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의 기록/미륵을 찾아서 39

양양 진전사지 3층석탑, 속초 신흥사의 무염無染스님의 나무부처님

양양 들른 길에 진전사지를 찾았다. 국보 122호 진전사지 3층석탑이 있는 곳이다. 남북국시대 신라의 석탑전형을 따른 듯하다. 겹벚꽃은 아직 봉오리가 덜 여물었지만, 수령이나 수형이 자못 당당하여 세월의 무게를 일러준다. 아래로부터 살펴보자면 지대석 위의 하대석에는 비천상으로 보이는 8 부조물이 조각되어 있으며, 상대석에는 8부신중이 조각되어 있다. 나의 눈에는 가릉빈가와 건달파 정도가 정도가 보일 뿐이다. 그위 1층 탑신에는 각 방향에 4면불이 새겨져 있다. 수인으로 보거나 하면 약사불도 보이고, 아미타불도 보이는 정도이다. 비례가 좋아 안정감이 있으나 상륜부는 도난되었거나 혹은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비례가 깨어진 그 부분이 아쉽다. 저 정도의 조각을 새길라치면 공덕주의 쌀가마니 꽤나 들었을 것이다...

쌍봉사 삼층전과 철감선사탑의 가릉빈가

몇 남지 않은 목조탑이었다는데, 8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다시 지어지고, 지금은 보물의 지위를 잃었다.예전의 8작 지붕이 4모의 모둠 지붕으로 탑의 형태를 얻어 보륜을 얹었다 한들아름다운 한국 목조의 한 시절은 다시 찾을 수 없게 되었다.그림 한 장 도면 한 장 남겨두지 않은 대목장들, 그것이 쟁이들의 한계 아닌 한계일 것이다.(그러고도 모든 그림이 가슴과 머릿속에 있다고 위안을 삼았던 사람들.  천대받았던 직업의 한계였을라나.) 지식을 공유하지 않았거나 혹은 못하였거나 간에. 지장전이다. 목조 시왕상 전체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제 철감선사탑을 찾아간다. 당우 뒤편으로 사사대 길을 지나서 언덕배기에 놓여있다.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을 보여준다.지붕의 섬세함은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돌쟁이의 솜씨..

운주사에서

운주사는 봄날이었다. 2월 초순의 날에도. 애들이 꼬맹이였을 때 온 적이 있었지만. 꽤차 오랜만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선화로 그려진 미륵보살을 찾긴 쉽지 않다. 비례가 조금 허트러진 듯 하지만 층지붕의 날렵함만은 잊지 않았다. 탑신에는 떡살 무늬같은 꽃그림이 앉았다. 4장의 꽃잎이라, 돌밭에 핀 산도라지이려나? 땅은 네모지고 하늘은 둥글다 했던가 (天圓地方), 혹은 사람의 일은 어딘가 모난 곳이 있다지만, 하늘의 이치는 원만하게 굴러간다는 뜻이련가? 미륵의 집은 저리 생겼다. (인근 보성 대원사의 미륵집도 저리 생겼으나 보물에서는 빠졌다.) 나중에 오시게 될 때에도. 부부로 온다는 발상이 새롭다. 와서 부부가 될 인연인 것일지도. 세상을 굽어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세상의 이치가 사라진 하늘을 올려..

가릉빈가의 노래 - 환성사 수미단

제대로 구색을 갖춘 수미단을 보고싶어 환성사를 찾아갑니다.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이 제대로의 수미단으로 알고 있지만 (제대로라 함은 수미산을 형상화한 3단이 구체적으로 표현됨을 말할 것입니다. 장엄을 한 보단 아래에 공륜(하늘을 뜻하는) -제2단은 봉황·공작·학·꿩 등의 날짐승을, 수륜-제3단은 용·아미타어·물고기·개구리 등의 물것들을, 금륜(쇠라고 되어 있지만 황색의 땅을 말함이니) -제4단은 코끼리·사자·사슴 등의 땅것과 이제 맨 아랫단은 지옥과 나찰 등의 지옥을 형상화하여 조각한 것을 말합니다.) 백흥암의 일반 공개는 년 2회로 친견이 어려운 탓에 산 너머에 있는 환성사를 찾습니다. (백흥암 수미단은 억지인연이 있어 사진은 없이 눈으로만 친견하였습니다.) 가릉빈가 한 마리 (사람의 머리를 하고 ..

자연으로 스러지는 절집 - 화암사

잘 늙은 절집 하나 있다고 하여 마음을 챙겨 나섰습니다. 꼬불 꼬불한 산길을 한 참이나 지난 후에 깊이 파묻혔을 법한 절집을 만납니다. 국내에서는 하나 뿐이라는 하앙식 가구의 절집, 화암사입니다. 안도현시인의 말마따나 잘늙은 절집 하나가 구름속에 주춧돌을 놓고 저리 앉았습니다. 해탈교라 이름지을 다리 하나 건너면 산문이 나섭니다. 전형적인 산지 중정형의 ㅁ자형 구조의 입구입니다. 우화루와 목어가 정겹습니다. 머리 위에 얹힌 것이 여의주인가요, 용이 되길 바라는 용맹정진하는 이무기의 모습일 겁니다. 하앙식 가구 구조를 가진 극락전입니다. 그러고 보면 처마의 내민 길이가 조금 길어 보이는 듯도 합니다. 공포를 가리지 않게 전각의 현판을 따로이 띄어쓰기를 하였나봅니다. 또박또박. 오늘 보러 온 하앙식 가구입니..

충주 신흥사 고려나한 네 분

나한님을 보는 일은 늘 즐겁다.완성된 자로서의 일자 부처를 보는 일보다는 수행정진하는 모습을 더 좋아하는 탓일 것이다.절집의 고려나한은 네 분으로 단청을 입혔다. 배치를 앞쪽으로 하여 좀더 세밀히 살필 수 있었으면 했는데,또 어느 신도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기부로 조성한 나한을 앞에 두고자 했음인지 모르겠다.귀한 나한이니 뒤쪽에 꽁꽁 숨겨둔 건 아닌가 하는 위안을 해본다. 이 나한님만이 콧수염이 없다. 가장 젊은 다문제일 아난존자일지도.... 여기 충주 신흥사는 용왕기도처가 있다. 소위 기도빨이 먹히는 곳이란 의미이리라.나는 어머니가 용왕 멕이는 치레를 보아왔던 탓에 절간에 있는 이런 석간수 기도처를 그리 불편해 하지는 않는다. 아닌게 아니라 새로 조성한 나한 한 분도 용 한 마리를을 끼고 계신다.이래저래..

이천 영월암 마애불

영월암 절집 뒤편의 돌팍에 부처님 한 분이 그린 듯하다.부처라고 하였지만 민머리 삭발모습이니, 이 절집의 다른 나한존자님같이 이 분 역시 나한님이라는 설도 있다. 새로 조성한 비로자나불 뒤편으로 광배와 연화좌대가 보인다.마침 문화재청에서 깨끗이 세정한 덕분에 물기가 배어 광배에 남아있는 문양은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화불좌상과 펼친 연꽃모양이 돋을새김되어 있다. 연화좌대의 연꽃 모양도 그러하다. 세속의 믿음에는 세속의 때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꼭 그만한 자연 암반을 실내로 들였다. 터를 발견하는 눈썰미가 예사롭지 않아 고맙다.스님 말씀에는 마루 바닥을 위한 저 흙바닥에는 숯을 묻었다고 한다. 모두 좋을 수는 없는 것인가? 좌대를 앉힌 저 기단석은 재질은 달라 어색하다.무릇 사소한 부분까지 디테일을 챙기는 ..

충주의 쇠붙이 부처를 찾아가는 길 (1) - 백운암 철조여래좌상

암자가 정갈하기가 짝을 찾을 수 없는 백운암,쇠붙이 부처님은 조용히 앉아계신다.저 손등은 누군가의 기원으로 반질반질하다.여기 백운암의 저 철불과 충주 대원사의 철조여래좌상, 단호사 철조여래좌상과 함께 충주3철불로 불리운다. 절집의 장독간은 더없이 깨끔하다. 요사채에 비추이는 가을 볕... 해우소 가는 길에 화살나무는 고운 옷을 갈아입었다. 빨래 횃대에는 집게 몇 걸려있는 한가로운 오후다. 댓돌에는 스님의 신발만이 자리를 지키고.

오백나한님들의 서울 나들이

춘천 박물관의 영월창령사지 오백나한님들이 서울 나들이를 하셨다기에 다녀왔습니다.그저 우리의 모습을 하고 계신 나한님들은 종교의 본뜻이 세속의 초월이 아니라 세속에서의 평화와 안식임을 보여주는 더할 나위 없는 가르침입니다.세상 어디에도 없는, 우리 자신을 닮아있는 나한님들을 뵐 수 있어 좋았습니다.거居하되 그 속에서 물들지 않음이, 경계를 허물고 세속에서 실천하는 참모습일 겁니다.영월 창령사지 오백나한님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한 가닥 풍경소리입니다. 대답은 이미 그 물음 속에 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