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톺아 읽기 (3) - 무지역무득 無智亦無得, 무지증무득 無智證無得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3. 9. 13. 00:54

반야심경의 많은 축약이 경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지만, 무지역무득 無智亦無得 이란 구절 역시 그러하다.
단순하게 새기자면, 앎 혹은 지혜도 없고 또한 얻을 것도 없다, 정도이다.
(중국식 한자는 知와 智 의 구분이 명확지 않은 걸로 알려져 있고 갑골문엔 知보다 智가 먼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智 는 사냥 혹은 전쟁의 기술 쯤에 해당하는 앎이나 지혜이다.)
좀 더 친절하자면, 앎 혹은 지혜가 없으니 얻을 것도 없다로 연결시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 앎은 무엇이며, 무엇에 대한 앎이고, 얻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얻는다는 것인가?

(질문을 좀더 해 보자면, 무엇으로/무엇을 통하여 알게되고, 무엇으로/무엇을 통하여 얻게되는가, 이다.)
이 문구의 처음을 따라가 주어를 찾아보면,
是故空中, 즉, 공(空)이라는 것 (空中)이 된다. 
그러니  공이라는 것이, 이러저러하고 또 이러저러한 논리의 순서를 거치게 되면,
결국 無智亦無得 (공이라는 것에는 앎이란 것도 없고 또 얻을 것도 없다가 되며,
앎이란 것이 오온의 산물이고 보면 앎의 목적어는 존재 혹은 사물일 것이고 (앎과 같이 생각하면 사물의 이치이거나),
얻을 것 역시 앎의 목적어 사물에 대해 얻을 것, 사물을 취하거나 사물 그 자체를 갈구하는 것이 된다.)
無智亦無得은 무지無智와 무득無得이 '또한' 혹은 '그래서 '로 연결된 구문이다.
 
광역본의 하나인 지혜륜 스님본에는 이 구절이 無智證無得으로 번역되어 있고,
이는 무지가 무득을 증거한다로 번역될 수 있다. 

(무지가 무득을 증명한다. 무지가 무득을 나타낸다로 위의 亦과는 조금 의미를 달리한다.)
곧 오온의 작용으로 생긴 혹은 오온으로 (마음에) 포착된 사물과 존재에 대한 앎이라 것,

혹은 관념이란 것이 있을 수 없으므로 (공이라고 알게 되므로), 
무득 (사물에 대해,  사물의 인식을 혹은 사물 그 자체를 마음에 포착하여 얻어질 수 있는 관념을) 얻을 것(집착하거나 갈구하는 것)이 없음(공이란 것을 얻음)을
증거하게 (나타내게) 된다로 번역할 수 있다.

요컨대 조금 더 적극적인 해석과 행위를 유발케 하는 번역이 나올 수 있다. 
 
오랜동안 이해하기 난해했고, 인과가 불분명했던 구절이 조금은 밝아진 (照見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느낌이다. 
결론적으로 나의 번역은 이렇다.
 
(오온을 잘 살펴보면 존재의 자성이 없으므로 이러한 공이란 것은),
존재(의 자성이 곧 공이므로)에 대해 앎이 있을 수 없고,

결국 (자성이 없는) 존재에 대해 얻는 것(실체에 대한 관념이거나 집착이나 갈구)이 없어짐을 증명하게 (밝혀 증거하게) 된다. 

뒤집으면,
앎이란 오온으로 포착된 순간(보여지는 나타남) 일뿐이며, (자성이 없는, 공하기에)  그 순간을 안다고 한들 그 대상의 자성을 얻지는 못한다. 

 
나의 번역은 여기까지이다. 이전의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의 톺아 읽기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