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행의 묘미는 丹楓 구경이 아니다. 헉헉대며 앞에선 산꾼들의 뒷꿈치를 따를라치면, 단풍의 아름다움은 눈에서 멀고 절집의 고즈늑함은 마음에서 멀다. 이를 벗어나 경지에 이르기에는 나의 수행이 모자란 탓일진데, 누굴 탓하랴. 가끔은 흘낏 흘낏 눈요기로 몇 장면의 단풍을 놓치지 않으려 하지만, 속인의 안달은 가파름의 자연이 수이 허락칠 않는다.
용문사 은행이거나 용문사라는 절집이거나, 흔히 듣고 보고 했던 그 용문산이 그랬다. 1150여 고지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 산이 그리 험하다는 생각보다는 절집의 이름에 가리워진 만만함에 발걸음을 옮겼다. 저 용문사의 은행은 계곡의 바람을 등지고 꿋꿋하다는 사실을 아는데는 5시간 이상의 산행이 필요했다.
산행길의 중간 즈음에서 건너편으로 보이는 바위산을 바라보았다. 벼랑에 소나무라,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용문산에도 이런 풍경이 있을 줄이야. 산수화 한 폭을 옮겨 놓는데도, 누년의 세월이 필요했를 것이었으며, 화공에게 소로를 내어주기 까지는 목동과 나뭇꾼의 오랜 삶의 흔적이 아니었던들 어찌 가능했으랴, 하는 생각에 잠시 젖어 본다.
이 고사목 앞에서 헉헉이는 숨을 고르며, 금강산이라고 속여도 좋겠다는 등의 농담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함께 험한 길을 올랐던 산행 벗들의 힘이었는지 모른다. 며칠 간의 음주 가무로 찌든 속세의 때는 이쯤에서 벗을 수 있었다. 박카스 신에게 축복 있을 진저!
아침 10시즈음에 시작된 산행은 하산길의 마당 바위를 거쳐 4시 못미쳐 다시 용문사에 도착했다.
산행 후 잠시의 짬을 내어 용문사를 들렀다. 요사채 너머로 단풍이 곱다. 부처는 속세의 근심을 떨치지 못하시고 속세를 보고 앉았는데, 속인은 부처의 눈길을 애써 비켜, 색색 고운 단풍산에 눈을 먼저 돌린다. 가을산의 단풍은 절정이다. 생의 절정을 맞는 저 나무들에게 그저 감사할 뿐!
댓돌이 총총하니 정갈한 산사의 마음을 느끼게 한다. 하나 문짝 뒷편으로 까만 자동차는 산사의 세월도 속세의 세월 만큼이나 흘렀음을 알려주기에 한편으로는 아쉬우면서도, 감히 그 불편함을 강요치 못한다. 수행의 방편이지 고행의 방편이 아니지 않은가? 절집수행이란 것이, 하며 위안을 삼아 둔다.
법당의 부처보다는 뒷편 석축 위로 누군가 모셔둔 부처에게 눈길이 갔다. 자애스러움이야 법당 안이든 밖이든 다를리 없다. 내가 어디 있든 마음 다스리는 자리가 부처의 자리 아니든가, 하며 짐짓 추스려본다. 저 돌부처에 새겨진 석공의 원은 이루어졌을까? 가을 산의 단풍이 이리 고운데. 이 작은 돌부처의 앞쪽으로 너른 대를 또한 만들어 두었으니, 수심을 모두 얹어 두고 오기에 족하다. 이래 저래 못난 것이 속인의 좁은 마음이다.
초등학생의 수학여행길이나, 풋신자의 절집 순례에서 얻었음직한 작은 부처님, 동자님들이 낙엽인양 풍경처럼 놓였다. 이를 놓아둔 이의 맑음 마음이나 이를 보는 속인의 눈에 들어와 세상이 참 맑다. 할머니 손에 매달려 와서는, 키 높이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동자상을 놓아 두었을 어린 동자의 마음을 읽어 본다. 나는 너무 멀리 왔다,라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게 만든다.
절정의 단풍 속으로 부처가 서 있다. 세상의 복을 위해 저 촛불은 일렁이며 타는 것일 터이지만, 저 단풍 속의 부처는 그저 우리에게 세상을 건너는 수레 하나 던져줄 뿐이다. 강을 건너서는 다시금 그 수레를 타인을 위해 조용히 놓아 둘 일이다. 아니면 함께 가는동. 곱게 물든 가을 산이 우리에게 베푸는 사랑의 힘은 부처의 나라를 지나 절집 마당에 까지 미친다. 저 촛불 또한 어둔 산사의 마당을 이 밤 지나도록 밝힐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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