 18세기 이후 외교와 전쟁, 조약, 무역 등의 관행을 축적하여 국제법이 만들어졌다... 19세기초의 '빈 Wien 체제 Wien System 1815년'에서... 외교사절 제도와 의례가 정해졌다... 이 무렵의 국제법은... 민족자결권이 없는 등... 현대국제법과 구분하여 근대국제법이라 부르며, 막말 메이지시기에는 '만국공법'이라는 이름으로 청에서 번역되어 일본에 소개되었다.... 근대국제법도 주권국가를 하나의 단위로 하고 있으며 국가의 법적 주권이 인정되고 내정불간섭원칙과 법률상의 국가평등권이 생겼고, 전쟁에서 시민과 포로를 보호하는 '전쟁조규'도 있었다.
... 해상에서의 관행도... 영해에서는 무해(無害) 통항권이 보장되고, 당시에는 포탄이 떨어지는 범위가 3해리로 정해져 있었고 안쪽 바다가 만(灣)이었다. 만 입구 폭이 6해리-11km-(17쪽) 이내이면 영토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에도 만은 만 입구의 폭이 약 7km... 영토의 일부로 취급된다.
... 1853년...페리의 일본 번선단(番船團)의 저지를 물리친 무력시위에 의한 에도만 내 무단침입은 영토에 대한 무력 침입이며, 일본 국법을 위반함과 동시에 페리 자신이 준수한다고 말한 문명국의 관행, 근대국제법에도 완전히 위반되는 것이다.
... 그러나 이것(근대국제법)은 서양의 기독교 국가에만 타당한 '유럽 공법'이었다. (18쪽)
...페리는 1852년 ...(미국의) 동쪽 해안에서 대서양을 돌아 출항...국무부로부터 '일반명령'이 하달되었다. 그것은 (미국) 대통령에게는 선전宣戰의 대권이 없으므로 ...자위상 필요한 경우 이외에는 절대로 무력에 호소해서는 안된다며 선제공격이 금지되어 ...'평화외교'라고까지 평가되어 왔다.
...일반명령은..이전 모리슨 호 사건 (일본)표류민을 반환하기 위하여 내항한 미국상선을 포격한 일본을 자국의 표류민조차 구조하지 않는 비인도적...반미개의 약소국민으로 평가했다...미국 국무부는 이러한 반미개 일본에 대한 논의나 설득을 당당한 병력 시위에 뒷받침받아 추진하는 것으로 하여 유럽국제법으로부터 일탈하는 것을 허가했고...전함대를 진격시켜 교섭을 개시하도록 페리에게 지시했다. (20쪽)

네덜란드 별단풍설서 ( 別段風説書)
미국 대통령의 서한을 에도만에서 전달한다는 페리의 요구에 대해....막부수뇌는 (서한수리의 명령을) 결단을 내닐 이유는 ...네덜란드 국왕의 충고와 아편전쟁에서 중국이 패한 선례-(전쟁 패배 배상금과 영토 할양), 그리고 (일본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이면서 군사력이 정비되어 있지 않은 점-(에도라는 인구 100만의 소비도시의 해상운송 보급망의 문제, 해안에서 3km로 함포 사거리 이내에 위치하여 '국난'이 될 수 있다.)-이 그것이다. (22쪽)
... 네덜란드는 에도시대 초기부터 네덜란드 풍설서라는 형태로 매우 간단한 외국정보를 매년 막부에 보내고 있었다. (23쪽)
*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 나가사키 데지마(出島)의 상관장(商館長)이 작성
... 페리가 내항(페리 흑선 내항, 1853년)하기 전년도인 1852년의 별단풍설서는 페리에게 일본으로 가도록 명령이 내려진 사실과 그 목적은 첫째로 통상, 둘째로 저탄소-석탄보급항-라고 명기되어 있고, 상륙과 포위전투 준비를 하고 무기를 적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렸다. 막부는 페리의 내항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이다. (25쪽)
이상 여러가지 면에서 판단하여 막부는 '대국인 중국'도 패배하였다고 하여 그것을 전례로 피전 披戰 방침을 택했던 것이다. (26쪽)
(미국의 요구는 1) 중국에서의 생사 生絲, 차의 수입과 목면 및 아편의 수출 2) 고래기름을 위한 포경선의 일본연안 출어 및 조난선원 보호 3) 골드러시로 서해안의 캘리포니아와 중국과의 항로 필요성과 중국인 노동력의 공급을 목적으로 하는 통상, 보급, 조산선원 보호 등이었다. ) (27쪽)
(1837년으로 페리 제독이 일본에 상륙하기 17년전의 일인 모리슨호 사건과 그 때의 비인도적 표류민 거부에 대해) 인도에 대한 죄가 국제법상으로 확정된느 것은 남경대학살과 유대인 대학살 등이 추궁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이다. 하물며 근대 국제법은 주권국가라는 배타적 시스템 위에 성립되어 있으므로 내정 불간섭이 지배적이다. 표류선원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다른 나라에 전쟁을 선포하는 일은 가령 17년전의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근대 국제법에서 인정되지 않았다. (31쪽)
미일 화친조약의 체결
미일화친조약 전 12조는 1854년... 막부의 전권사절과 페리 사이에 4번의 정식회담을 거쳐서 체결되었다.
... 문제점의 하나는 영사주재에 관한 조항이었다. (33쪽)... 일문에눈 미일 양국이 인정하면 영사를 둘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반면 영문에는 어느 한쪽이라도 인정하면 영사를 둘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일본은 영문과 일문의 차이를 교섭 당시에는 몰랐던 것이다. 결국 일본은 영사 주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제9조의 편무적 최혜국 대우는... 서양에서는 쌍무적인 최혜국 조약이 일반적인 것을 일본을 몰랐다고 생각한다. 명백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 화친조약 제5조는 미국인의 상륙을 인정하고 시모다에서 통행할 수 있는 유보(遊步 please within) 거리를 '7리'로 규정하고 있다. (34쪽)
... 외국인의 국내 통행권은 문명국끼리라면 원칙적으로 자유 통행이다. 그러나 막부는 외국인의 자유통행을 인정하지 않을 것, 그리고 그 통행범위를 좁힐 것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것은 나중에 통상조약에서 거류지 무역의 규칙과 외국인의 유보범위 한정과 어우러져서 외국상인의 국내 시장 진출을 저지하고 일본 국내시장을 방어하는 중요한 사항으로 전개되었다. (36쪽)
러시아의 내항
1853년 7월 네덜란드의 별단풍설서는 페리 내항과 동시에 러시아가 동해로 나갈 준비를 했다고 알렸다. 러시아는 페리의 일본 원정을 알고 준비에 들어갔다. 일본을 둘러싸고 서양 열강의 대립과 협조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일본의 북방 사할린과 지시마 열도의 국경은 확정되어 있지 않았다. (37쪽) 국경 교섭이 다른 열강에는 없는 제1의 교섭의제였다. (38쪽)
...일본인이 사할린 섬을 유라시아 대륙의 반도가 아니라 섬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도 19세기 초였으며, 서양인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겨우 19세기 후반에 들어설 무렵이었다. ...아아누말로 '인간의 조용한 대지'인 채로 였다.
위와 같이 러일 양국은 국경 교섭에서 선주 소수민족의 소속을 다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선주 소수민족인 아이누 민족의 고유한 생활 영역과 독자적인 문화를 무시한 것이다. (39쪽)
...(러시아가 요구한 국경교섭과 통상의 요구에 대해) 무역이 국가를 부유하게 한다는 설은 국가 간의 경제력 격차가 클 경우, 준비하지 않고 무역 관계에 들어가면 후발국의 재래 산업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는 것으로 , 그것은 곧 '통상은 국가의 손실'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무역 주도권의 유무와 경제발전 격차에 의한 것으로, 그 점에서 일본 해운력이 뒤처져 있다는 점과 값비싼 물건, 공업제품을 서양이 제조하고 있는 점은 (일본의 러시아 응접 담당자) 가와지가 지적하고 있는 그대로이다. (41쪽)
...(러시아에 각서를 내어주는 궁지에 몰려) 사실상 러시아에 편무적 최혜국 대우를 허용하고 그 후에도 각서의 취지를 어기지 않았따. 게다가 이것은 미일화친조약 체결보다 2개월이나 이른 체결이었다. (42쪽)
사략선 私掠船
당시 해전에서는 전함끼리 해전이 벌어졌지만, ...적국의 상선 포획도 중요시...전함에 의한 적국의 상선포획은...'해상포획'이라 부리면 시행...당시는 '포획증서'가 수여된 경무장을 한 상선들도- 사략선이라고 불리는- 포획을 수행했다. 또한 포획증서가 수여된 제3국의 경무장 상선들이 포획을 수행해도 괜찮았다. ...이처럼 19세기 중반까지의 서양의 해전은 해적과 마찬가지로 야만적인 전투였다.
해적과 마찬가지인 사략선으로부터 자국상선을 보호하는 것은 대영제국 해군으로서도 부담이 되는 일...크리미아 전쟁에서 영불 양국은 중립국에 대한 포고를 발포하고, 양국이 사략선을 그만둔다고 선언했다. 영불의 사략선 폐지포고는 크리미아 전쟁 후 파리회의에서 인정되어 해전의 문명화를 이끌었던 것이다.
이 포고는 에도에도 보내졌다. 단 러시아는 그와 같은 선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43쪽) ...중국과의 아편밀매 등으로 엄청난 이득을 얻고 있던 ...(영국의) 상선단을 러시아 측의 해상포획으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영국함대는 ...러시아와 싸우기 위해 ...일본 북방수역으로 전개했고, 중립국과 같은 위치에 있었던 일본으로의 기항을 요구했다. 전시 국제법은 군함이 중립국에 기항하는 것에 대해 많은 제한을 두었지만 인정하고 있었다. (44쪽)
러일 화친조약
(1854년 영불과 러시아의 대전투에서 러시아가 대승한 후) ...국경문제는 지시마(쿠릴) 열도의 경계를 이투루프와 우푸프로 하고 사할린 섬은 경계를 '나누지 않기'로 합의했다. 사할린은 '나누지 않는다'라고 하면 후에 현상 변경이 있을 수 있는 잡거 (雜居)이므로 국력이 약한 일본이에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나누기 어렵다'며 현상유지적인 잡거로 할것, 혹은 사할린 아이누의 생할범위를 일본령으로 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러시아가 거부했다. (47쪽)...3개항을 개항하고 영사재판권이 쌍무적이라는 점 등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미일화친조약에 따라 러일화친조약 9개조항이 1854년 체결되었다. (48쪽)
지리적 조건
...1855년 크리미아 전쟁에서 동유럽의 러시아군은 패배하였지만, 러시아 태평양함대는 격침되지 않았다. 크리미아 전쟁 패배 후 흑해로의 출구를 봉쇄당한 러시아는 태평양 방면으로의 진출에 다시 힘을 쏟았다. 이렇게 하여 크리미아 전쟁 후에도 오호츠크 해의 러시아와 동중국해의 영불은 서로 버티며 대항하는 상황이었다. (50쪽)
열강의 관심은 일본보다 시장으로서의 경제적 가치가 훨씬 큰 중국에 집중되어...열강의 경제진출에 대한 중국 재래산업의 저항은 강력했고 대영제국 제1의 상품인 목면의 판매조차 성공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영국은 거액의 무역적자가 누적되었기 때문에 아편전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편, 해양국가인 일본은...거대한 경제시장인 중국의 동쪽에 있는 긴 활같이 생긴 열도라는 지형적 조건과 더불어 이 활같이 생긴 열도가 오호츠크 해 쪽의 러시아, 동중국해 쪽의 영국과 프랑스, 태평양 쪽의 미국 등 각각의 교두보 위치에 해당하여, 그 때문에 일본은 열강의 세력 균형이라고 하는 지형상의 고유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51쪽)
두 가지의 개국론
페리가 내항한 1854년에는...에도만 앞바다에 7개의 포대가 축조되기 시작하여여...1855년에는 나가사키에 해군견습소가 개설..1856년에는 양학 연구소에 해당하는 번서조소(蕃書調所)도 개설...나중에 개성소(開成所)로 개명되었다. 번서조소는 서양서적을 (52쪽) 번역하여 출간하는 곳으로 특히 중국에서 수입한 한역 서적의 출판간행은 눈부실 정도였다. <해국도지>와 <만국공법> <연방지략-미합중국사> 등 막말 일본에 큰 영향을 끼친 중국의 한역본도 출판 간행되었다. (53쪽)
1856년 막부는 '무역이 부국강병의 기본인가"라고 자문 (53쪽)...막부는...민간무역에 의한 부국론, 즉 적극적 개국론을 주장하게 된다. 이에 비해 막부의 실무관료 중심이 되어 ...어쩔 수 없는 개국이라면 당시 용어로 온건책, 즉 소극적 개국론을 주장했다. (54쪽)
막부는 애로호 전쟁-Arrow Incedent 제2차 아편전쟁-에서 아편전쟁으로 이어진 대국 중국의 거듭된 패배에 위기를 느낀 것은 사실이며, 막부는 에도에서의 쇼군의 알현과 교섭을 '만국의 상례'로 인정하게 된다. (1856년 부임한 미국총영사 해리스와) 쇼군 이에사다와의 알현이 1857년 10월 이루어졌다. (55쪽)
일본의 중대사건
(막부 수뇌와의 면담에서 해리스는 예고하고 있던 일본의 중대사건에 대해 2시간에 걸친 대연설을 했다. (55쪽)
..일본을 친구로 생각하고 있는 미국은 다른 곳에 영토를 취득하는 것을 금지하고...영국은 스털링이 체결한 영일협약이 불만이며...러시아는 사할린과 에조치 에대한 영토적 야심이 있다. 지금 애로호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영국, 프랑스의 위협이 일본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아편무역을 하는 영국의 해악도 있다. 어느 전쟁에도 가담하지 않은 미국은 일본을 위해서 아편을 전쟁보다도 위험하게 생각한다면 영국의 위험과 미국의 우호, 평화를 강조했다. "미국과의 조약이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무역은 이익을 얻을 것이다."라고 단언한다....일본에 불만이 있는 영국군은 애로호 전쟁 -Arrow Incedent 제2차 아편전쟁- 이 끝나면 곧바로 일본으로 향할 것이며 통상조약을 재빨리 체결해야만한다고 설득했다. (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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