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고 오는 날들이 있다. 아니다, 잊힐만 하면 오는 날들이 있다. 삼팔장 시장길 좌판에 떠밀린 등짝들이 헤진 속곳으로 기운 소쿠리만큼 가벼운 날이. 더 이상 화차가 다니지 않는 사비선(四肥線)[1] 철길을 따라 오지도록 벚꽃 일렁이는 날이. 경화역 함석 지붕의 소화물 창고를 에둘러 녹슨 짐자전차의 갸르릉 쇳소리로 꽃바람만 화안하던 한 낮을 지나 찬란하였으되 햇살마저 버거워한 어깨를 남기며 다시 오지 않는 한 사람의 날이. 굽고 굽은 철길을 비켜갔던 화차의 떨림으로 떠나고 다시 또 하루 하루 잊는지 잊히는지 가만히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그런 하루에만 꽃이 핀다. [1]사비선은 지금은 없어진 제4비료공장과 군부대를 잇는 철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