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비가 오는 이유는 주중의 인간 활동 탓이란 설이 있기도 하다.
대기중으로 쏟아낸 차량의 매연이 비알갱이를 형성하고,
주중에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쉬어도 좋으리!, 라고 왜치는 순간
주말이면 어김없이 비가 되어 내린다.
지난 일주일간 열심히 일한 당신 탓으로.
그리하여 자동차와 더불어 살기 시작한 현대인은 주말에 오히려 여가를 즐기지 못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고.
하여튼, 지난 10월1일, ‘주말쯤 비’라는 일기예보처럼, 하늘은 온통 구름투성이.
해도 열심히 일한 당신!,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라는 사명감에 나섰다. ‘구절초 축제’.
집에서 가까운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영동선을 거쳐 경부선 천안 논산간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공주를 찾았다.
단풍놀이철이라 서해안선/영동선이 무지하게 막히는 탓에 1번국도를 이용하여 안성까지 거북이 걸음.
안성에서 경부선 진입하여 정안나들목으로 빠져 나와 공주 외곽에 위치한 장기면의 영평사를 찾았다.
가을비. 재촉하는 이가 없어도 계절의 시계는 어김없다.
이제 추워지리라. 이 약간의 빗방울이 만드는 축복으로 하여, 나는 영평사의 구절초를 아낌없이 감상할 수 있었으니,
고맙다 가을비.
대개의 지방 축제가 그러하듯이 온갖 종류의 사람들과 장사치들이 들끓는 난장이기 마련인데,
유독 영평사의 구절초 축제는 조용히 진행 중이었다. 절집이래서일까?
구절초, 꽃이름을 모르걸랑 그냥 ‘들국화’로 불러도 좋다.
꽃 이름이 무에 대수이든가.
저리 맑은 꽃잎새를 보았으니, 묵은 때가 쏘옥 빠지지 않겠는가?
대웅전 절집 마당을 거슬러 올라가면 장독대가 가리런한 곳이 나온다.
가을 볕에 익어가는 것이 감이나 밤 만이 아니란 것을 실감한다.
저 독 속에서 어머니의 자궁인양 된장이 삭고 있다. 맛이 일품이란다.
이 한켠에서 구절초 축제 기간 동안에는 국수 공양이 제공된다.
장독 두껑을 식탁 삼아 소찬이나마 김치쪽과 함께 먹는 소면의 맛이란.
사실인즉, 영평사의 구절초는 야생이 아니다.
약초삼아 절집의 주지스님께서 뿌리고 가꾼 것이라 하나, 사람의 손을 벗어나면 그만의 삶이 시작되듯,
야생으로의 구절초 군락을 이룬다.
때로 우리는 사람으로 인하되 사람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경이로움을 본다. 영평사의 구절초가 그러하다.
온 언덕빼기 등성이에 하얀 구절초가 지천이었다.
늦은 시간엔 산사 음악회가 열렸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로 산사의 저녁을 고즈넉이 적셨다.
무식하게도, 또 당연히 그 무식을 느껴야겠지만, 나는 국악엔 익숙치않다.
그래도 생음악으로 듣는 국악은 좋았다.
마칠 때쯤엔 나 같은 무식쟁이를 챙겨주느라, 왕눈이 아줌마 민해경도 나오고, 애모의 김수희 아줌마도 나섰다.
깊어가는 것은 가을이었으되, 나는 깊음 속에서 하냥 즐거웠다.
예전의 나로 돌아간 듯한 느낌! 내 귀가 새로웠다.
참, 잊고 말하지 않았지만, 덤으로 대웅전 절집을 에둘러서 수련이 심어져 있다.
진흙에서 태어난 것이라도가 아니라, 진흙에서 태어나야 세상을 정화한다는 억지해석을 붙여 본다.
비탈을 산책하며 느끼는 구절초의 향기는 그 자체로 선약일터이니.
찌부뚱한 몸을 이제 저 흙속에 던져 볼 일이다.
일찍 던질수록 세상살이가 더욱 쉬워지지 않겠는가.
축제는 10월 16일까지 계속된다. 오는 주말엔 한 번 나서볼 일이다.
구절초 염색을 하지 못하고 다녀 온 것이 못내 아쉽다.
절집에는 구절초 차와 수련차를 파는 '차마실'이 있으니, 우리차를 즐기는 이들이라면 권할 만 하다.
우선 보는 것 만으로도 개운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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