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즉비의 구문을 다시 쳐다본다.
구마라집 : 如來說世界 非世界 是名世界
현 장 : 諸世界,如來說非世界,是故如來說名世界
티벳본 Tibetan 의 영어 직역은
’jig rten gyi khams ga" lags pa de khams ma mchis par de b#in gßegs pas gsu"s te
des na ’jig rten gyi khams #es bya’o.
(= That which is a world system has been said to be systemless by the Tathågata, and thus it is called a world system.)
이들의 영어번역은 이렇다.
Max Müller 1894: Sanskrit 번역
And what was preached by the Tathâgata as the sphere of worlds, that was preached by the Tathâgata as no-sphere. Therefore it is called the sphere of worlds.
Price 1969 : 구마라집 한역본 번역
[Furthermore,] the Tathagata declares that a world is not really a world; it is called “a world.”
Red Pine 2001: Sanskrit번역 (Müller 번역본과 동일판본)
And what the Tathagata says is a world-system, the Tathagata says is no system. Thus it is called a ‘world-system.’
no-sphere란 의미를 알기 어려운 번역부터 not really a world를 거쳐, systemless와 no-world-system까지 단일명사 번역이 시도되었다. 사실 a-system 이란 말이 없기에 그렇지만 a-system이 차라리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system-less보다는.
한자 說의 의미도 단순히 say부터 preach와 teach까지 다양하게 번역이 시도되었다. 선생에게서 배운다는 의미에서는 teach를 선호하는 편이다, 나는. 배움은 익힘(연습, 훈련)을 동반하지 않던가?
13장의 내용은 이렇게 요약된다.
1) 當何名此經 我等云何奉持. 是經 名爲金剛般若波羅蜜 以是名字 汝當奉持 경의 이름이 선언되었다.
2) 佛說般若波羅蜜 卽非般若波羅蜜 是名般若波羅蜜
현장본이 좀더 뜻이 선명하다.
如是名字汝當奉持。何以故?如是般若波羅蜜多,如來說為非般若波羅蜜多,是故如來說名般若波羅蜜多。
경의 이름만을 받들어라, 반야바라밀은 여래가 반야바라밀을 설한바 없으므로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이기 때문이다.
3) 若復有人 於此經中 乃至 受持四句偈等 爲他人說 其福甚多. 다른 모든 보시보다 이 경의 경구를 이웃과 나누며
(바라밀을 실천하는) 복덕이 더 크다.
이렇게 경의 이름을 자기 경전 안에서 선언하는 것은
이른바 자기호출이다. 끝없는 순환 구조를 만들게 된다.
13장에서 경의 이름이 是經이란 대명사로부터 경의 이름을 선언하지만
9장부터 此經이란 명칭으로 언급되기 시작한다.
於此經中受持 乃至 四句偈를 위해 언급된 내용이다.
자기 순환적인 이 구조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경전 자체가 부처님 사후에 기술되었기 때문일 것이란 추론을 해본다.
Sanskrit 영역본은 이렇게 쓰고 있다.
At these words, the Venerable Subhuti said this to the Lord, “What is the name, Lord, of this round of teachings, and how should I memorize it?”
At these words, the Lord said this to the Venerable Subhuti, “This round of teachings,
Subhuti, is called the Perfection of Insight, and this is how you should memorize it. Why is that?
The very Perfection of Insight, Subhuti, which the Realized One has preached is itself perfectionless. (Paul Harris 번역)
- dharma-paryāya „method (round) of teaching‟
This having been said, the venerable Subhuti asked,
“Bhagavan, what is the name of this dharma teaching, and how should we remember it?”
The Buddha told the venerable Subhuti, “The name of this dharma teaching, Subhuti, is the Perfection of Wisdom.
Thus should you remember it. And how so? Subhuti, what the Tathagata says is the perfection of wisdom, the Tathagata says is no perfection. Thus is it called the ‘perfection of wisdom.“ (Red Pine 번역)
'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 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25) - 움직임도 움직임이 아닌 것이니 (0) | 2021.04.15 |
---|---|
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18) - 세상의 마음을 보는 방법 (0) | 2021.04.15 |
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14) -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방법 (0) | 2021.04.14 |
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12) - 옛 사람의 향기와 함께하는 방법 (0) | 2021.04.14 |
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11) - 인연으로부터 말미암은 (0) | 2021.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