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기획, 조선의 독립, 오카모토 다카시岡本隆司, 강진아 번역, 소와당 講談社 2009
3. 속국 자주의 전개
3-1. 조선의 ‘자주’ 추구
***
아래에서도 인용하였지만, 박영효가 말한 내용은 충격적이다.
자국민의 통치에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군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첫째는 자국민의 통치에 무언가 폭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듯한 내용이다.
조선의 관료가 조선 백성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뿌리 깊은 사상의 흔적이다.
둘째는 그러한 군사력의 부재를 고위 관료가 외교적으로 언급했다는 것이다.
이 구절을 인용한 저자의 의도는 차치하고라고,
그러한 군사력의 부재에도 관료의 지위는 유지될 것이란 조선 사대부의 오랜 사고와
'보호국'이란 데 대해 자주와 독립의 의지가 부재함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보호국' - 청이 되었든 하다 못해 일본이 되었든 - 아래에서도 권력은 유지될 것이란,
조선 백성의 삶과는 동떨어진 사고 집단이란 것이다.
오히려 조선 백성을 넘겨주고 라도 금력과 권력을 유지하고자 했던 집단임을 스스로 암시한 것이리라.
***
(131쪽) 조선 국왕 고종은 1882년 9월 7일 ... 박영효에게 일본에 수신대사로 가도록 명했다. ...(132쪽) 이 사절의 임무는 제물포 조약 제6조가 규정한 사죄와 조일수호조규 속약의 비준 교환이었는데...국왕 고종으로부터 언질을 받은 ...미국, 영국, 독일과 맺은 조약의 승인 비준을 일본에 주재하는 각국 공사에 요청하는 것이었다. ...이들 국가와의 조약은 임오군란 이전에 이미 체결, 조인한 것이었다...조선정부의 의향에는 변함이 없음을 전하고, 체결한 조약을 승인하도록 의뢰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주일 영국공사 파크스가....본국 외무성에 보낸 보고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민영익 (왕비의 조카)>
(133쪽) 대원군의 배제는 조선에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런 방식은 국가의 굴욕입니다. 조선의 내정에 이렇게까지 간섭한 권리는 청에게 있을 리 없습니다....(134쪽) 청에 대한 조선의 조공관계는 일정한 의례에 한하는 것으로, 청은 조선의 내정에는 간섭하지 않아 왔습니다. 그러므로 최근 청의 행위는 구례에 반하는 것입니다.
<정사 正使 박영효 (철종의 사위)>
(135쪽) 자국민의 통치에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군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그 때문에 청의 수중에서 저항도 못하고 말하는 대로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금 조선의 처지입니다. ...조선 국왕이 보낸 친서에는 조선이 청의 속국이나, 내정과 외교는 자주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은 오늘날에 와서 조선의 내정, 외교에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간섭을 하고, 국왕으로부터는 그 주권을, 정치로부터는 행동의 자유를 빼앗고 있습니다.
(136쪽) 미국은 바로 슈펠트 조약 (조미통상수호조약)을 비준했으므로...영국, 독일은 관세율 등 조건에 불만이 있었으므로 이미 체결한 조약의 비준을 미루고 1883년에 조선과 조약을 새로 맺었다. 그 다음해에는 러시아도 조약을 맺고 있다.
...개국 노선을 추진하는데 청의 방침을 따를 것인가 그것을 부당하다고 할 것인가 기로에 서서... (137쪽) 임오군란 후 청에 사신으로 간 조영하 일행이 전자, 일본에 사신으로 간 박영효, 김옥균 등이 후자에 속한 것은 매우 흥미롭다.
...이에 극히 도식적으로 나눈다면, 18세기 이전 청에 대한 종속 관계, 일본에 대한 교린 관계를 계승하여 19세기말의 조약, 조회에서 말하는 ‘속국’, ‘자주’의 개념이 그 각각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된)에 대응한다.
(138쪽) 이를 당시의 당파투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민씨 정권의 요인이 많은 사대당이 우세했고, 독립당은 압도적인 열세였다. ...양자의 대립은 악화되어 김옥균은 마침내 1884년 12월 4일 동지인 박영효 등과 모의하여 쿠데타를 결행,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그러나 정변 발발 후 3일만에 원세개가 이끄는 청군 1500명이 개입하여 그 세력을 어이없이 궤멸하고, 김옥균과 박영효는 일본으로 망명하게 된다....이 쿠데타는 단순한 조선 국내의 정권 쟁탈이 아니라, 처음부터 청.일을 개입시킨 국제문제였다. 원래 일본 공사관이 관여하여 발생하였고, 청군이 일본 공사관을 공격하여 수습했기 때문이다.
(140쪽)...(사대당이나 독립당이나-일본에 사신으로 갔고 청을 비난하여 ‘독립’을 열렬히 부르짖은 민영익이 이듬해 미국 사신으로 간 뒤로는 사대당의 영수로 들어앉은...같은 인물이라도 양극사이에서 동요하고 있었던 것으로) 양극은 결코 별개로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같은 사고 방식의 변주라고 하는 편이 적절했다. 온건 개화파, 급진개화파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그러한 기미를 보여주고 있다. ...대외적 자세에서도...폭이 있는 흔들림의 기점이 되는 축, 고정점에 상당하는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조선은 청의 속국이나, 내정, 외교는 자주이다”라는 조회였다. (142쪽)...양자의 설명을 보면 조선을 ‘자주’라고 하는 인식은 공통되었지만, ‘속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대당 온건 개화파의 어윤중은 “청이 생긴 후부터 오늘날까지 정삭 正朔을 모시고 제대로 섬겨왔는데, 어찌하여 독립이란 말을 하라 수 있는가-
독립당 급진 개화파의 윤치호는 ”우리나라는 미국, 영국과 조약을 맺은 날, 바로 독립국이 되었다. 속국과 평등한 조약을 맺는 도리는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많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즉, 양자의 진폭은 청에 대한 태도가 어떤가에 따라 달랐던 것이다.
그들이 쿠데타를 결행한 다음날...개혁방안의 선언의 제1조에는 대원군의 귀국을 요구하는 것에 부가하여, (143쪽) ”조공의 허례는 논의하여 폐지한다“고 하는 일문이 있다...예상대로 이 단독직입적이고 급진적인 방법은 청과 충돌을 야기하여 ...현실의 벽에 부딪혀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확해진 셈이다.
...조선정부는 이리하여 노골적인 반청, 친청 어느 것도 아닌 ‘자주’노선을 모색하게 된다.
(145쪽) 원래 이 외국인 고문은 ...임오군란이 수습된 뒤 청의 발의로, (마건충의 발의로) 파견된 것이다....처음 임명된 (독일인 언어학자) 묄렌도르프는 물론이고, 그 후임인 (미국인 법률가) 데니도 본래는 이홍장의 주선에 따르느 청의 대변자가 되어야 할 존재였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두사람 모두 첨예하게 청과 대립하기에 이르렀다는 데에 당시 조청관계의 구조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46쪽) 데니가 부임한 후...발견한 원세개의 전횡...사사건건 조선의 내정, 외교에 간섭...밀수 등 중국인의 불법행위 묵인...국왕의 지위를 위협...데니는 원세개의 경질을 요구하고...2년간의 임기가 끝나려고 할 때 ....청의 조선정책을 비판하는 ... 청한론 China & Korea 소책자를 공개하기로 결심한다.
<데니, 청한론> (148쪽) 한 나라가 다른 나라와 맺는 조공 관계는 그 주권, 독립권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으며, 그럴리도 없다. 따라서 조선의 청 황제에 대한 매년의 공납은 결코 조선 국왕의 주권, 독립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다.
(150쪽) 즉, ‘속국’을 종속국 (vassal state)로 보는 것이나 그것에 상당하는 대우를 하는 것은 오해일 뿐 아니라 불법이라는 주장인 것이다. ... ‘속국 屬國 a state trubutary to China’의 내실은 의례적 조공, ‘자주 自主 full sovereignty’의 내용은 국제법에서 말하는 ‘독립’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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