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말씀이 그렇게 어려울 리가 없다. 그분의 생몰 연대가 얼추 BC (이 기준을 쓸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아쉽지만) 500년 경이고 비슷한 시기에 공자-옛 조선과 오늘에도 여전한 해악을 생각할 때 "님"자를 붙이고 싶지는 않다-라는 사람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피타고라스"님"도 비슷한 시기의 사람들이다.
이런 생몰연대를 언급하는 이유는 당시의 인류의 사상의 수준을 가늠해보고자 함이다. 언어가 현상을 반영할 뿐, 창조하지는 않았을 시절이었을 것이기에.
다시 금강경으로 돌아가면 금강경의 저술 연대는 BC 150년 경으로 부처님 사후 350년-단순히 500년이라 보는 것이 속이 편할 수도 있다-이후이다. 여시아문, '내가 이렇게 들었다'라고 어린 아이같은 유치한 언술을 첫머리에 두었어도 그 들었던 내용은 햇볕에 닳아가고 달빛에 윤색되었을 터이다. 참, '공자'라는 책 역시 이 즈음의 판본이다. 이 역시 상가집 일을 업으로 했던 동업자들이, 제자라면 제자들이겠고, 엮어 만든 책이다. 그것이 우리가 금강경 저술 시절의 동아시아 사상 수준을 가늠하고-문화의 단절을 감안할 때 인도의 사상 수준과 동등하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언어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척도이다.
이제 금강경 한역본은 다시 550년의 세월을 더 기다려야한다. 구마라집이라는 '시인'이 옮겨 읊은 내용이라 서역땅의 문화와 한자 문화가 잘 짜여진 한 조각의 돛폭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후 원숭이를 데리고 서역으로 갔다는 삼장법사 현장의 번역은 다시 200년을 기다려 직역본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으로 태어난다. 그 만큼의 세월이 금강경에 녹아있기에 원래 말씀의 뜻이 풍부해졌다면 풍부해졌을 것이고 왜곡되었다면 왜곡되었을 것이다.
(신라승 원효스님은 현장에게 수업받기 위해 당에 유학을 갔다니 한 세대 이후의 시간이 있는 셈이다. 그 당시 문물의 교류 속도는 꽤차 빨랐던 모양이다.)
그것이 내가 금강경을 내 맘대로 읽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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