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젊은 베르터의 고뇌, 괴테 : 그후로도 해와 달과 별은 묵묵히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8. 10. 2. 11:01

젊은 베르터의 고뇌, 괴테, 임홍배 옮김, 창비

 

1부 1771년

 

5월26일

오로지 자연만이 무한히 풍요로우며, 오로지 자연만이 위대한 예술가를 만드는 법이다.

규칙의 장점을 높이 살 수도 있지만, 그것은 예컨대 시민사회를 예찬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가질 뿐이다.

규칙에 따라 자신을 도야하는 사람은 몰취미하거나 조악한 것은 결코 만들어내지 않을 테지만,

그것은 법규와 예의 범절에 맞게 처신하는 사람이 결코 참을 수 없는 이웃이나 불한당은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일 뿐이다.

그 반면 어떤 규칙이든 간에 모든 규칙은 진정한 자연감정과 자연의 참된 표현을 파괴하는 법이다!

...

아아, 나의 벗들이여, 과연 어째서 천재의 격류 는 좀처럼 콸콸 흘러 넘치지 못하고,

홍수처럼 도도히 밀려와서 경탄하는 그대들의 영혼을 뒤흔들어놓지 못한단 말인가?

 

6월19일

그녀는 승낙했고, 나는 돌아왔다.

그후로도 해와 달과 별들은 묵묵히 제 갈 길을 가고 있었겠지만,

나는 낮인지 밤인지조차 분간되지 않았고, 내주위의 세계가 완전히 사라졌다.

 

8월 12일

'하기는......'하고 예외단서를 달면 질색이라네. 모든 일반명제에는 예외가 있게 마련이라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잘난 체하는 것이 인간이다! 뭔가 조급한 판단을 하거나 너무 일반적인 것 또는 반토막의 진실을 말했다고 생각하면

쉴 새 없이 제한을 가하고 수정을 하고 빼고 더하고 해서 결국에는 완전히 핵심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8월 18일

인간이 세상만물을 하찮게 업신여기는 것은 그 스스로 왜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원히 창조하는 정신은 범접할 수 없는 산악지대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황무지와 미지의 대양 끝까지라도 바람처럼 누비고 다니면서,

그의 말을 들어주고 그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티끌같은 존재에서도 기쁨을 얻는 것이다.

 

9월 10일

차갑게 죽은 문자가 과연 어떻게 천상의 꽃으로 피어난 정신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

하지만 나는 그 내일이 무엇을 뜻하는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키 큰 보리수 나무 그늘에서 롯터의 흰옷이 아직도 너풀거리며 정문 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2부

 

10월 20일

문학의 환상적인 형상들을 통해 길러지는 상상력은 그 본질상 더 높은 것을 추구하려는 충동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결여된 바로 그것을 다른 사람은 소유하고 있다는 듯이 생각한다.

게다가 우리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로 그런 사람에게 바치며, 그런 사람은 인생의 이상적인 만족감까지 누린다고 여긴다.

행복한 사람이란 그런 식으로 전적으로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인 것이다.

 

1772년 3월 16일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혈통이 고상한 말은 너무 심하게 몰아대어 혈압이 솟구치면

본능적으로 동맥을 물어뜯어 숨통을 틔운다고 한다. 나도 종종 그러고 싶을 때가 있다.

동맥을 열어젖혀 영원한 자유를 얻고 싶다.

 

5월 9일

나의 이 가슴이야말로 나의 유일한 자랑거리이며....아, 내가 머리로 아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이 가슴만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다.

 

6월 16일

정말 나는 이 지상에서 그저 방랑자, 순례자일 뿐이다! 그럼 당신들은 더 나은 존재인가?

 

9월 4일

이러한 사랑, 이러한 충직함, 이러한 정열은....

그런 사랑은 우리가 교양이 없고 거칠다고 일컫는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살아있다.

 

9월 12일

그리하여 이따금 인생에 대한 무관심으로 잠재우는 내 가슴을 다시 깨우지 말았어야 한다!

 

11월 3일

그리고 돌이켜 생각하면 괴롭기만 한 지난 시절도 결코 돌려주시지 않는다.

그 시절은 어쩌면 그렇게 행복했던가!

그것은 내가 인내심을 가지고 성령을 기다리고

하느님이 넘치도록 베풀어주시는 기쁨을 극진한 마음으로 감사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11월 15일

인간의 운명이란 어차피 분수에 맞게 견디며 살아가고 자기한테 주어진 잔을 다 비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째서 내가 그런 말을 부끄러이 여겨야 하며,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하늘을 두루말이처럼 둘둘 말어버릴 수 있다는, 하느님의 아들도 피하지 못했던 그 순간을 두려워해야 한단 말인가?

 

11월 26일

그러고서 옛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 같다.

...아, 도대체 나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도 그토록 비참했단 말인가?

 

11월 30일

복 받은 사람이로다!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세상의 장애물 탓으로 돌릴 수 있으니!

그대의 짓이겨진 가슴과 뒤죽박죽 된 머리가 바로 불행의 원천이며,

그렇기에 이 세상의 어떤 왕도 그대를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을 그대는 깨닫지 못하는구나.

 

편집자가 독자에게 드리는 글

우람한 보리수에는 잎이 모두 지고 서리가 내려 있었으며,

나지막한 교회묘지 담장 위로 아름답게 솟아 있던 산울타리도 잎이 모두 떨어져서

그 퀭한 틈새로 눈 덮인 비석들이 보였다.

 

알핀

"통곡하라! 하지만 그대의 아들은 아버지의 통곡 소리를 듣지 못하리.

죽은자의 잠은 깊고 먼지 쌓인 베개는 얕으니.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외쳐 불러도 깨어나지 못하리."

 

"봄바람이여 어찌 나를 깨우는가? 그대는 천상의 이슬로 촉촉한 물기를 선사하겠다고 나를 유혹하는구나.

하지만 나도 시들 때가 가까왔다. 나를 낙엽처럼 쓰러뜨릴 폭풍우도 곧 닥칠 것이다!

젊은 시절 내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던 나그네가 내일이면 찾아올 것이다.

그의 눈은 나를 찾아 벌판을 헤맬 것이나 끝내 나를 찾지 못하리라."

 

"밤 11시가 넘어서.....

사랑하는 그대여, 나는 창가로 가서 휘몰아치며 흘러가는 구름 사이로 영원한 천상의 별들을 하나씩 바라봅니다!

그래, 너희는 떨어지지 않으리라! 영원한 신께서 너희를 가슴에 품고 계시고, 나를 품고 계시니.

나는 모든 별들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수레자리의 손잡이 별들을 바라 봅니다.

밤에 당신과 헤어져서 대문 밖을 나서면 저 별이 나를 지켜보곤 했지요...."

 

 

 

 

 

 

 

* 우선 창비의 책 이야기부터 하자고 들면,

제본이라고 해 둔 것이 지나치게 성의없다. (가격을 낮추기 위함이었다는 설명이 있을 수 있겠지만)

7-80년대 제본된 책을 펼친 느낌이다. 소위 떡제본의 전형이다.

 

** 저자가 베르터의 이름은 소리나는대로 옮긴 것은 그렇다고 해도,

알베르트, 로테는 적절한 소리내기인지? 여전한 의문이다.

 

**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 하우스를 찾은 것은 2008년여름이었다.

나는 버짐나무만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이의 책을 다시 집어든다.

박목월이든가, 목련꽃 그늘아래 어쩌구 하는 시구와 가곡이 생각나고. 편지였든지, 일기였든지....

일본을 거쳐온 한국에서의 세계문학사는 불행이다. (또 딱 그만큼 다행이기도 하다.)

그것은 단순한 발음기호와 표기의 문제가 아니라 번역어의 문제에서 그렇다.

그렇게 싫어한다는 일본인의 의식구조와 관념체계가 번역어에 그대로 녹아 들어왔기 때문이다.

고민 없이 선택한 단어는 우리 삶과 괴리된 관념으로 박제된다.

슬픔이되었든 고뇌가 되었든.

 

언제 시간내어 유길준의 서유견문을 읽어보아야겠다.

 

 

 

 

 

 

 

 

마지막 그림은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에서의 그림으로 알려져있다.

그이의 책, 이탈리아 여행은 또 언제 펼쳐보려나.

 

그렇지만 다시  또 그곳을 찾게 된다면 저 부엉이 시계 앞에서 오랜동안 서 있고 싶다

항상 눈 뜬 밤을 지새우는, 깨어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