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다시 0) - 즉비시명의 논리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1. 4. 16. 03:19

수련이 가득한 모네의 정원. 

이 그림은 아니지만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본 모네의 수련그림은 너무 작은데 놀랐다. 

내가 가진 상相은 초등학교 시절 미술책의 도판에 기본한 것이었기에.

(물론 벽을 채우는 커다란 그림도 있었지만)

저 하얀 수련은 수련이다. 

이 경우 앞의 하얀 수련은 현상계로서의 수련 사물事物이다.

그러나 뒤의 수련은 우리 머리 속이나 언어상으로 개념화된 수련이라는 상相이다.

즉, 하얀수련은 수련과 동일률이 성립하지 않는 즉비(卽非)가 된다. 수련은 곧 수련이 아니다. (미다)

그러므로 (是故) 이제 저 하얀 수련은 수련이 된다. 

요컨대 수련이라는 이름을 얻는 (是名) 것이다. (기다)

 

이런 이해의 방법과 별개로 물상을 확장 혹은 축소할 경우에 즉비(卽非)를 생각해보자.

즉, 쪼가리진(少) solid mass 로서의 미진微塵과

그것들의 합 (合) Seizing upon solid mass (法)으로서의 세계世界가 그것이다.

 

須菩提 諸微塵如來說 非微塵 是名微塵 如來說世界 非世界 是名世界. (13장)

 

이렇게 일합상 一合相 역시 즉비의 논리구조로 포섭된다.

何以故 若世界 實有者 卽是一合相. 如來說 一合相 卽非一合相 是名一合相 (30장)

이 일합상의 내부에 개별 요소로서 존재하는 오온 역시 이러한 논리구조 아래에 있긴 마찬가지이다.

一合相者 卽是不可說 但凡夫之人 貪着其事 (30장)

 

이제 이해의 방법을 물物이 아닌 동태 動態에 대해서 확장하면

若有有情如來度者,如來即應有其我執、有有情執、有命者執、有士夫執、有補特伽羅等執。

善現!我等者,如來說非執,故我等

而諸愚夫異生有此執。善現!愚夫異生者,如來說非生,故名愚夫異生 (현장 번역본 25장)

집착하는 행위 자체, 대상이나 객체 뿐 아니라

그의 속성(인연)으로서의 행위/행동의 동사도 동일한 논리구조로 설명된다.

 

아울러 다음의 구절은 새겨둘 만하다.

何以故 如來所說法 皆不可取 不可說 非法 (7장)

비법과 비법이 아닌 것조차도 아니다.

이 논리를 위의 모든 각각에 대해서 고민해 볼 일이다.

 

 

나의 이해는 여기까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