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들른 길에 진전사지를 찾았다.
국보 122호 진전사지 3층석탑이 있는 곳이다.
남북국시대 신라의 석탑전형을 따른 듯하다.
겹벚꽃은 아직 봉오리가 덜 여물었지만,
수령이나 수형이 자못 당당하여 세월의 무게를 일러준다.
아래로부터 살펴보자면
지대석 위의 하대석에는 비천상으로 보이는 8 부조물이 조각되어 있으며,
상대석에는 8부신중이 조각되어 있다.
나의 눈에는 가릉빈가와 건달파 정도가 정도가 보일 뿐이다.
그위 1층 탑신에는 각 방향에 4면불이 새겨져 있다.
수인으로 보거나 하면 약사불도 보이고, 아미타불도 보이는 정도이다.
비례가 좋아 안정감이 있으나 상륜부는 도난되었거나 혹은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비례가 깨어진 그 부분이 아쉽다.
저 정도의 조각을 새길라치면 공덕주의 쌀가마니 꽤나 들었을 것이다.
절터, 진전사지는 훨씬 위쪽인 것으로 보아서 절집의 위세는 대단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새절집의 보살님에 따르면 석교리 대문터라는 곳이 일주문이 있던 곳이었다고도 하니.
이제 진전사지의 절터를 찾아간다.
남북국시대 신라 도의선사가 남선종을 전래한 곳이기도 하려니와, 삼국유사의 일연스님이 공부를 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하기야 집없는 중생이 어느 절터인들 닿지 않았으랴만.
일반적인 부도의 형식을 따르지 않아 이채롭다. 4각의 상대석 위에 8각의 몸돌을 얹어두었다.
8각은 아마도 지상에서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도형일 것이다. 나의 생각에는.
별다른 장식없이 문고리짝만을 두었다. 저 문짝을 밀치면 스님을 만날 수 있으려나.
다만 몸돌아래 연화좌만이 유일한 장식이라면 장식이다. 그것이 스님에 대한 짧은 헌사일 것이다.
아마도 부도탑의 시원으로 평가될 만할 것이다. 9세기라는 시점상으로 본다면.
다시 짬을 내어 신흥사를 들러본다. 개인적으로는 썩 가보고 싶지 않은 절집이다.
예전에는 주지 다툼으로 각목을 들고 주지를 옹립하려던 조폭 늬우스를 장식하던 곳이다.
종교에 돈이 얽히면 그리된다. 조폭의 역사는 깊다. 하기사 돈이 얽히지 않으면 또한 종교도 아닌 것이긴 하지만.
물들지 않겠다는 화원 무염의 無染이란 호를 나는 참 좋아한다.
그이의 호처럼 그 작품에는 어떠한 물듦도 없다. 간명하고 단순한 아름다움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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