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화동 3가 2

경화역에서 (2)

한꺼번에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쇠뜨기 푸룻푸룻한 철길, 올리브빛 더미를 감싼 방수포 퍼덕이며 서쪽으로 달리던 화차와 좁아진 운동장 낡은 교사(校舍), 먼지가 사르락거리던 노을 빛 마루에 남겨진 시간과 가쁜 숨으로 가랑가랑한 파도를 밀쳐내는 경화동 2가, 큰 대섬 작은 대섬을 돌아나오는 할메 뱃가죽같은 파도의 소리와. 느티는 항상 작은 열매를 후둑이며 유혹했지만 타박타박 집으로 가는 소년, 동무같은 제 무게를 뒤로 남기는 땅거미, 나의 손 끝은 늘 그 저녁으로 닿지 못하여 골마루 촛칠광을 내던 맑갛게 반질거리던 깻돌을 만지작 거린다. 한꺼번에 가질 수 없는 것들. 타닥 타닥 교사를 무너뜨리는 발동기 엔진의 숨가픈 소리와 바다를 떠난 갈매기의 멀고 또 가까운 울음과 분필을 털어내는 소년의 늦은 오후는..

경화역에서 (1)

잊지 않고 오는 날들이 있다. 아니다, 잊힐만 하면 오는 날들이 있다. 삼팔장 시장길 좌판에 떠밀린 등짝들이 헤진 속곳으로 기운 소쿠리만큼 가벼운 날이. 더 이상 화차가 다니지 않는 사비선(四肥線)[1] 철길을 따라 오지도록 벚꽃 일렁이는 날이. 경화역 함석 지붕의 소화물 창고를 에둘러 녹슨 짐자전차의 갸르릉 쇳소리로 꽃바람만 화안하던 한 낮을 지나 찬란하였으되 햇살마저 버거워한 어깨를 남기며 다시 오지 않는 한 사람의 날이. 굽고 굽은 철길을 비켜갔던 화차의 떨림으로 떠나고 다시 또 하루 하루 잊는지 잊히는지 가만히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그런 하루에만 꽃이 핀다. [1]사비선은 지금은 없어진 제4비료공장과 군부대를 잇는 철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