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반야바라밀다심경 - 唐 지혜륜 智慧輪 스님 본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3. 9. 12. 10:23

*반야심경에는 廣本(大本)과 略本(小本)이 있어 흔히 암송하는 반야심경은 원숭이 오공(悟空:悟字배의 스님이라는 설이 있다. 그보다는 공을 깨쳤다는 게...)을 데리고 오천축국을 다녀온 삼장법사 현장 스님의 약본이다. 결론적으로 인연과 서사敍事가 빠져있어 이해하기 힘들다. 여기서는 지혜륜 智慧輪 스님(이 분도 삼장이시다)이 번역한 광본의  반야심경을 옮겨둔다. 

 

*불경은 듣기(聞)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쁨으로 연습(學)하고 실천(行)하는 데 의미가 있다. 광본의 처음과 끝은 그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약본의 정종분(正宗分)은 그것을 잘라버린 것으로 불교를 개인적이고 폐쇄적이며 수동적으로 만들 여지가 있다. 

 

般若波羅蜜多心經
唐上都大興善寺三藏沙門智慧輪奉 詔譯


如是我。一時薄誐梵。住王舍城鷲峯山中。與大苾蒭眾。及大菩薩眾俱。

爾時世尊。入三摩地。名廣大甚深照見

時眾中有一菩薩摩訶薩。名觀世音自在。

甚深般若波羅蜜多時。照見五蘊自性皆空。

即時具壽舍利子。承佛威神。合掌恭敬。

觀世音自在菩薩摩訶薩言。聖者。若有欲學甚深般若波羅蜜多云何修行

如是問已。爾時觀世音自在菩薩摩訶薩。告具壽舍利子言。

舍利子。若有善男子。善女人。行甚深般若波羅蜜多行時。

照見五蘊自性皆空離諸苦厄

舍利子。色空。空性見色。色不異空。空不異色。是色即空。是空即色。受想行識。亦復如是。

舍利子。是諸法性相空。不生不滅。不垢不淨。不減不增。

是故空中。無色。無受想行識。無眼耳鼻舌身意。無色聲香味觸法。無眼界。乃至無意識界。

無無明。亦無無明盡。乃至無老死盡。無苦集滅道。無智無得

以無所得故。菩提薩埵。依般若波羅蜜多

心無障礙。心無障礙故。無有恐怖。遠離顛倒夢想。究竟寂然。

三世諸佛。依般若波羅蜜多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現成正覺。

故知般若波羅蜜多。是大真言。是大明真言。是無上真言。是無等等真言。能除一切苦。真實不虛。

故說般若波羅蜜多真言。即說真言
(引)誐帝誐帝。播(引)囉誐帝。播(引)囉散誐帝。冒(引)地娑縛(二合)(引)

如是舍利子。諸菩薩摩訶薩。於甚深般若波羅蜜多。應如是

爾時世尊。從三摩地安祥而起。讚觀世音自在菩薩摩訶薩言。

善哉善哉。善男子。如是如是。如汝所說。甚深般若波羅蜜多。應如是

如是行時。一切如來。悉皆隨喜。

爾時世尊如是說已。具壽舍利子。觀世音自在菩薩及彼眾會一切世間天人阿蘇囉巘 嚩等。聞佛所說。皆大歡喜。信受奉

 

1977년 현재훈(玄在勳) 이란 소설가가 신해(新解) 반야심경(般若心經)을 내었을 때, 산스크리트 원문에서 옮긴 내용이 있어 위의 번역으로 적당하기에 옮긴다. 

1977년에 나온 이 책을 마산 부림책방에서 구했다. 당시가격 900원.

 

전지자(全知者)인 깨달은 사람에게 예(禮)하고 봉헌(奉獻)하노라.

구도자(求道者)이며 성(星)스러운 관음은 심원한 지혜의 완성을 실천하고 있을 때

존재하는 것에는 다섯 가지 구성요소(構成要素)가 있다고 간파했다. 

더구나 그는 이들 구성요소가 그 본성(本性)에서 보자면 실체(實體)가 없는 것이라고 간파했던 것이다.

 

사리푸트라여!

이 세상에서는 물질적 현상에는 실체가 없는 것이며, 실체가 없기에 (오히려) 물질적 현상(일 수 있는 것)이다. 

실체가 없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물질적 현상을 떠나있지는 않다.

또 물질적 현상은 실체가 없다는 것을 떠나 물질적  현상인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대개 물질적 현상이라는 것은 모두 실체가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대개 실체가 없다는 것은 물질적 현상인 것이다.

이와 마찬 가지로 감각도 표상(表象)도 의지(意志)도 지식도 모두 실체가 없는 것이다.

 

사리푸트라여!

이 세상에서는 모든 존재하는 것에는 실체가 없다는 특성(特性)이 있다. 생(生)했다는 것도 없고, 멸(滅)했다는 것도 없고,

더럽혀진 것도 아니고, 더러움을 떠난 것도 아니고, 감(減)해지는 일도 없고 증(增)해지는 일도 없다. 

그러므로 사리푸트라여!

실체가 없다는 입장에서는 물질적 현상도 없고, 감각도 없고, 표상(表象)도 없고, 의지도 없고, 지식도 없다.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코도 없고, 혀도 없고, 신체도 없고, 마음도 없고, 모양도 없고, 소리도 없고, 향(香)도 없고,

맛도 없고 닿(觸)는 대상도 없고, 마음의 대상도 없다.
눈의 영역(領域)에서 의식(意識)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모두 없는 것이다. 

(깨달음도 없으려니와) 미망(迷妄)도 없고, (깨달음이 없어지는 일도 없으려니와) 미망이 없어지는 일도 없다. 

 

이리하여 드디어 늙음도 죽음도 없으며, 늙음과 죽음이 없어지는 일도 없다는 데에 이르는 것이다. 

고(苦)도 고(苦)의 원인도, 고를 제(制)하는 일도, 고를 제하는 길(道)도 없다. 안다(知)는 것도 없고 얻(得)는 바도 없다. 

그런 고로 얻는다는 것이 없음으로 모든 구도자의 지혜의 완성에 사람은 편안히 마음에 덮임이 없이 주(住)하고 있다.

마음을 덮는 것이 없으므로 두려움(恐怖)이 없으며 전도(顚倒)된 마음을 멀리 떠나 영원한 평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에 계시는 눈뜬 사람들은 모두 지혜의 완성에 편안하여

그 위 없는 바른 눈뜸을 깨달을 수 있으셨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알지어다. 지혜의 완성의 큰 진언, 큰 깨달음의 진언, 무상(無上)의 진언, 무비(無比)의 진언은

모든 고(苦)를 진정시키는 것이며 거짓(僞)이 없으므로 진실이라고.

그 진언은 지혜의 완성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설하셨다.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산가테 보디 스바하.

(가는 자여, 가는 자여, 피안으로 가는 자여, 피안으로 완전히 가는 자여, 깨달음이여, 행복 있으라.)

여기에 지혜의 완성의 마음(心)을 끝내다. 

 

Post Blogging Notes:

 

현재훈 소설가의 저 책이 그이의 창작인지는 나로서는 판단이 어렵다. 

출판사가 우선 일본판의 중역본의 의심을 낼만한 곳이기도 하려니와 

몇 년 뒤 다른 이의 이름으로 유사한 책이 나오기도 해서이다.

(그 책까지 중고서적에서 구할 생각은 없다.)

당시에는 이름을 빌려주던 것이 흔한 시절이긴 했지만. 

덧붙이자면, 현재훈 소설가는 시인 신동엽의 친우이기도 하다. 

나의 판단은 일본어 중역이라는데 조금은 치우쳐있다. 

-출전을 명기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미려하고 적확한 번역어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 물론 그이 현재훈 소설가는 [대석가] 대하소설집을 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