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 7

불가의 한 마디 - Muhurta, 須臾

일본의 영화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荻上直子 의 영화 川っぺりムコリッタ >를 보다.무코릿타는 Muhurta의 일본어 음역 牟呼栗多 이다. 경전 속의 수유, 須臾는 법화경 등에는 아래와 같이 용례를 보인다.當勤精進,如救頭燃,但念無常,慎勿放逸。須臾之間,生死事大。 머리에 불이 붙는다는 표현은 익숙하게도 지눌의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에도 등장한다.나로서는 이 표현을 수심결에서 먼저 보았었다. 譬如有人,被火燒頭,救之不遑,豈有閒心更論餘事。生死事大,無常迅速,甚於火燒頭然。但自痛念無常,常若救頭然,則不被境風所動,而能念念在道矣。 정작 수유는 다음 구절이다. 故知吾人自心,本來清淨,元無煩惱。但為客塵妄想所覆蔽故,不得自在。譬如晴空本無片雲,為浮雲所覆,須臾之間,暎蔽光明。雲散晴空,光明如故。 인도의 시간단위는 살펴보는 일은 흥미롭다..

불가의 한 마디 - 연기 緣起

『상윳따 니까야(Saṃyutta Nikāya)』: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날 때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질 때 저것이 사라진다. 즉, 무명을 조건으로 행위가 있고, 행위를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있고,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과 물질이 있고, 정신과 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기관이 있고, 여섯 감각기관을 조..

불가의 한 마디 - 탐진치 3독

맛지마 니까야 38경 갈애의 소멸 경(Mahātaṇhāsaṅkhaya Sutta) "Katamesa, bhikkhave, dukkhassa samudayo? Yāyaṃ taṇhā ponobbhavikā nandirāgasahagatā tatratatrābhinandinī, seyyathīdaṃ – kāmataṇhā, bhavataṇhā, vibhavataṇhā.""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일어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재생 (再生-윤회(輪廻) 을 가져오고 즐거움과 탐욕이 함께 하며 여기저기서 환희하는 갈애이니, 곧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비존재에 대한 갈애이다." 맛지마 니까야 16경 마음의 오염 경(Cittavinibbhoga Sutta) "Idha, bhikkhave, ariya..

불가의 한 마디 - 계정혜, 8정도

담마จัก카 경: 初轉法輪經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니,곧 바른 견해(sammā-diṭṭhi), 정견 바른 사유(sammā-saṅkappa), 정사유 바른 말(sammā-vācā), 정어 바른 행위(sammā-kammanta), 정업 바른 생계(sammā-ājīva), 정명 바른 노력(sammā-vāyāma), 정정진 바른 마음챙김(sammā-sati), 정념 바른 삼매(sammā-samādhi), 정정이니라." 디가 니까야(Dīgha Nikāya, 長部) 2경 사문과의 경(Sāmaññaphala Sutta):수행의 단계로서- 계(ศีล, sīla), - 증상심(增上心, adhi-citta, 定),- 증상혜(增上慧, adhi-paññā..

불가의 한 마디 - 공부 '짓다'

선가의 표현에 '공부 짓다'란 표현을 들었다. 우리말의 짓다는 대체로 의식주에만 해당한다. 옷을 짓고, 밥을 짓고, 집을 짓는 식이다. 그것은 한자어 증상 增上, 무언가 늘려가고 (양) 키워가고 (질) 높아가는 (형) 개념도 숨어있다. 앙굿따라 니까야(Aṅguttara Nikāya, 增支部) 3:81 사문 경(Sāmañña Sutta): "비구들이여, 사문에게는 세 가지 해야 할 일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높은 계를 공부짓고(adhisīlaṃ sikkhitabbaṃ), 높은 마음을 공부짓고(adhicittaṃ sikkhitabbaṃ), 높은 지혜를 공부짓는 것이다(adhipaññaṃ sikkhitabbaṃ).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가지 사문이 해야 할 일이다." 여기서는 짓다의 의미 목적어..

삶의 가치와, 될성부른 쪽이거나 전략적 투표라는 것의 허상

나의 인생이 나아지지는 않았었고, 않았고, 또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는 않는다. 5년 정도의 시간은 설사 고난의 시간이 될 수 있을 지라도, 나의 부분적인 주권의 양도를 생각할 때장기적 전망에서 나와 생각을 같이하는 쪽을 찍어야 한다. '될성부른'에 혹은 '전략적 투표'에 이득을 보는 쪽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볼 일이다.'진보'라는 탈을 쓰고 있는 '보수'와또 '보수'라고 우격다짐하는 '식민지 잔재'들.어느 쪽이든 모두 기득권층이다.모두 이 '될성부른' 혹은 '전략적 선택'에 기생한다. 여기에 서울에서의 중산층이라고 믿고 싶은,부동산 계급이 가세한다. 알량하다는 표현이 여기만큼 적절할 수가 없다.타인의 고통에 기반한 그 소유욕을 애써 외면하면서'보통시민'을 가장한다.이들 역시 '될성부른'으로 자신의 물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