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극장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동시 상영으로 유명했던 그 극장은 명색이 서울의 재개봉관이었다.
봉천동에 재개봉관이 있긴 했지만, 신림사거리 신림 극장에서 꽤 많은 영화를 보았다.
한 편의 수준있는 작품과 또 한 편의 야한 영화....
앞쪽에는 주로 학생들이 앉았었고 뒤편에는 주로 당시의 직업여성들이 앉았다고 보여지는데,
그런 생활의 차이는 영화를 보는 내내 서로 다른 장면에서 웃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은 귀부인으로 곧잘 나오는 나*희의 <백구야 훨훨 날지를 마라>같은 야한 영화를 본 것도 그 극장이었다.
오늘 이야기는 그 영화에 대한 것이 아니라 신림극장에서 본 <소오강호> 이야기이다.
무협을 읽은 이라면 알만한 단어, 금분세수, 이를테면 자진 사직의 날인데,
知音知己, 음악의 인연으로 우정을 맺은 강호의 전대 고수는 정파와 사파의 인물이었다.
이들의 우정을 약점 삼아 무림을 장악하려는 이른바 정파의 장문인들의 양면성과,
정의 하나로 호기롭게 무림을 헤쳐가는 세파에 물들지 않은 젊음들,
그룻배를 타고 내려가는 장면에 오버랩되는 소호강호의 음률.
나는 그 보다는 묘족에 마음이 먼저 가 있었다.
그러고도 실제의 묘족을 만나본 것은 싱가폴의 어느 선술집에서였다.
그 <소오강호>의 원작자 진융, 한자발음대로의 김용이 더 익숙한,이 올해 유명을 달리하였다.
(사실 영화를 볼 당시에는 그이의 작품이 원작인지 알지 못하였다.)
자기 시대와 더불어 뒷모습을 남긴 이는 행복할진대.
그것은 무협이 더 이상 소용에 닿지 않는 시대의 종언일지 모른다.
<광장>의 최인훈 소설가도 돌아가셨다.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의 허수경 시인도,
스티븐 호킹도,
그이의 책은 전파과학사 문고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이후에 제대로 읽은 과학대중서술이었다.
서양문화의 시간의 처음을 느끼게 해준....
<하숙생>의 최희준 가수도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을 올해 마치셨다.
옛 노래이지만 적지 않은 시절을 하숙생으로 보낸 터에 그이의 노래는 늘 입가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