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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설법: 여산동림사게(廬山東林寺偈) - 소동파(蘇東坡)

溪聲便是廣長舌 계성변시광장설: 계곡 물소리가 바로 부처님의 말씀이요, 山色豈非清淨身 산색기비청정신: 산빛 자체로 어찌 부처님의 청정한 몸이 아니겠는가. 夜來八萬四千偈 야래팔만사천게: 밤새 밀려오는 팔만사천의 게송을他日如何舉似人 타일여하거수인: 다른날에 어떻게 내보여줄 수 있을까.(隨他日後舉似人 수타일후거수인: 훗날 내보여주는 것은 딴 사람의 몫일뿐.) ***이 오도송(悟道頌)은 동파 소식이 유배지에서 임제종의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의 상총(常總) 선사를 찾아가 깨달음을 얻었던 밤의 일화에서 유래한다. 소동파가 "무정(無情)물(풀, 돌, 물소리 등 생명이 없는 사물)도 부처님의 법을 설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지자, "豈有無情解說法否?" 상총 선사는 《법화경》의 대통지승여래 大通智勝如來..

부여 만수산 무량사

성주산 등산길에 전망대까지 올라가보니 산 아래쪽으로 500m 거리에 무량사가 있다는 안내지도가 있다. 얼추 거리를 가늠해보아도 500m는 턱도 아닌 듯하여 산을 내려와 차량으로 만수산 무량사로 향했다. 평지사찰의 면모를 보여주는 절집이다. 건물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촬영금지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건물 바깥에서 컷을 날렸다.전각 내부의 천장이 아름다운데 사진으로 담지 못했다. 사진으로 남기진 않았지만 이 절집에서 만년을 보낸 생육신 김시습 (출가하여 법명은 설잠스님 )의 초상화(보물)와 부도탑이 있다.

성주사지 - 9산선문과 백운사

성주사지는 여러 번 들렀지만 그리 별다른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낭혜화상 탑비가 있다 한들, 그것이 최치원의 문장이라 한들 큰 의미 없이 스쳐 보냈었다.최근에 신라 선종의 9산선문에 대해 들은 바 있었기에 성주사지는 새롭게 와닿았다. 낭혜화상은 신라 9선선문 중 성주산문을 연 무염 (無染) 대사를 일컫는다. 그분은 당나라 마곡산 보철화상(寶徹和尙) 밑에서 법맥을 전수받아 성주산문을 열었다.이 비석은 통일신라 말기의 문장가 최치원(崔致遠)이 왕명을 받아신라 선승(禪僧) 4명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작성한 4개의 탑비 비문(碑銘)인 사산비명(四山碑銘)의 하나이다.(참고로 사산비명은 성주사지 낭혜화상 탑비, 쌍계사 진감선사 탑비, 봉암사 지증대사 탑비,그리고 비가 전하지 않는 초월산 대광대사 탑비문이 그것이다..

불가의 한 마디 -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 而生其心

머문 바 없이 마음을 낸다, 라고 번역하기에는 너무 간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이제껏 이해하기로는 그렇다. 그러나 최근의 이해는 방점을 달리 찍고프다. '당연히 머문 바 없으야 한다. 그러고도 마음은 내어야 한다." 쯤이다. 결론적으로 마음'은' 내어야 한다.'마음'이라고 번역하지만 그것은 '수행'에 다르지 않고 '행위'로 이어져야 한다. 청정한 마음은 머문 바가 없어야 하며, 그러고도 '대자유의' 마음을 내어 실천하여야 한다, 쯤일 것이다. (2026/07/14)최근 육조단경을 다시 읽으며 다음 구절에서 위 금강경의 구절과 가까와 보이는 구절을 찾아서 여기 옮긴다. 전념불생즉심 후념불멸즉불(前念不生卽心 後念不滅卽佛) 좀더 고급스럽게는,응무소주가 머물지 않는 자리로서의 공과 마음의 체 空 / 體를..

불가의 한 마디- 증득 證得

단순히 책을 읽어 머리나 문자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온 몸으로 체득하여 내 삶의 완전한 '자유'를 얻고 '대자유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몸소 체험한 진짜 깨달음만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드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증오 (證悟) 이제 금강경의 수행법을 법륜스님식과 틱낫한 스님식을 나열하여 본다.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수행: "마음을 내되, 머무는 바 없이 하기"어떤 일이나 사람에 최선을 다해 정성을 쏟지만,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즉시 받아들이고 툭 털어버리는 연습을 해 본다. '해야지' 하고 마음을 내어 가볍게 다만 실천하되, '내가 이만큼 했으니 결과가 이래야 해'라는 집착(머무는 바)을 지우는 수행상(相)을 깨뜨리는 수행: "내가 옳다"는 생각 내려놓기갈등이 생기거나 화가 날..

모전석탑을 찾아서 (8) - 제천 장락동 7층 모전석탑

제천을 들린 김에 장락동 모전석탑을 찾아 나선다.탑이야 원 장락사 절터에 있고, 지금 새건물의 장락사는 개인 사찰로 알려져 있다. 원래 저 모전석탑의 뒤편이 원 장락사지 절터이다. 감실이야 하중을 지탱하기 위해 화강암 문설주와 상인방 지방을 대었다 치더라도, 네 귀퉁이 또한 화강암 기둥으로 우주를 세웠다. 감실 문설주에 하중을 전달하지 않고 바로 지반으로 전달하려는 짜임이 이채롭다. 뒷편에도 감실이 있으나 구조계가 약간 상이하다. 달구질을 하고 심을 깔 적에 지반이 약함을 알았던 것이었을까? 나의 억지스런 추측을 덧붙인다. 수리할 적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동양일보 기사에서 인용)흔히들 일제 강점기의 수리가 허술하다고 하나 이 사진에서도 별반 다를 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여튼 저 란닝구를 입은..

장안의 봄, 이시다 미키노스케 지음, 이산 (5) - 음식과 술, 이 두가지를 앞뒤로 배치해 감히 섞이지 않도록 하는 것

장안의 봄, 이시다 미키노스케 지음, 이동철 외 옮김, 이산長安の春 ( 東洋文庫〈91〉1967年), 石田 幹之助, 平凡社- 燕飮 장독 (張讀)의 선실지(宣室志)에는..."반찬을 준비해 함께 먹고는 식사가 끝나자 술을 몇 잔 마시고는 잠이 들었다."는 대목이 있다...(162쪽)...음식과 술, 이 두가지를 앞뒤로 배치해 감히 섞이지 않도록 하는 것은 고래의 풍속으로서 반드시 당나라에서 시작된 일은 아니겠지만 당대에 이 고풍이 여전히 엄존해 있었다는 것은...짐작할 수 있다. ...또 연석의 행주 行酒 습속도...좌객의 술잔에 차례대로 술을 따르면 술을 받은 사람은 그 자리에서 바로 술잔을 드는 것이 당시의 풍속이었다고 서술했다....당시의 연음하던 모습을 전해주는 글을 보면, 모두 술이 손님 사이를 ..

장안의 봄, 이시다 미키노스케 지음, 이산 (4) - 해가 저물면 만리에 사람 그림자가 끊기고, 거리에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장안의 봄, 이시다 미키노스케 지음, 이동철 외 옮김, 이산長安の春 ( 東洋文庫〈91〉1967年), 石田 幹之助, 平凡社 江南逢李龜年 唐 杜甫 岐王宅裏尋常見기왕의 집에서 평소에 늘 그대를 보았고 崔九堂前㡬度聞최구의 집 앞 뜰에서도 몇 번이나 그대의 노래를 들었지  正是江南好風景지금은 바로 강남의 아름다운 풍경 속인데落花時節又逢君꽃이 지는 이 계절에 다시 그대를 만나게 되었네 소릉(少陵 두보의 자)은 본래 미증유의 대문호로서 ...이시는 그가 지은 칠언절구의 압권으로...세변 (世變) - 안녹산의 난 이후-의 참담함을 글자 속에 잘 갈무리하여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서도, 망망(忙忙)한 강남의 늦봄에 복사꽃이 어지러이 붉은 비처럼 떨어지는 풍경만을 말하여 잔잔한 여운을 언외에 남기고 있다. (139..

장안의 봄, 이시다 미키노스케 지음, 이산 (3) - 원소관등

장안의 봄, 이시다 미키노스케 지음, 이동철 외 옮김, 이산長安の春 ( 東洋文庫〈91〉1967年), 石田 幹之助, 平凡社 상원(上元 정월 보름)을 전후한 며칠 밤 동안 장등 및 관등행사를 중심으로 대단히 흥청거리는 모습을 연출한 데는 ...평상시에는 엄격하게 시행되던 야간 통행금지가 이 며칠 만큼은 공식적으로 해제되었기 때문에...야간통행금지는 주나라 이래로 계속해서 엄격히 시행되어온 제도로서, 도읍의 성곽 안은 물론 그 근교까지 적용되던 규정이다...당나라 때도 ...밤에는 방내(坊內)의 한 구역 안은 괜찮아도 온 거리를(66쪽) 돌아다니며 노는 일은 금지되어 있었다. (67쪽)** 동시와 서시의 상업공간 (市)를 제외하고는 주거공간인 방(坊)에서의 상업행위도 금지되어 있었다. ...지금은 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