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定慧結社文 지눌스님 - 지금 이 자리에서, 오직 고요함과 오직 앎으로 마음을 돌이켜 비춰보라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8. 11. 10. 05:03

정혜결사문 지눌스님/서정형 풀어씀, 풀빛, 청소년 철학창고 17


물론 정혜를 닦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만 어렵다고 해서 지금 버리고 닦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더욱 여려워질 것입니다.


圓覺經에 "말법시대의 중생이라고 할지라도 마음에 망상만 품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바로 깨달은 보살이다."라고 부처님이 말씀했으니,...

수행해서 곧바로 깨달음을 얻지 못하더라도 지금 뿌린 복되고 좋은 씨앗이 다음 생에서 또다시 이어져서 마침내 깨달음에 이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마음은 어지럽거나 한 자리에만 머물지 않아야 하며, 斷見을 일어키지도 말고 공과 有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깨달음의 지혜가 언제나 밝아서 거룩한 행실을 닦으며, 큰 소망을 담아서 많은 중생을 건질 것이니

자기 한 몸의 해탈만을 구하려는 뜻은 아닙니다.


또한 움직일 때나 고요히 있을 때, 말할 때나 침묵할 때를 막론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이 인연에 따라 허깨비 같이 생겨난 것이어서

본래 공하고 실체가 없는 것이 거품과 같고 구름이나 그림자 같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허망한 현상의 근원을 살펴서 편견에 얽매이지 말고

몸과 마음의 본성을 지켜 觀照하는 힘을 기르면,

고요한 가운데 마음의 근본에 이르러 주관과 객관의 구분없이 온 세상이 오직 하나의 마음이라는 것을 보게될 것입니다.

...이 때 선정의 고요함과 지혜의 비춤이 드러나 그 무궁무진한 작용으로 인연있는 중생을 널리 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할 일을 마친 사람이 자신과 남을 구원하는 길 없는 길이며 쓸모없는 쓸모입니다.


원효대사께서도, "지혜로운 사람의 관법 수행은 이와 반대로 바깥의 모든 현상을 버리고 안으로 자신의 마음을 찾는데,

그것이 궁극에 이르면 마음의 이치까지 모두 잊고 얻은 이치까지 잊으며 마침내 얻고자 하는 마음까지 잊게된다.

그런 까닭에 '이치 없는 지극한 이치'를 얻을 수 있고, 마침내 진리로부터 물러나지 않게 되어 무주 (자유롭고 거침이 없는) 열반의 경지에 머물게 된다."


三學은 ....내용으로 구분한다면

진리에는

본래 내가 없다는 것이 계율이고,

본래 산란함이 없다는 것이 선정이며,

본래 미혹됨이 없다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중국의 慧能이 "마음에 그릇됨이 없는 것이 자성의 계율이요,

마음에 산란함이 없다는 것이 자성의 선정이며,

마음에 어리석음이 없다는 것이 자성의 지혜이다."라고 말씀하신 그것입니다.


正法念經에서는 "온 세상 사람을 구한 공덕도 밥 먹을 동안 마음을 단정히 하고 뜻을 바르게 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했고...


百丈和尙께서도 "마음의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대상에 대해서 생각할 줄만 알고 마음을 돌이켜 비춰볼 줄은 몰라서....."


고요함(止)과 깨어있음(觀)에 대해서는 생각을 떠난 마음의 본체에 입각해서....

수행과 본성이 어우러져서 진리와 실천을 함께 통달하는 것이므로

수행의 길로서 이보다 더 지름길은 없습니다.


法集別行錄에 이르기를,

"처음 깨달음에 마음을 일으킬 때부터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오직 고요하고 깨어 있어서 변화도 없고 끊어짐도 없다.

이치를 통달해서 깨달은 때에는 진리나 지혜라고 하고,

마음을 일으켜 수행할 때에는 止와 觀이라 하며,

본성에 따라 수행할 때에는 定과 慧라고 하며,

번뇌가 다 소멸하고 수행이 원만한 경지는 보리와 열반이라 한다.

명심하라. 처음 깨달은 마음을 일어킬 때부터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오직 고요함이요 오직 앎이라."


심성은 본래 자유롭고 거침이 없어 인연따라 구르는 것 같지만

항상 변함이 없다....

경전에 이르기를 "온갖 사물이 바로 마음의 성품인 줄 알아야 지혜의 몸을 이룰 것이니,

다른 것에 의해 깨닫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고, 또

"말로 하는 법은 조그만 지혜의 괜한 분별일 뿐이어서 그것이 장애가 되어 마음의 본성을 터득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마음을 닦는 사람은 자신을 굽히지도 말고 자만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자만하게 되면 바로 이 마음이 본성에 머물러 있지 않고 보통사람이 되었다가 성인이 되었다가

순간적으로 떳다 가라앉는 신세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밤낮을 두고 열심히 노력해서 깨어있되 망념이 없고, 고요하되 밝은 상태를 유지해서

수행의 길을 지켜야 합니다.

...수행과 성품은 마치 새의 두 날개와 같아서 어느 하나를 없앨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옛 어른의 말씀에, 적절하게 마음을 쓰고 적절하게 무심을 쓴다....무심을 적절하게 쓰면 항상 마음을 써도 무심을 벗어나지 않으니

여기서 말한 무심이 유심과 다르지 않다, 고 했습니다.


옛 어른의 말씀에, 보살이 본래 남을 제도하기 위해 먼저 정혜를 닦는 것이니 한가하고 고요한 곳에서는 선을 닦기 쉽고,

욕심이 적으면 頭陀行으로 성인의 도에 가까와진다, 고 했습니다.


자신의 마음과 본성을...깨닫는다면, 아득한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習氣가 있다 하더라도 자유롭고 거침이 없는 지혜로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근본 지혜인 것입니다. 이른바 근본지혜란 오래 익혀온 習氣를 굴복시키지도 않고 끊지도 않는 것입니다.

...본래 깨끗한 성품에 그대로 맡겨서 집착하지도 취하지도 않습니다.

...이와 같이 진리에 맡겨 習氣를 다스림으로써 지혜를 밝히고 인연에 따라 사물을 이롭게 하도록 보살도를 행하면

비록 삼계 안에 있더라도 진리의 낙원이 아닌 곳이 없습니다.


공이란 본래 공한 것도 없으니 오직 부처님의 깨달은 마음, 허공과 같이 밝고 청정한 마음이 있을 뿐입니다....

어리석은 분별을 일삼는 중생의 마음도 그 본체는 텅 비어 밝은 것이어서 온 누리의 모든 부처님과 다름없는 지혜의 바다이며, 진리의 본성입니다.


기신론에서도 "오직 마음 뿐이라고 알면 대상으로서의 세계라는 경계가 사라져 더 이상 괴로움을 겪지 않는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