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석정 생가에서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05. 11. 3. 07:24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신석정-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森林帶)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 새끼 마음놓고 뛰어 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 소리 구슬피 들려 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 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 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오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똑 따지 않으렵니까?

  

 

변산을 빠져나오며, 그냥 떠나기에 무엇하였다.

이 고장의 사투리로 '거시기'하여서 신석정 시인의 생가 '청구원'을 찾아 나섰다.

변산을 빠져 나오는 길에 '해창'에 있는 그의 시비를 본 탓도 있었지만, 고교시절 줄줄거리고 외웠던 그이의 시가 생각나서이다.

지나치게 목가적인 그이의 시는 현실과 타협하지 못한, 어쩌면 '거시기'한 시대와의 불화를 드러낸 석정만의 방식이었는지 모른다.

 

부안에서 청구원을 찾아나선 길은 쉽지 않았다.

이정표도 보이지 않았고, 새로이 닦아놓은 국도 탓에 몇 바퀴를 돌아서 겨우 찾았다.

양철 스레트 지붕을 생각하였는데, 웬걸 초가집이 거기 있지 않은가?

 

목가적 시인의 생가로는 더없이 어울리는 황토초가집이 들어서있건만, 

시인의 젊은 날을 생각키에는 난 너무 웰빙이라는 천박한 단어의 함정에 익숙해져 있었다.

뒤로 보이는 슬라브 양옥과의 부조화만이 옛날 시인의 시절과 다르지 않아 유일하게 일치하는 것이리라, 고 생각하였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청구원의 안방에는 석정의 사진이 걸려 있다.

전주에 나가 살 때의 사진이라 하는데, 대단한 멋쟁이로 보였다.

나는 저 양복의 조끼가 여간해서는 익숙치 않았다.

온갖 정원수에 화초에 둘러 싸인 시인의 모습에서 나는 괜한 심술을 부려본다.

부러움 탓이리라.


 


 
 
나로서는 석정의 시보다는

그곳을 찾기까지의 골목길에 보여준 삶의 흔적이 훨씬 좋았는데,

살아 생전 (생거) 부안을 지키자는 벽그림과 글씨가 정겨웠다.

거기 작은 글씨로 '신석정 고택'이라고 적어둔 팻말의 앙증맞음에 웃음이 났다.

저 조그마한 팻말을 놓쳤다면 나는 영영 청구원을 찾지 못할 뻔하였다.

 

석정이 살아 꿈꾸던 것들을 마을 담벼락마다 지킴이로 그려진 벽그림과 글씨가 지켜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