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28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톺아 읽기 (3) - 무지역무득 無智亦無得, 무지증무득 無智證無得

반야심경의 많은 축약이 경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지만, 무지역무득 無智亦無得 이란 구절 역시 그러하다. 단순하게 새기자면, 앎 혹은 지혜도 없고 또한 얻을 것도 없다, 정도이다. (중국식 한자는 知와 智 의 구분이 명확지 않은 걸로 알려져 있고 갑골문엔 知보다 智가 먼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智 는 사냥 혹은 전쟁의 기술 쯤에 해당하는 앎이나 지혜이다.) 좀 더 친절하자면, 앎 혹은 지혜가 없으니 얻을 것도 없다로 연결시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 앎은 무엇이며, 무엇에 대한 앎이고, 얻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얻는다는 것인가? (질문을 좀더 해 보자면, 무엇으로/무엇을 통하여 알게되고, 무엇으로/무엇을 통하여 얻게되는가, 이다.) 이 문구의 처음을 따라가 주어를 찾아보면, 是故空中, 즉, 공..

반야바라밀다심경 - 唐 지혜륜 智慧輪 스님 본

*반야심경에는 廣本(大本)과 略本(小本)이 있어 흔히 암송하는 반야심경은 원숭이 오공(悟空:悟字배의 스님이라는 설이 있다. 그보다는 공을 깨쳤다는 게...)을 데리고 오천축국을 다녀온 삼장법사 현장 스님의 약본이다. 결론적으로 인연과 서사敍事가 빠져있어 이해하기 힘들다. 여기서는 지혜륜 智慧輪 스님(이 분도 삼장이시다)이 번역한 광본의 반야심경을 옮겨둔다. *불경은 듣기(聞)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쁨으로 연습(學)하고 실천(行)하는 데 의미가 있다. 광본의 처음과 끝은 그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약본의 정종분(正宗分)은 그것을 잘라버린 것으로 불교를 개인적이고 폐쇄적이며 수동적으로 만들 여지가 있다. 般若波羅蜜多心經 唐上都大興善寺三藏沙門智慧輪奉 詔譯 如是我聞。一時薄誐梵。住王舍城鷲峯山中。與大苾蒭眾。..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톺아 읽기 (2) -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불교적 세계관에서 물질의 특성을 논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세 마디는 재미있다. 많은 특성들 중에서 대표적인 셋 만을 논한다고 볼 수도 있고, 그 셋이 특수한 관계와 조건하에서의, 곧 의존적인 의미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후자를 지지하는 편이다. 그리고 불(不)은 '없다'가 아니라 '생기지 않는다' (생기지 않게 해야한다)로 읽는다. 쌍으로 말하여진 물질의 성질(드러남, 연기로부터의)은 설명의 대칭성을 갖는다, 고 보아야 한다. 이제 다시 읽어보자면, 모든 만물은 '고정되거나 변하지 않는 자아란 것이 없기에' 다만 조건 속에서의 나타남이므로, '태어남과 죽음(生, 老死)이' 생기지 않게 되는데 (생기지 않으려면), 이의 원인(조건)이 되는 업의 행위 혹은 습관(有)으로 인한 '더러움과 깨끗함'이 또한 생..

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다시 0) - 즉비시명의 논리

수련이 가득한 모네의 정원. 이 그림은 아니지만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본 모네의 수련그림은 너무 작은데 놀랐다. 내가 가진 상相은 초등학교 시절 미술책의 도판에 기본한 것이었기에. (물론 벽을 채우는 커다란 그림도 있었지만) 저 하얀 수련은 수련이다. 이 경우 앞의 하얀 수련은 현상계로서의 수련 사물事物이다. 그러나 뒤의 수련은 우리 머리 속이나 언어상으로 개념화된 수련이라는 상相이다. 즉, 하얀수련은 수련과 동일률이 성립하지 않는 즉비(卽非)가 된다. 수련은 곧 수련이 아니다. (미다) 그러므로 (是故) 이제 저 하얀 수련은 수련이 된다. 요컨대 수련이라는 이름을 얻는 (是名) 것이다. (기다) 이런 이해의 방법과 별개로 물상을 확장 혹은 축소할 경우에 즉비(卽非)를 생각해보자. 즉, 쪼가리진(少) so..

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32) - 상에 머물지 말고 동하지도 말며 보살행을 수행하라

云何爲人演說. 不取於相 如如 不動 何以故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다른 어떠한 공덕보다 높다는 이 경의 아름다움을 이웃에게 어떻게 설해야 하는가? 어떠한 상에도 얽매이지 말고 여여히 동하지 않고 연설해야 한다. 왜냐하면 일체의 유위법 (법이 있다고 믿고 법을 위해서 하는 일체의 것, 또 그 법 자체)은 물거품 같이 스러질 것이기에. 이 구절의 현장 번역본을 보면 云何為他宣說、開示?如不為他宣說、開示,故名為他宣說、開示。 爾時,世尊而說頌曰: 諸和合所為 如星翳燈幻 露泡夢電雲 應作如是觀 어떻게 이웃을 위해 베풀어 설법하고 열어보이는가 이웃을 위하여 베풀어 설법하고 열어보이는 것이 아니므로 그 이름이 이웃을 위해 베풀어 설법하며 열어보이는 것이다. 이 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설하셨다. 모든 뭉쳐진..

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30) - 세계는 범부이생의 탐욕과 집착의 산물

何以故 若世界 實有者 卽是一合相. 如來說 一合相 卽非一合相 是名一合相 須菩提 一合相者 卽是不可說 但凡夫之人 貪着其事. 세계가 실재한다면 그것은 곧 한 덩어리의 상이며, 여래는 한 덩어리의 상은 곧 한덩어리의 상이 아니고 그 이름이 한 덩어리의 상일 뿐이라고 설한다. 한 덩어리 상이란 곧 이를 말로 설명할 수 없으니 다만 어린석은 범부와 제각각의 중생들이 그 세상(의 사물)을 탐하고 집착할 뿐이다. 이전 장에서 貪着을 여읜 것을 보살이라 하였으니 범부이생의 탐착하는 삶은 딱 거기까지이다. 현장의 번역을 보자. 何以故?世尊!若世界是實有者,即為一合執,如來說一合執即為非執,故名一合執。 佛言:善現!此一合執不可言說,不可戲論,然彼一切愚夫異生強執是法。何以故? 세계란 것이 실재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뭉친덩어리(집착)일 것인..

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25) - 움직임도 움직임이 아닌 것이니

須菩提 如來說有我者 卽非有我 而凡夫之人 以爲有我. 須菩提 凡夫者如來說 卽非凡夫 是名凡夫 금강경 논리의 다른 측면이 있어 옮겨본다. 여래께서 내가 있다는고 (아상) 설한 것은 곧 내가 있다는 것이 아니며, 이는 어리석은 중생이 내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어리석은 중생이란 것도 곧 어리석은 중생이 아니며, 그 이름이 보통사람일 뿐이다. 현장 본을 보자. 善現!我等執者,如來說為非執,故名我等執, 而諸愚夫異生強有此執。善現!愚夫異生者,如來說為非生,故名愚夫異生。 나라는 등의 집착이란 여래가 집착이 아니라고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이름이 나라고 하는 등의 집착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제각각의 중생들은 이 집착이 강성하니라. 어리석은 중생이란 여래가 중생이 아니라고 설하므로 이름을 어리석은 중생이라고 하느니..

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18) - 세상의 마음을 보는 방법

佛告. 須菩提 爾所國土中所有衆生 若干種心 如來悉知. 何以故 如來說諸心 皆爲非心 是名爲心. 所以者何 須菩提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 이해하기 힘든 구절이다. 세상의 모든 중생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니. 그 이유가 마음이 마음이 아니라 그 부름이 마음이기 때문이라는데. 과거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잡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미래의 마음도 얻지 못하기 때문이라는데. 현장 본을 들춰본다. 佛言:善現!乃至 爾所 諸世界中 所有有情, 彼諸有情 各有種種,其心 流注 我悉能知。 何以故? 善現! 心流注 心流注者, 如來說非流注, 是故 如來說名心流注 心流注。 所以者何?善現!過去心不可得,未來心不可得,現在心不可得。 조금 뉘앙스를 달리한다. 구마라집의 번역이 정태적 static 상황이라면 현장의 번역은 동태적 d..

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13) - 이름만을 기억하라

이제 즉비의 구문을 다시 쳐다본다. 구마라집 : 如來說世界 非世界 是名世界 현 장 : 諸世界,如來說非世界,是故如來說名世界 티벳본 Tibetan 의 영어 직역은 ’jig rten gyi khams ga" lags pa de khams ma mchis par de b#in gßegs pas gsu"s te des na ’jig rten gyi khams #es bya’o. (= That which is a world system has been said to be systemless by the Tathågata, and thus it is called a world system.) 이들의 영어번역은 이렇다. Max Müller 1894: Sanskrit 번역 And what was preached by t..

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14) -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방법

須菩提 若菩薩 心住於法 而行布施如人入闇 卽無所見. 若菩薩 心不住法 而行布施 如人有目 日光明照 見種種色.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생각케하는 구절이다. 善現!譬如士夫入於暗室,都無所見,當知菩薩若墮於事,謂墮於事而行布施,亦復如是。 눈이 어두워 생각을 낼 수 없을 때 조차, 보살은 대상에 빠졌다는 것을 당연히 깨닫고 대상에 빠졌다고 말하고 보시를 행함도 이와 같이 (대상에 빠지면 빠짐을 알고 빠진대로) 해야하며, 善現!譬如明眼士夫,過夜曉已,日光出時,見種種色,當知菩薩不墮於事,謂不墮事而行布施,亦復如是。 눈 밝은 사람이 밤을 도와 새벽이 지나 태양이 솟아 오르면 개개의 색을 보게 되면, 보살은 대상에 빠지지 않음을 당연히 깨닫고 대상에 빠지지 않음을 말하고 보시를 행함도 이와 같이 (대상에 빠지지 않으면 빠지지 않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