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의 기록/미륵을 찾아서 39

원덕리 돌미륵

백양사 가는 길에 길안내판에서 언뜻 본 원덕리 돌미륵,금산사 미륵전도 본 터라 미륵 한 분 더 보는 것도 좋을 듯하여 내친 걸음에 원덕리를 찾아갑니다.좁은 농로 터널도 지나고, 경운기 소로를 따라 올라가니 원덕사라는 절집이 나옵니다.아무리 찾아도 돌미륵님은 보이질 않습니다.행여 놓쳤나 싶어 아래길을 훑고 웃길도 훑고하여도 보이지 않아,절집을 두드려 스님께 여쭙니다. 당우로 가려진, 사실 대웅전 유리창으로는 보입니다만, 뒷편에 돌미륵님 계십니다.철길 옆 귀퉁이에 멀거니 서 계십니다.저 시원시원한 눈망울로 세상을 굽어 보시고,우리더러 깨우친 몸으로 나은 세상을 향해 움직이라 말씀하는 듯 합니다.

금산사 적멸보궁 방등계단에 서면

금산사라면 당연히 미륵전을 봅니다. 외3층 내1층의 - 목조로 3층 짓기가 쉽지 않을 터이니 - 구조를 갖고 있는 탑이라고 보아야 하나요.여튼 금산사 마당에 흩어져 있는 보물 몇 점 속에서 국보의 명찰을 지니고 있습니다.그러나 그 절집의 가장 아름다운 곳은 제게는 방등계단이었습니다.방등方等이란 말의 뜻을 오늘날의 민주주의 어쩌고 부처님의 평등 어쩌고 하는 것이 넌센스일지 모릅니다만,큰 수레의 본래 뜻과는 어느 정도 맞을 것입니다.적멸은 저 우주 속으로 멀어져간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저 우주에서 우리 속으로 들어온 무엇이겠지요?

양평 상원사 동종을 보러가는 길

한 때 국보였다가 지금은 무슨 천덕구러기처럼 콘크리트 건물의 옥상위에 놓여 있는 동종,상원사의 동종을 보러 갑니다.문화재가 되면 접촉.....손만짐이 허용되지 않기에,진품으로 판명나기 전에 촉감이나 궁금했던 것을 세밀히 볼 양으로 길을 나섰습니다.4대 적멸보궁인지 5대 적멸보궁인지에 들어가는 영월의 법흥사를 들러,여주의 고달사지를 지나서,양평의 상원사로 갑니다. 절집의 첫인상은 콘크리트 기숙사로 막혀있는 기와집 같았습니다.그러나 절집의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여러번 난리와 전쟁통에 불이나서 최근에 지은 절집치고는 참으로 정갈하고 세련되었더랬습니다.눈밝고 생각깊은 주지와 신도들의 아름다운 합창이겠지요, 이리 아름다운 절집을 지었음은. 당초 보고픈 동종보다도 절집의 간결한 아름다움에 눈이 먼저 갔습니다.동종은..

당진 면천 영탑사 - 금동 비로자나 삼존불

면천 영탑사를 찾습니다. 남도에 태풍이 온다는데 바람은 잦아들어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립니다.절집의 고요가 있어 더욱 좋은 시간인 듯 합니다. 우선 영탑부터 찾아봅니다.절집 마당에 5층으로 있던 탑을 탑신만 유리광전 뒷 석산의 바웃돌 위에 2층을 더하여 7층으로 앉힌 것이라고 합니다.제가 보기에는 어느 눈 밝은 스님께서 반야용선의 탑신으로 우뚝하니 옮겨두신 듯 합니다. 영탑의 바로 아래에는 유리광전이 있습니다.약사불을 모신 당우입니다. 애초에 저 약사마애불이 먼저 조성되고 뒤에 당우로 덮어둔 형상입니다. 면천 沔川의 면자는 물찰랑일 면이라고 스님께서는 설명하십니다. 실제로는 물이 부족한 지역이라 그런 글자로 마을 이름을 삼았다고 합니다.결국은 중생의 삶이 고달프고 병마에 시달리는 지역이라, 약사불을 조성했..

진해 웅동 성흥사

'선지자가 고향을 떠나서 환영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라고 예수가 이야기했다고 하지만, 고향 인근의 절집 또한 그러하다.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의 기억을 뒤로하고 추석을 앞두고 찾은 절집은 고요가 내려앉았다. 본전도 본전이지만 나한전의 500 나한은 저마다의 표정으로 차분히 웃고 있었다. 불모산 자락이고 하지만 오히려 김해 쪽의 굴암산 자락이 더 가찹고, 굴암산 서편의 불모산에는 범어사의 말사인 곰절 성주사가 있다. 외려 진해 웅동 쪽에 있는 성흥사는 쌍계사의 말사로 절집의 공간적 세력 구조가 오묘한 구석이 있다. 늘상 그렇지만 절집 마당의 배롱나무는 백일 붉은 꽃을 피운다. 하얀 수피가 스님 머리의 그것 마냥 맨드드러 하다. 운판과 쇠북이 걸린 종루는 날듯이 기지개를 켠다. 쭉쭉 뻗은 편백이 함께 씩씩하..

장흥 보림사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

가기는 비로자나불을 보러 갔으나 기억은 절밥만 남았다.절밥이 참 맛나는 곳, 장흥 보림사.근년에 공양 절밥 중에 최고로 칠만하였다. 인도에도 가지산이 있다 그러고, 중국에도 있다 그러지만, 여기 장흥에도 가지산의 보림사가 있다. 이 아름다운 석탑과 석등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최근 사찰의 기계식 석탑과 대비된다. 보륜의 개수가 서로 다름이 이상하다만. 아름다운 비로자나불 좌상이다.주물의 흔적이 미세하게 남아있는 철조불이지만목각의 느낌이 묻어난다.국보급이란 단어가 무색할 만큼 아름답다. 절집 뒤편으로 가을이 내렸다.산사의 가을은 웅숭깊다.

남도 세 절을 밟을 양이면-선암사, 송광사, 흥국사

남도 세 절을 밟을 양이면, 마땅히 선암사가 으뜸이다. 매화꽃 이울진 자리를 이어 겹벚꽃이 분분한 즈음, 봄의 절집은 향연 그 자체이다. 선암사 홍교는 내를 가로지르는 반달을 걸어두어 내 마음이 다 환하다. 조계산 너머에는 승보도량인 송광사가 있어 짝을 이룬다. 우화각 무지개 다리에는 뭇 중생의 소원을 담은 연등이 물무지개로 떴다. 신선이 되는 공덕이 저 다리 한 번 건너기로 될까마는, 무엇이 되든 되고픈 것이 있다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공부 아닐런지. 해서 육조 혜능은 조계산으로 왔을지 모른다. 내쳐 흥국사로 간다. 흥국사 무지개 다리는 여전히 아름답다. 절집은 무질서하여 옛맛을 잃었고, 대웅전은 중수공사로 나와의 인연은 멀다. 다만 묵묵한 저 무지개 다리만이 지난 밤의 빗줄기를 기억한다. 흐르는 것..

봉천동 마애불을 찾아서

원래가 너무 가까이 있는 것들에게는 소홀한 법이다. 봉천동 마애불을 곁에 두고도 찾지 않음은 그러한 소이일 것이다. 연꽃대좌에 연봉오리를 들고 앉았으니 멀리 서쪽에서 오실 부처를 그리는 마음일 지 모른다. 그러나 저러나 왜 이 골짝에 미륵을 새겼을까? 조금 위쪽의 약수터 바위는 신기 줄줄이 흐르는 굿당이 있었을 지 모르는 일이다. 관악산 마사토가 습한 기운이 깃든 곳에 촛불 신당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던 적이 수 해 전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