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18) - 세상의 마음을 보는 방법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1. 4. 15. 17:21

佛告. 須菩提 爾所國土中所有衆生

若干種心 如來悉知.

何以故 如來說諸心 皆爲非心 是名爲心.

所以者何 須菩提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

 

이해하기 힘든 구절이다. 세상의 모든 중생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니.

그 이유가 마음이 마음이 아니라 그 부름이 마음이기 때문이라는데.

과거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잡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미래의 마음도 얻지 못하기 때문이라는데.

 

현장 본을 들춰본다.

 

佛言:善現!乃至 爾所 諸世界中 所有有情, 彼諸有情 各有種種,其心 流 我悉能知。

        何以故? 善現! 心流注 心流注者, 如來說非流注, 是故 如來說名心流注 心流注。

        所以者何?善現!過去心不可得,未來心不可得,現在心不可得。 

 

조금 뉘앙스를 달리한다. 

구마라집의 번역이 정태적 static 상황이라면 현장의 번역은 동태적 dynamic 상황이다. 

 

각각의 중생들의 그 마음의 흐름을 여래는 모두다 능히 알 수 있다.

왜 그런가, 마음의 흐름이란 것은 마음의 흐름이 아니기에 다만 그 이름이 마음의 흐름이기에 마음의 흐름이라 부른다.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잡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역본을 보자.

 

The Lord said, “Subhuti, as many living beings as there might be in those world-systems,

I would know their manifold streams of thought. Why is that? Those so-called ‘streams of thought,’
Subhuti, have been preached by the Realized One as streamless. That is why they are called
‘streams of thought.’ Why is that? Subhuti, one cannot apprehend a past thought, one cannot
apprehend a future thought, one cannot apprehend a present [thought]

 

마음 흐름의 줄기를 알아차린다. 왜 그런가? 마음의 흐름이란게 흐름이 아니기에 (비흐름) 그러하다. 

그러기에 마음의 흐름이라 불리운다. 왜 그런가? 누군들 과거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붙들지 못하고?),

미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며, 또 현재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금강경이 당대의 대표문파였던 부파불교에 대한 대승의 대응이었다는 부분이 이런 구절에서 확인되는 것은 아닐런지.

삼세실유법체항유(三世實有法體恒有)을 주장했던 부파불교 소승에 대한 대응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