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김형수, 삶은 어떻게 예술이되는가 (2) - 순차성을 지키는 표현을 통해서만 살아있는 인간의 성격이 부여됩니다.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5. 6. 23. 20:40

김형수,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작가수업2, 아시아

 

 

[김석범, 화산도 후기에서] 나는 작중인물들과 오랫동안 사귀어 온 친숙한 사이이기 때문에, 앞으로 그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는 위치에 (94쪽)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예측할 수는 없다. 새로운 상황이 몇 겹이나 되는 기존 상황에 겹쳐서 자꾸만 생각나는 가운데 살아가는 인물들의 행동을 무대 밖에서, 소설 밖에서, 그 상황 밖에서 예측할 수는 없다. 아무리 필자라고 해도, 그 인물들과 함께 소설의 세계에 자신을 내던지지 않는 한,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95쪽)

 

작가는 마지막에 첫 문장을 쓴다! (97쪽)...

느낌의 순차성 혹은 생활논리적 순차성이란 말은 형상화의 법칙이라는 말이에요....다시 첫 문장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첫 문장은 느낌의 순차성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102쪽)...문학적 글쓰기의 최대 비법인 '먼저 느낀 것에서 나중에 느낀 것으로' 문장을 쌓아가는 요령은 이렇게 실제 생활 속에 감춰져 있습니다. (109쪽)

...그리고 이런 순차성을 지키는 표현을 통해서만 살아있는 인간의 성격이 부여됩니다. 그럼 생활논리적 순차성에 맞게 표현하는 것을 형상화라 말하고 거기에 필요한 기술을 '묘사'라고 해도 되겠죠? (112쪽)

...창작 출발에서 완료까지 첫발을 떼는 지점부터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지점까지 생각해야 하는 것 중 한 가지가 줄거리를 끝내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려면 주봉을 놓치지 말아야 히요. (116쪽)

...그래서 작가들이 주봉을 상징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서 계속 고민해요. 등장인물의 성격이 확보되고 서사적 구성이 완료되어 있어도 정서적 등가물을 찾아내기 전에는 첫 문장을 확정 짓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22쪽)

 

하여튼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괄과 집중을 수행하지 않으면 독자가 객관 대상을 파악할 수 없을뿐더러 쓰는 자가 스스로의 문맥 속에 갇혀 길을 잃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굳이 작가의 어법으로 이야기한다면 문장을 밀고 당기는 거예요. 카메라를 가진 자가 인식의 거리를 밀고 당길 줄 알아야 개괄이 가능하고, 또 집중을 하기도 해서 대상을 자유자재로 보여주는데, 그것이 서툴러 같은 거리만 유지하고 있으면 개괄도 안 되고 집중도 안 되어 결국 총체성도 핵심도 놓치게 됩니다. (135쪽)

 

모든 수사는 성격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성격의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어요. (175쪽)...여기서 중요한 게 성격이 우선이라는 겁니다. 성격을 드러내는 데서 벗어나 수사만 현란한 걸 두고 곧잘 언어의 성찬이라고 비아냥대는 수가 있습니다. 굉장히 근사한 말이 퍼부어지는데 성격화는 잘 안돼요. 이런 경우가 수사를 남용한 경우예요. 그래서 수사 자체를 배척하는 것은 성격화에 무능한 것이 되고, 성격화의 범위를 넘어서 수사를 남발하면 그것은 말의 사치가 된다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지나친 사치는 당연히 검소한 사람들의 눈에 거슬리게 되는 거죠. (1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