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길에 찾는 절집이야 시원하기 그지 없지만, 절집을 잃은 절터, 땡볕 아래 보는 과거의 기억은 언제나 우리를 숙연케한다.
강원도 양양 미천골 계곡에 위치한 선림원지가 그런 곳이다. 절집은 간 곳이 없고, 석탑과 부도와 석등만이 서 있는 절터, 통일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형식을 보여주는 석탑은 부드러운 비례로, 선수행하는 이를 편안케 했을 듯하다. 마음을 깨끗이 밝히듯 석등은 햇볕 아래서도 찬란한데.
10년만의 더위라는 지난 8월초의 땡볕은 절터가 자리한 산턱에서 문득 머뭇머뭇 하였고, 나는 보라빛 무릇꽃에 짝짓기에 나선 무당 벌레를 보았더랬다.
세월의 더께를 털고 절집의 스님들이야 떠나고 없지만, 푸른 풀밭에서 들꽃은 소리 없이 피었다 지고, 그 속에 벌레들은 가녀린 생을 이어왔을테니. 잠시 스쳐가는 인간의 발길은 조심스러워야 하지 않겠나.
해서, 빈절터에서의 텅빈 공간은 오히려 충만하다.
미천골 자연휴양림 안에 있는데, 조금 에둘러 가면 휴양림 입구에 주차를 해두고, 산길을 걸어 찾아갈 수도 있다.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 속사 나들목으로 나와 삼봉 약수, 신약수와 방아다리 약수, 갈천 약수를 맛보고 간다면야 금상 첨화일 것이다. 물맛이 쏴한게 탄산, 철분 약수의 맛으로 술기운을 걷어낼 수 있다. 태풍 매미 때문에 갈천 약수의 물맛은 조금 약해졌기에 올해는 삼봉 약수의 물맛이 오히려 나았다.
2004. 0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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