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김형수, 삶은 어떻게 예술이되는가 (1) - '낡은 나'가 '새로운 나'로 부단히 교체되는 것을 경험할 때까지.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5. 6. 20. 19:34

김형수,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작가수업2, 아시아

 

 

[문성근] (배우): 우는 사람은 모두 눈물을 참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연기자는 울려고 노력해요. 

...'자연'을 '인위'로 해결하려는 모순을 지적한 거예요. 정확히,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를 말한 거지요. 이때 질문이 남아요. 그럼 어떻게 하려고? (7쪽)

 

제가 좋아하는 성자의 시에 이런 게 있습니다.

'소나무는 일천 개의 봄볕을 모아 언덕 위에 서 있고

시냇물은 일만 봉우리의 가랑비를 모아 계곡에서 흐른다.' (8쪽)

 

* 원불교 소태산의 상량문으로 

松 收萬木餘春 立 소나무는 일만 나무의 남은 봄을 거두어 서 있고,

溪 合千峰細雨 鳴 개울물은 일천 봉우리의 가랑비를 합하여 소리친다.

 

 

가령, 글을 쓰는 사람이 스스로 고무되어 있지 않으면 필시 자기 역량보다 키가 작은 작품이 나옵니다. 작가의 내면이 문학적 실감으로 충분히 고양된 상태에서 첫 문장을 끄집어내면...'신이 당신의 어깨 위에 내려앉지 않았으면 당신은 지금 글쓰기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22쪽)

 

작가는 어떤 존재일까요? (37쪽)...(병영의 페치카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를 감지하는 십자매는) 세상과 목숨을 걸어놓고 그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존재의 상실물로 서 있는 것이죠. 상처를 이타적으로 써야 되는 사람! 글 쓰는 사람을 공인이라 함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38쪽)

 

... 부단히 취재하고 답사하고 사색하는 것은 창작의 필수조건입니다. 그걸 언제까지 해야 되는가 하면, 글을 쓰는 내내 작가가 스스로, 무엇보다도 '낡은 나'가 '새로운 나'로 부단히 교체되는 것을 경험할 때까지 해야 하는 겁니다.  (40쪽)

 

작품을 쓰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단히 어둠 속으로 끌고 가야합니다. ...어떤 일상의 영광 속에 놓여있지 말고 그 영광이 (40쪽) 도달할 수 없는 자리에 놓여 있어야 합니다.... 비평용어로 이를 '그늘'이라고 합니다.... 세계 안에 인간이 존재하는 방식을 관찰해 보면 그가 무엇으로부터 그늘져 있는가, 무엇으로부터 유배되어 있는가를 알게 되는데, 이것이 작품에 드리워져야 합니다. (41쪽)... 어둠 속에 놓인 자는 빛과 어둠을 말할 수 있지만 빛 안에 놓인 자는 어둠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그릴 수 없습니다. (42쪽)

 

'자신을 일상의 기쁨으로부터 유배보내라'는 말은 구조적 문제를 지목한 것이고, 지금 하는 얘기는 주체의 측면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42쪽)... 그래서 명심할 경우가, '잃은 만큼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건 문학이 갖는 영광 중 하나일 거예요. 죽음 앞에 서 본 자만이 삶의 소중함을 압니다. 사랑을 잃어 본 사람만이 그것의 고귀함, 소중함, 간절함을 알아요. 이별이 만남을 알게 만들어요. (43쪽) 

 

러시아 평론가 벨런스키의 말을 (직접경험을 피하려는 오류에서) 이럴 때 떠올리는 거예요. ' 삶이 문학의 주석이고 문학이 삶의 주석이다.'  (46쪽) 

 

* “The artist’s function is not only to express, explain, or judge the national life but also to change it..”

 

인간의 그리움은 필시 예술의 근원적 열망을 낳게 되어 있습니다...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곳에서 부르는 노래는... 우리에게 없는 그 공허한 노래들은 역시 우리에게 없는 그리움들을 담고 있습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대지의 크기가 기다림의 크기요 그리움의 크기이며 존재의 크기, 즉 생명의 크기죠. 

  이제 [어린 왕자]가 어떤 현실을 토대로 하고 있는지 짐작이 됩니까? (67쪽)

 

분명한 사실 중 하나는 독자가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린 자리는 반드시 작가가 (체험과정에서) 피눈물을 흘렸던 지점이라는 겁니다. (69쪽) 

 

(형상화 능력으로서) 체험되지 않는 것을 쓰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예를 들어서 군대를 소재로 글을 쓰려면 ...그들이 읽을 수 있으려면 적어도 군부대에 출퇴근하는 방위하고 자취라도 같이 해봐야 해요. 그래야 형상화 능력이 생기는 겁니다.... 대부분의 독자는 아주 미세한 디테일 하나에서 실감을 전해 받습니다... 그것은 '세부의 비진실성은 작품 전체의 진실성에 파탄을 가지고 온다'는 거예요. (76쪽) 

 

* "Don't tell me the moon is shining; show me the glint of light on broken glass." - Anton Chekhov

 

그리고 남의 것이 별로 쓸모없는 이유는 거기에 진정성이 담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품의 밑바탕에는 작가의 삶이 알리바이로 깔려있어요. (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