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가깝다 해서도 자주 발걸음이 옮겨지진 않지만,
지난 연휴엔 애들 숙제를 핑계삼아 강화도로 나섰다.
우선 들린 곳은 강화읍내의 고려궁지.
쇠락한 왕조의 내음이 6월의 감꽃에 묻혔는데,
거칠게 단장된 고려의 궁궐터는 세월의 흔적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다만 기와의 틈새를 비집어
생의 한 때를 이어가는 들풀들만이 잔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다음 발걸음은 고려궁지에서 조금 내려와서,
조선조 철종의 잠저(왕이 되기전에 머물던 사가)인 용흥궁.
옛집의 맵시를 느끼게 해 주는 용흥궁은 볼 만 한 곳이었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아내는 차 안에서 기다리고,
골목길을 약 50여 미터 들어가 찾을 수 있었다.
용흥궁의 뒤편으로 성공회 성당이 있는데,
한국 최초의 성공회 성당이라고 하니 함께 둘러 봄직하다.
내가 갔을 적엔,
이 사진을 찍은 시간에 성당의 종소리가 은은히 울려퍼져
귀도 씻고 마음도 씻었으니,
옛 성현의 아름다움이 오늘의 속세에까지 미침을 알게해 주었다.
이제 차를 돌려 (사실은 내가 운전을 않으니, 아내가 차를 돌리고, 나는 그저 옆자리에서 차 돌리는 것을 구경만 하고 있었지만),
오상리 고인돌 무덤을 향했다.
고창의 고인돌이 남방식이라면, 여기 오상리 고인돌은 북방식 고인돌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
이제는 그저 돌무덤이지만, 예전에 청동검을 차고 청동 요령을 흔들던 샤먼의 시기에는
저만한 무덤에 조차 인간의 위의를 보이고자 했던가.
둘째는 그 판석의 위엄을 알기에는 너무 어렸는가보다.
사실은 강화 지석묘 (고인돌의 일본식 표현이란다)도 유명한 곳인데,
사람들 손이 많이 간 곳이라 그리 추천하고 싶진 않다.
자, 이제 하점면으로 가면 두 점의 보물을 만날 수 있다.
하점면의 마애불과 오층석탑이 그것인데,
두 점 모두 인적이 드문 곳에 놓여진 것이긴 하나,
예전 석공의 솜씨하며, 보물이 있어야 할 곳에 놓아둔 지관의 자리터 솜씨까지 같이 볼 수 있는 명작이다.
마애불을 모셔둔 박공지붕의 절집은 돌담벽으로 포근히 둘려쌓여 세상의 근심을 저 곳에 두고 와도 좋으리라.
봉은사 절터였다곤 하지만 절집은 간 데 없고,
석물은 남아 천년을 버티는가?
대숲에선 간간히 바람이 잦아 쏴아쏴아 파도소리를 느끼게 한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에 들어선 절집에 바다를 들여놓고 싶어한 마음은 아닐까 싶지만,
이는 나의 해석일 뿐,
세월을 이기고 서 있는 저 석탑은 말이 없다.
차를 타기를 싫어하는 것은 나의 두 딸들도 마찬가지여서,
이 너른 절터에서 잠시 즐거움을 풀었다.
이제 섬을 에둘러 정수사를 보아야 한다.
정수사 대웅전은 전등사 대웅전과 함께 강화도에 있는 두 점의 절집 보물이다.
특히나 창살문양이 예쁜데,
내 기억에는 전북 부안의 내소사와 개암사의 꽃창살만큼이나 좋았다.
내소사와 개암사의 꽃창살은 채색이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
겨울이었기에 좋아 보였는지도 모른다.
허나, 정수사의 꽃창살은 6월의 꽃밭을 법당 툇마루에 모셔
꽃공양을 올리고자 한 뜻으로 해석되어 찾아간 시기와 맞아 떨어진 듯하다.
길을 잘못 들게 되면 석모도 가는 차량과 섞여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까먹게 된다.
해서, 강화도는 남들 가는 방향과 거꾸로 돌아볼 일이다.
전등사는 지난 겨울에 다녀 왔기에 이번 여행길에선 빠졌다.
워낙에 유명한 곳이라 이곳에서 따로 이야기할 필요조차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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