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자연의 속도 시속 1km - 나의 만화시대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0. 6. 14. 20:28

초등학교 5학년이던가 그맘때에는 바벨2세에 푹 빠져있었다.

'새소년'인가하는 어린이 잡지였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친구의 것이었다. (반에 한 둘 정도가 어깨동무와 새소년을 정기구독하는 정도였다.)

일본 만화라는 것을 알 리 없던 시골아닌 시골이었다.

이상하리만치 요미는 차라리 부하들과의 연대와 인간성을 지녔고,

바벨은 비인간적이고 냉정하게 부하를 소모시키듯한 느낌만은 지울 수 없었다.

 

그후..... 

 

1986년의 교정은 졸업과 취업이라는 긴장의 시간과

짭새라 불리웠던 사복체포조의 경찰?들이 물러난 알 수 없는 자유의 공간이 

묘하게 섞여있던 시기였다.

학과 건물 뒤편의 잔디밭에서 나는 친구로부터 한 권의 만화책 뭉치를 넘겨받았다.

'백지'라는 제목의 공모전 수상작이 실렸던 만화광장이 그것이다.

 

흡사 카메라가 돌아가는 듯한 시선 처리와 과감한 앵글, 

그리고 한 쪽 한 쪽 만화의 그림칸을 구조적으로 배치하여 만들어낸 조형미,

내용을 떠나 그러한 형식미에 나는 우선 눈을 떼지 못했다.

 

박흥용,

 

청년사에서 나온 '청년사 만화작품선 4'권(2004)은 박흥용에게 할당되었고,

여기서 다시 그 때의 '백지'를 볼 수 있었다. 

 

박흥용,

그 이후 박흥용의 만화를 다시 만난 것은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1995) 이었다.

자전거 만화로 알려진 '내 파란 세이버'(1999)는 좀 이후의 일이었다.

 

 

'호도나무 왼쪽 길로' (2003)의 그림체를 나는 좋아한다.

발로 뛰어 그리는 그림, 몸으로 그리는 그림, 

땀이 뚝뚝 묻어나는 그림과

그러한 육체를 후행하는 간결한 말을 나는 더 좋아한다.

 

최근 다음웹툰에서 그이의 만화 두 편을 본다.

'새벽날개'와 '여우는 같은 덫에 두 번 걸리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새벽날개'에서 박흥용은 자연의 속도는 시속 1km쯤 된다고 한다. 

'벚꽃으로 북상하고 단풍으로 남하하는' 속도가 그렇단다.

그이 역시 그러한 자연의 속도에 맞추어 가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이 웹툰이 단행본으로 나왔으면 하지만,

저자는 그러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고보면 나의 소유욕은 늘 이기적인 모양새가 되고,

나는 그런 지점을 뛰어넘질 못한다.

 

저자가 그런 다수의 공유 공간에 남겨두고자 했던 그림들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