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경화역에서 (1)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1. 4. 23. 02:26

잊지 않고 오는 날들이 있다.

아니다, 잊힐만 하면 오는 날들이 있다.

 

삼팔장 시장길 좌판에 떠밀린 등짝들이

 헤진 속곳으로 기운 소쿠리만큼 가벼운 날이.

  이상 화차가 다니지 않는 사비선(四肥線)[1] 철길을 따라

오지도록 벚꽃 일렁이는 날이.

 

경화역 함석 지붕의 소화물 창고를 에둘러

녹슨 짐자전차의 갸르릉 쇳소리로

꽃바람만  화안하던 낮을 지나

찬란하였으되 햇살마저 버거워한 어깨를 남기며

다시 오지 않는 사람의 날이.

 

굽고 굽은 철길을 비켜갔던 화차의 떨림으로

떠나고 다시 하루 하루

잊는지 잊히는지                                                                                                                                                          

가만히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그런 하루에만

꽃이

핀다.

 

 


[1]사비선은  지금은 없어진 4비료공장과 군부대를 잇는 철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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