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내 맘대로 읽는 금강경 (1) 나는 인연을 보지 못한다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1. 4. 11. 13:56

금강이 벼락의 번역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해서 현장의 번역에는 능단能斷이 경의 제목에 올라있다. 대개는 반야바라밀의 속성으로 금강을 이해하고 있는 격의(格義)를 보인다. 금강도 깨부수는 벼락의 지혜인가 아니면 금강같은 지혜인가, 시작부터 漢文이 가지고 있는 다의성, 혹은 모호성에 지친다. 언어에 앞서는, 혹은 넘어서는 수행을 통하면 이런 질문은 망상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무릇 모든 인간의 지적 체계는 정의로부터 시작하는 법이므로.

 

3세에 논어를 읽었다는 중국식의 과장법이 문자해독을 뜻하지는 않을 터이지만, 515년경에 양나라 소명태자昭明太子는 금강경을 32분으로 나누어 분제(分題)를 매긴다. 첫 나눔문단의 제목이 법회가 열린 말미앎음이다. 인연이라면. 그러나 나는 구마라집의 판본에서 인연을 보지 못한다. 그저 수행결사의 집단이 탁발을 하고 돌아와 밥먹고 발닦고 자리펴고 앉았다는 구절에서, 더하여 결사 1,250인이 함께 했다는 구절에서 어떠한 인연과 연유도 발견하지 못한다. 문자에 매몰되지 말고 수행을 통하여 답을 얻으리라는 선사의 답변은 허허롭다. 소명은 무슨 이유로 이런 제목을 입혀두었을까가 나의 고민이다. 

 

여기서 한 마디 하고 넘어간다. 次第乞已란 구절을 두고 어떤 선사는 부처님이 집집을 가리지 않고 걸식을 하므로써 소외된 이들에 대한 평등과 자비의 모습을 보였다고 해설하기도 하지만 현장본에 이 부분이 특별한 언급이 없다는 점에 비추어보면 과장된 해석이다. 그냥 그날 하루의 일을 시간의 순서대로 기술한 것으로 보아야 맞을 것이다. 이런 과장된 해석을 경계하고자함이 내가 내 맘대로 금강경을 읽어가는 이유이다.

 

 

다시 소명의 분철과 그 분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현장의 직역본을 쳐다본다.  이만큼이 더 있다. 현장의 직역본에는. 

 

於食後時,敷如常座,結跏趺坐,端身正願,住對面念。

時,諸苾芻來詣佛所,到已頂禮世尊雙足,右遶三,退坐一面。

 

식후에 평소와 같이 자리를 펴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단정히 하고 서원을 바르게 하고 거울 속의 얼굴을 대한 듯이 (청중쪽을 바라보고 앉아) 생각에 잠기셨다. 이 때 모든 비구가 부처님 처소에 이르러 세존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동국대 한글대장경 번역에서) 

부처님은 몸 바깥의 자리 조차도 3일 같은 자리에 앉지않음으로 일종의 무소유와 집착을 끊으셨다는데, 상좌 常座 늘 앉으시던 자리라니. 그러나 이게 지극히 지극히 정상일 것이다. 3일 같은 나무등걸도 마다하셨다는 것 역시 후세의 윤색일 가능성이 높다. 현상을 바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이런 확대된 해석을 또한 경계하고픈 이유다. 

 

여튼, 이쯤되면 무언가 준비가 된 느낌이다. 인연이 시작될 느낌.  해도 나는 어디에서도 인유 因由를 보지 못한다. 소명은 무엇을 보았던가? 서른 줄의 인간이 본 인유는 어떤 것이었을까?

인연이 시작될 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