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이던가 그맘때에는 바벨2세에 푹 빠져있었다.
'새소년'인가하는 어린이 잡지였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친구의 것이었다. (반에 한 둘 정도가 어깨동무와 새소년을 정기구독하는 정도였다.)
일본 만화라는 것을 알 리 없던 시골아닌 시골이었다.
이상하리만치 요미는 차라리 부하들과의 연대와 인간성을 지녔고,
바벨은 비인간적이고 냉정하게 부하를 소모시키듯한 느낌만은 지울 수 없었다.
그후.....
1986년의 교정은 졸업과 취업이라는 긴장의 시간과
짭새라 불리웠던 사복체포조의 경찰?들이 물러난 알 수 없는 자유의 공간이
묘하게 섞여있던 시기였다.
학과 건물 뒤편의 잔디밭에서 나는 친구로부터 한 권의 만화책 뭉치를 넘겨받았다.
'백지'라는 제목의 공모전 수상작이 실렸던 만화광장이 그것이다.
흡사 카메라가 돌아가는 듯한 시선 처리와 과감한 앵글,
그리고 한 쪽 한 쪽 만화의 그림칸을 구조적으로 배치하여 만들어낸 조형미,
내용을 떠나 그러한 형식미에 나는 우선 눈을 떼지 못했다.
박흥용,
청년사에서 나온 '청년사 만화작품선 4'권(2004)은 박흥용에게 할당되었고,
여기서 다시 그 때의 '백지'를 볼 수 있었다.
박흥용,
그 이후 박흥용의 만화를 다시 만난 것은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1995) 이었다.
자전거 만화로 알려진 '내 파란 세이버'(1999)는 좀 이후의 일이었다.
'호도나무 왼쪽 길로' (2003)의 그림체를 나는 좋아한다.
발로 뛰어 그리는 그림, 몸으로 그리는 그림,
땀이 뚝뚝 묻어나는 그림과
그러한 육체를 후행하는 간결한 말을 나는 더 좋아한다.
최근 다음웹툰에서 그이의 만화 두 편을 본다.
'새벽날개'와 '여우는 같은 덫에 두 번 걸리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새벽날개'에서 박흥용은 자연의 속도는 시속 1km쯤 된다고 한다.
'벚꽃으로 북상하고 단풍으로 남하하는' 속도가 그렇단다.
그이 역시 그러한 자연의 속도에 맞추어 가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이 웹툰이 단행본으로 나왔으면 하지만,
저자는 그러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고보면 나의 소유욕은 늘 이기적인 모양새가 되고,
나는 그런 지점을 뛰어넘질 못한다.
저자가 그런 다수의 공유 공간에 남겨두고자 했던 그림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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