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 김진송 - 현대는 어떻게 우리 곁에 오는가?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8. 9. 29. 10:58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 김진송





제1장 현대를 바라보는 눈


'현대'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191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것은 단순히 동시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의 현대란 '동시대' 그리고 '바깥쪽'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라는 말은 적어도 시간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조선에서 공간적으로 부재하는 이율배반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새로운 단어였다....

지금 여기에 없는 것들을 무엇으로 채워나가야 할 경향성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른다. (25쪽)


개화기를 온통 휩쓸었던 문명론의 신사고 뒤편에는 조선 후기 실학을 중심으로 한 이용후생의 논리를 계승한 측면이 있었지만,

세계적인 문명을 접한 즈음에는 점점 사회진화론이라는 사상을 간접적으로 수용한 측면이 보다 강하게 작용했다. (29쪽)


1910년대말, 1920년대초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서구사회는 이른바 모던프로젝트의 부정적 결과로 나타난 (32쪽).....

이성의 지배에 의한 사회의 발달과 과학에 대한 신뢰가 결국 전쟁과 전체주의, 제국주의라는 가공할 결과를 낳았던 것에 대해

사회문화 전반적으로 이에 대한 반성과 반발의 사상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33쪽)...


그 결과는 허무주의, 파시즘, 탈주술화와 불행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명에 대한 회의 혹은 그것을 바탕으로한 서구의 관념론이 계몽기의 조선에서 개조론으로 등장하였을 때...

일련의 계몽주의적 프로젝트가 실현되지 않은 조선으로서 산업화와 문명에 대한 회의론적 태도는 가당치 않은 것이었다. (34쪽)....


그 결과 엉뚱하게 현대화의 논리는 정신주의적이고 관념적인 개조의 논리로 빠져들어 갔으며

이런 정신적인 '개조'가 식민지배에 부합되면서 곧 뒤틀린 현대화의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현대적 문명이라는 물질적 토대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리고 그 토대를 위한 경제적 프로젝트들이 실현되기 시작할 무렵에

물질에 대한 회의론에 바탕을 둔 정신적 개조의 사고들은 현대로 진입하는 과정 자첼르 관념적으로 몰고 갔다....

문화주의에서 비롯된 문화는 1920년대를 풍미하면서 식민지 정책과 결합하였고

이후 모든 영역에 걸쳐 막강한 이데올로기를 형성했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 가장 보편적인 삶의 태도로 유교 이후의 第一善으로 자리 잡았다.  (35쪽)


이러한 문화주의적인 태도들은 실상 사회, 국가적 모순이나 계급적 갈등까지 개인적인 품성이나 인격의 범주에서

그 해결점을 찾으려 함으로써 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중대한 자각이 있기 전까지는

언제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는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38쪽)


1920년대에는 사회주의 사상과 함께 서구의 모더니즘의 여러 움직임이 다시 한 번 밀물처럼 밀려들어왔다....

'신흥'이라는 말은 기존의 관념에 도전하여...또 부르주아 미술에 대응하는 노동자 계급의 미술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39쪽)...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상황에서 새로운 사회구성체의 가능성을 마르크스주의에서 보았던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가치들 특히 식민지 하에서 뒤틀리고 있던 것으로 보였던 자본주의적 퇴폐와 무질서와 함께,

현대 초기에 아직 떨쳐 버리지 못했던 봉건적인 사상과 결합한 식민지적 사고들을 혁신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40쪽)


1920년대말...신교육을 받은 지식층의 수효가 증가하고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사상 특히 사회주의 삿항이 일상의 영역까지 널리 퍼지면서 (41쪽)...

더 어찌해볼 수 없는 일상의 현실은 계몽적인 힘을 점점 상실해가기 시작했다.

현대는 이제 계몽주의자들의 엄숙한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상속의 발랄한 모더니스트를 통해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42쪽)


계몽적 프로젝트로서 부르짖었던 현대성은 식민현실에서 좌절되었지만

삶의 의식 속에서 진행되어온 현대의 과정은 (1930년대에) 모던을 하나의 조류로서 유행처럼 등장시킨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일제 식민지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일본 것을 능가하는 서구 것에 대한 막연한 추종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44쪽)


1930년대 '모던 현상'은 모더니티 그 자체의 특징이기도 한 도시화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모던 생활은 '근대적인 대도시라는 괴물의 소산'이라고 말해진 것이다. (48쪽)


모던이 대중들의 유행과 일상 속에 틈입하면서 삶의 형태를 서서히 그러나 재빨리 바꾸어가는 과정에서 맞은

전시체제의 군국주의는 현대의 체험을 또 한 번 굴곡시키게 되었다.

1930년대 말부터 통제사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초기의 현대화를 향한 계몽주의적 태도마저 완전히 파쇼적 계몽주의로 전환되어 버렸다. (49쪽)...

군국주의에서 시작된 편의주의적인 계몽프로젝트, 슬로건 사회의 슬로건들은 모든 문제의 동인을 인민 혹은 대중에게 귀속시킴으로써

피계몽의 열등감을 만연시킨다....

슬로건에서는 그 원인과 결과의 차이에 대한 고려가 사라지고, 계층과 계급의 구분 없이, 모두에게 심리적인 억압으로 존재하며...

슬로건을 통해 정치적 담론을 형성하는 통치방식, 그것이 슬로건 사회의 본질이며, 그 형성은 1930년대말 군국주의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슬로건의 직접적 생산과 그것의 정치적 전유를 직접적으로 장악하는 통치 방식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발적 강제가 서슴없이 이루어지는 문화현상을 양산하며

오랜동안 현대화의 또다른 피상적 곁가지로 지속되었다. (50쪽)



6장 <도시의 꿈과 도시의 삶>은 어떻게든 읽어야 할 터인데, 그것은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

글 자체의 내용과 별개로 모던한 현대는 도시와 밀접하게 도시생활, 도시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근대성이 가장 잘 발현되는 모순과 집적의 장으로서 '도시'는 검토되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