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의 기록/미륵을 찾아서 39

포항 보경사 내연산 계곡길에서

내연산 계곡길을 내려오다 산나리 꽃을 보았습니다. 예전엔 참 흔한 들꽃이었더랬는데....요즘은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바위틈에 싹을 내밀고는 저리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청청합니다. 보경사 계곡은 폭포로 유명합니다. 한 번 쯤 들러 보시면 왜 한국의 10대 계곡에 드는 지를 알 수 있겠지요. 향로봉 정상 사진입니다. 사진 올린 것이 시간의 역순이군요. 기억의 순서....

충남 서산 개심사에서

무명(無明)이라 일렀던가? 내 삶 또한 그 무명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진대, 지혜의 칼로 무명을 갈랐다는 혹은 그러할 칼을 찾는다는 심검당(尋劍堂)이 있어 개심사는 외롭지 않다. 인연이 없는 자는 가는 곳마다 밥때가 지난 마당개처럼 헐헐거리듯 제 모습을 보지 못하지만, 비록 개심사의 대웅전 (조선 초기의 주심포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물로 보물 143호로 지정되어 있다)이 보수 공사 중이라 한들, 저 천연스런 대목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심검당 하나 만으로 개심사는 찾아봄직한 절집이다. 아무렇게나 걸친 듯한 기둥과 창방의 자연이 만든 곡선은 절집의 수행이 자연의 그것과 머리카락 한 올의 차이가 없음을 관념이 아닌 실제적 사물로서 구현한 대목장의 깨달음이리라. 절집을 보고, 산을 에둘러 내려오..

억새풀 산행, 충남 보령 오서산과 정암사

가을 산이야 어디나 좋지마는, 충남 보령의 오서산은 억새밭으로 유명한 곳이다.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 억새도 한 이름값을 하지만, 그 총중에 서해안 최고봉이라는 오서산 정상의 억새는 봄의 진달래 능선을 뒤덮어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내고 가을 물결을 일렁이게 한다. 바다를 옮겨 놓은 자연의 솜씨에 다만 감탄할 따름. 오서산을 오르는 길은 대략 세 가지다. 첫 길은 광천 인터체인지를 나와 오서산 등산로 팻말을 따라가서 상담마을을 통과하여 오르는 길이 있다. 또 하나는 청소면과 청라면의 사이쯤에 있는 '오서산 꿈의 궁전'이라는 곳 근처의 마을을 통과하는 길이 있다. 마지막 한 길은 오서산 자연휴양림을 통과하여 산행하는 길이 있다. 봄이라면 오서산 자연 휴양림을 통과하여 산행하는 쪽을 권하고 싶다. 그 쪽길은 팔부..

용문사? 용문산!

가을 산행의 묘미는 丹楓 구경이 아니다. 헉헉대며 앞에선 산꾼들의 뒷꿈치를 따를라치면, 단풍의 아름다움은 눈에서 멀고 절집의 고즈늑함은 마음에서 멀다. 이를 벗어나 경지에 이르기에는 나의 수행이 모자란 탓일진데, 누굴 탓하랴. 가끔은 흘낏 흘낏 눈요기로 몇 장면의 단풍을 놓치지 않으려 하지만, 속인의 안달은 가파름의 자연이 수이 허락칠 않는다. 용문사 은행이거나 용문사라는 절집이거나, 흔히 듣고 보고 했던 그 용문산이 그랬다. 1150여 고지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 산이 그리 험하다는 생각보다는 절집의 이름에 가리워진 만만함에 발걸음을 옮겼다. 저 용문사의 은행은 계곡의 바람을 등지고 꿋꿋하다는 사실을 아는데는 5시간 이상의 산행이 필요했다. 산행길의 중간 즈음에서 건너편으로 보이는 바위산을 바라보았다. ..

영평사 구절초 축제에서

주말마다 비가 오는 이유는 주중의 인간 활동 탓이란 설이 있기도 하다. 대기중으로 쏟아낸 차량의 매연이 비알갱이를 형성하고, 주중에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쉬어도 좋으리!, 라고 왜치는 순간 주말이면 어김없이 비가 되어 내린다. 지난 일주일간 열심히 일한 당신 탓으로. 그리하여 자동차와 더불어 살기 시작한 현대인은 주말에 오히려 여가를 즐기지 못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고. 하여튼, 지난 10월1일, ‘주말쯤 비’라는 일기예보처럼, 하늘은 온통 구름투성이. 해도 열심히 일한 당신!,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라는 사명감에 나섰다. ‘구절초 축제’. 집에서 가까운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영동선을 거쳐 경부선 천안 논산간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공주를 찾았다. 단풍놀이철이라 서해안선/영동선이 무지하게 막히는 탓에..

강화 정수사

서울에서 가깝다 해서도 자주 발걸음이 옮겨지진 않지만, 지난 연휴엔 애들 숙제를 핑계삼아 강화도로 나섰다. 우선 들린 곳은 강화읍내의 고려궁지. 쇠락한 왕조의 내음이 6월의 감꽃에 묻혔는데, 거칠게 단장된 고려의 궁궐터는 세월의 흔적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다만 기와의 틈새를 비집어 생의 한 때를 이어가는 들풀들만이 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다음 발걸음은 고려궁지에서 조금 내려와서, 조선조 철종의 잠저(왕이 되기전에 머물던 사가)인 용흥궁. 옛집의 맵시를 느끼게 해 주는 용흥궁은 볼 만 한 곳이었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아내는 차 안에서 기다리고, 골목길을 약 50여 미터 들어가 찾을 수 있었다. 용흥궁의 뒤편으로 성공회 성당이 있는데, 한국 최초의 성공회 성당이라고 하니 함께 둘러 봄직하다..

선림원지에서

여름 휴가길에 찾는 절집이야 시원하기 그지 없지만, 절집을 잃은 절터, 땡볕 아래 보는 과거의 기억은 언제나 우리를 숙연케한다. 강원도 양양 미천골 계곡에 위치한 선림원지가 그런 곳이다. 절집은 간 곳이 없고, 석탑과 부도와 석등만이 서 있는 절터, 통일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형식을 보여주는 석탑은 부드러운 비례로, 선수행하는 이를 편안케 했을 듯하다. 마음을 깨끗이 밝히듯 석등은 햇볕 아래서도 찬란한데. 10년만의 더위라는 지난 8월초의 땡볕은 절터가 자리한 산턱에서 문득 머뭇머뭇 하였고, 나는 보라빛 무릇꽃에 짝짓기에 나선 무당 벌레를 보았더랬다. 세월의 더께를 털고 절집의 스님들이야 떠나고 없지만, 푸른 풀밭에서 들꽃은 소리 없이 피었다 지고, 그 속에 벌레들은 가녀린 생을 이어왔을테니. 잠시 스..

흥국사 무지개 다리

내친 김에 한 곳을 더 가보자. 여천 삼일동의 흥국사는 진달래 꽃으로도 유명한 영취산 자락에 있다. 영취산이라면야 중원땅에도 있고, 인도에도 있는 산이지만, 산이름 영취산은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했던 곳에서 따온 이름이다. 산봉우리가 독수리의 부리를 닮은 탓이다. 절집으로 가는 길은 오동도나 향일함 방향과 반대이다. 공단으로 가는 길과 겹치고, 그 안쪽에 따로이 볼만한 거리가 없는 탓에 흥국사를 보려면 시간이 아깝기도 할 터이다. 그러나 흥국사는 무지개 다리 하나 만으로도 가볼만 한 곳이다. 절집 들머리가 LG-Caltex 정유 가는 길에 있기에 여천에서 토목 엔지니어로 있을 즈음엔 자주 갔던 곳이다. 내가 본 무지개 다리로는 가장 큰 규모가 아니었나 싶다. 석공의 손길이 빗어낸 아름다운이란.... 물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