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톺아 읽기 (2) -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3. 3. 2. 20:29

불교적 세계관에서 물질의 특성을 논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 세 마디는 재미있다.

많은 특성들 중에서 대표적인 셋 만을 논한다고 볼 수도 있고, 

그 셋이 특수한 관계와 조건하에서의, 곧 의존적인 의미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후자를 지지하는 편이다. 

그리고 불(不)은 '없다'가 아니라 '생기지 않는다' (생기지 않게 해야한다)로 읽는다.

쌍으로 말하여진 물질의 성질(드러남, 연기로부터의)은 설명의 대칭성을 갖는다, 고 보아야 한다.

 

이제 다시 읽어보자면,

 

모든 만물은 '고정되거나 변하지 않는 자아란 것이 없기에' 다만 조건 속에서의 나타남이므로,  '태어남과 죽음(生, 老死)이' 생기지 않게 되는데 (생기지 않으려면),

이의 원인(조건)이 되는 업의 행위 혹은 습관(有)으로 인한 '더러움과 깨끗함'이 또한 생기지 않게 되고 (생기지 않게 해야 하고),

(청정함은 죄악에 관통(貫通)되어 있지 않다, 고 이샤 우파니샤드는 기록하고 있다. 현재훈, 신해반야심경에서)

업의 행위의 조건이 되는-혹은 행위가 의존하는- 애취(愛取) 혹은 소유의 '끝없는 갈구나 만족함' 또한 생기지 않게 된다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부리야드 아라니야가 우파니샤드에서는, 이것은 참으로 바라문의 영원한 위대성이다.  업에 따라 증대하지도 않고 축소되지도 않는다. 사람은 기꺼이 그 족적(足跡)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알면 악업에 의해 더럽혀지는 일이 없으리라, 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훈, 신해 반야심경에서.)

곧, 그러한 '무아'의 조건성-의존성-을 깨닫게 된다면 갈구하는 욕망의 마음도 없고,

그로 인한 집착의 행위도 없으며,

그 결과로 윤회하는 삶의 고통-생멸에서 벗어나게 된다.

 

(한역 반야심경에서는 주어와 목적어를 세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의 읽음도 이러한 주어/목적어가 불분명하다만.

諸法을 주어로 가져가면 나의 읽음이 되고,

空相 - 이 또한 공상, 공과 상, 공의 상으로 해석 가능하지만 -을 주어로 가져가면 조금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이는 결국 연기하는 물질에서 윤회의 고리를 끊는 무아에 대한 설법으로 읽힌다.

그리하여 그것은 우리를 온전히 Now and Here! 로 가져온다. 

해서, 결국 어떻게 할 것인가와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의 의지와 실천의 문제 만을 남겨두게 된다.

 

그것이 반야 바라밀의 진의는 아닐런지.

그래서 이 구절은 재해석 된다. (산스크리트어 원문을 참조하면)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故說般若波羅密多呪 卽說呪曰*

반야바라밀다 (고정된 자아가 없다는, 존재의 실체가 곧 공이라는 것을 깨달아) 모든 괴로움을 제거하는 것이다.

(고정된 자아가 없는 '공' 에는 지각(智)작용도 없고, 의식을 대상을 취하는 것(取/得/愛)도 없기에

삼세의 부처님들은 이 지혜를 완성하는 수행법 반야바라밀다(존재의 다섯 요소를 관찰하여, 그것들은 다 실체가 없는 것들임을 꿰뚫어 보는 것)의지하여서 최상의 완전한 깨달음에 머물게된다.

실제로 모든 괴로움을 다 없앨 수 있기에 거짓이 아니며, 반야바라밀다에 있어서 지혜완성의 진실한 말씀(呪)를 말하면 이렇습니다. (결론적으로 주문은 일종의 축문일 뿐이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은 실천수행의 반야바라밀다가 핵심이다.)

「가신분 이시여! 가신 분이시여! 열반으로 가신 분이시여! 적멸과 하나되어 열반으로가신 분이시여! 깨달음을 믿습니다.」

 

* 이 부분의 해석은 <반야심경 정해>(알아차림)를 펴낸 관정 스님의 해석을 빌려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