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기획, 조선의 독립, 오카모토 다카시岡本隆司, 강진아 번역, 소와당 講談社 2009
2. 속국 자주의 형성
2-2. 조선의 조약체결
(96쪽) 메이지 유신을 이룬 일본은 1868년 말 왕정복고를 조선에 통고 (서계 書契문제)했다. 그런데 그 문서에는 일왕에 관해 ‘황 皇’, ‘칙 勅’ 등의 문자가 있었기 때문에 국서의 수리를 거부했다..... ... 종속관계를 받드는 조선의 입장에서 ‘황’, ‘칙’은 천자, 즉 청의 황제 이외에는 사용할 수 없는 문자였다....(97쪽) 이에 속을 끓이던 일본이 군함 (운요호)으로 무력시위를 일으켜... 조약체결... 교섭으로까지 끌고 갔다. (조일수호조규, 강화도 조약)
(98쪽) 강화도 조약(1876년)에 이르는 일본의 움직임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때까지의, ... 쓰시마번과 조선과의 일상적인 통교를 ‘모호한 사교 私交로 간주하고 폐지한 위에, 정부간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근대적 외교관계의 수립을 지향한 것이다. 그런 관계에는 서로가 주권군가라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에... 조선이... 가진 청과의 종속관계가 걸려있는 것이며... 청이... 프랑스와 미국에게 제시한, 속국이지만 국사의 일체는 자주로 한다는 발상은 당시 일본에게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강화도조약의 제1조의 “조선국은 자주의 국가”로, “일본국과 평등한 권리를 보유한다”는 문구는...(99쪽) 조선을 청의 속국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대등한 독립국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선이 최종적으로 강화도 조약의 조인에 응한 것은 그 조약을 새로운 국제질서의 시작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1868년 (메이지정부의 수립) 이래 끊어진 예전의 교린관계를 부활하는 의미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100쪽) 일본에 대한 청의 시각, 특히 1860년대 이후의 시각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군사적 위협으로 경계한다”는 말로...첫째 왜구라는 역사적 기억, 둘째, 당시 일본의 급속한 서양화, 특히 병기의 근대화, 셋째, 일본열도의 지리적 위치이다....(총리아문의 견해는)... 영국과)... 프랑스가 공격해 온다고 해도 그것은 무역이나 선교가 목적일 뿐이지만, 일본의 경우는 토지를 노릴지도 모르는 것이다. 만약 조선이 일본에 점거당하면 청의 안전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
(101쪽) 청은 1871년 일본과 청일수호조규를 체결했다. 이는 아시아국가끼리 맺은 최초의 조약이며, 또한 서양 각국과 맺은 것과 같은 불평등조약이 아니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조약을.... 제안했던 일본의 관심은... 청과... 조약관계,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이에. ... 대해 청은... 군사적... 위협이 될 수 있는 일본을 ’잘 구슬리고 농락‘하여 적대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청일수호조규 제 1조에 “양국 소속의 방토 邦土는 조금이라도 침월 侵越해서는 안된다”라는 문구가 있다. “소속의 방토”란 (102쪽) 청의 통치하에 있는 토지 뿐 아니라 직접 지배가 미치지 않는 속국, 예를 들면 조선도 포함하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103쪽) 일본의 위협이 증대하고...조선과 일본 사이에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다... 청은... 이에 대해 일본과의 조약을 맺을지 여부는 조선의 자주에 맡긴다고 표명하고...
청은 스스로 “명대의 고사故事에 따라” 조선을 단호히 “구원”할 군사적 준비를 갖추고 있지 않다, 일본은 “가볍게 무력을 행사하는 나라는 아니므로”, 노골적인 적대행위는 취할 수 없다. 조선은 청에 대한 “공손함”이 “진실로 지성 至誠에서 나온다”라는 세 가지 상호 연관된 인식을 갖고 있었다.
(104쪽) 고조되고 있던 일본에 대한 청의 위기감은 1879년 류큐 처분으로... 일본이... 류큐번을 폐지하고 오키나와 현으로 만든 이 사건은 청조의 입장에서 보자면 곧 류큐라는 속국의 ’멸망‘이었고, 류큐와 청 사이에 엄연히 존재했던 종번 관계의 해체이자 소멸이었다.
...이에 ’류큐의 전철을 밟지 ‘‘ 않도록 하기 위해 청정부가 채용한 구체적 대책은 조선과 서양 각국과의 조약 체결이었다.
(105쪽) (조약체결에 반대하는) 조선이 이 태도를 바꾸기 시작한 것은... 일본정부와... 교섭하기 위해 일본에 간 수신사 김홍집이 1880년초 <조선책략> (청의 주일공사 관원 황준원의 저술)을 가지고 온 후의 일이다. 그 내용은 청과의 관계변화, 일본과의 관계개선, 미국과의 조약 체결을 조선정부에 권한 것이다.
(106쪽) 하여장이 부하인 황준헌에게 <조선책략>을 쓰게 하고, 같은 시긴 <주지조선외교의 住持 朝鮮外交議>라는 의견서를 본국에 상신하고 있다.... 그. ... 골자를 한마디로 말하면, 법적으로 조선을 청에 종속시키고, 미국과 조약체결을 강제한다는 것이다. 종래의 이른바 ’자주‘를 (107쪽) 박탈하고, ’ 속국‘을속국‘ 국제법상의 속국으로 바꾸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하여장은 “옛법 舊章을 약간 바꾸어” “중국과 친한다 親中國”고 표현했다.
...대원군 집권시대부터 세력을 넓히고 있던 지주 양반계층은 이에 (조선책략에 따른 미국과의 조약체결 등) 반대하여 다시 목소리를 높여 위정척사를 주창했다.
(108쪽) 미국과의 조약체결을 둘러싼 교섭이 진짜 시작된 것은 1881년말...1881년 말... 조선의 이조참의 김윤식이 유학생을 인솔하는 영선사로 천진에 부임해서 이홍장을 방문해 조약체결을 제안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 이때부터... 조선 문제는 청 측은 북양대신 이홍장이 거의 전담하게... 미국 측과의... 실질적인 교섭은 이홍장의 주도하에 천진에서 하고, 여기에서 간추려진 조약안의 (109쪽) 조인은 조선에서 하기로 순서가 결정되었다.... 제1조는. ...제1조는 “조선은 청의 속국으로 내정 외교는 조선의 자주이다”라고 읊고 있다. (속국자주 屬國自主)
(110쪽) 김윤식의 일기 <음청사 陰晴史>
“조선이 청의 속국인 것은 천하가 아는 바이지만... 청이... 우리나라를 책임지는 것을 본다면, 각국이 우리를 가벼이 여기는 마음도 사라질 것입니다. 게다가 그 아래 구절에는 ”모두 자주를 할 수 있다 (均得自主)“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다면 각국과의 통교는 ”평등의 권리 (權)“로서 하여도 꺼릴 것이 없습니다. 권리를 잃어버릴 우려도 없고, 큰나라를 섬기는 뜻에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즉, 그들이 생각하는 속국이란 “고립되고 약한 형세”의 조선을 종주국인 청이 지켜준다는 것이며, 자주란 조선이 자립하여 각국과의 통교를 “평등의 권리”로 행한다는 것이다.
...청의 입장은 어디까지나 청과 조선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각국에 호소하는 것, 특히 조선이 청의 속국이라는 면을 (111쪽) 중시하는 것임에 반해, 조선의 입장은 각국과 대등한 관계가 되는 자주의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 소위 강화도 조약은 불평등 조약이라고 하지만, 이는 양반 지주계급이 민중의 이익에 반하여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은 지켜낸 (혹은 무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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