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논 한 마지기가 몇 명을 먹여 살리는 것인지?
그저 넓이가 얼마냐, 만이 흘려듣던 관심사였다. (엄밀히는 관심도 아니었다. 가진 땅이 없었기에.)
일본인이 쓴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이란 책에서
이를테면 한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논배미의 면적은 어떻게 될까, 라는 얘기가 있었기에
정리가 필요한 참이었다.
- 1년에 먹는 쌀의 양
1끼에 1홉씩 끼니를 떼우고, 예전 방식대로 하루에 2끼를 먹는다고 계산해보면
2명의 경우 1년에 필요한 양은 1460홉이 된다.
(예전에는 하루 2끼를 먹었다고 한다. 해서 아침/저녁은 순한글인데 점심은 한자말이던가)
10홉이 한 됫박이고 다시 10됫박이 1말, 10말이 1섬이므로 1500홉으로 보면 약 15 말, 1.5 섬이 된다.
쌀 한 홉의 무게(144kg/1000=144 g)를 생각하면
곧, 2인을 부양할, 1년에 먹는 쌀의 양은 15말은 약 216 kg 이 된다.
(1990년의 1인 쌀 소모량은 120kg에서2020년 57 kg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현재 기준으로는 도시 4인 가족의 쌀 소모량과 대략 맞아 떨어진다.)
- 나락 한 섬과 쌀 가마니
벼 한 섬(10말, 나락의 껍질을 벗기기 전)은 부피로 180 Litre이고
나락으로 200 kg (두 가마니)에 해당한다.
이를 껍질을 벗겨 (도정수율이랄 수 있는데 72%로 보면)
쌀 144 kg (쌀 두 가마니, 한 가마니 72kg)이다.
(참고로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가마니라는 단위를 기준할 때
나락으로는 100kg, 쌀로는 72 kg (도정수율 72% 기준) 이 한 가마니 단위이다.
시중단위로는 80kg가 쓰이고, 수매 가마니는 나락 40kg를 기준한다.)
- 마지기와 쌀 생산량
이제 이 쌀을 생산할 면적인 논배미로 가보자.
실제로 사용되었던 면적 단위인 마지기는 얼추 150평에서 200평으로
지역마다 좀 다르긴 하나 200평을 기준한다.
마지기란 단위는 볍씨 한 말을 뿌릴 수 있는 말지기에서 마지기로 왔다는데.
(실제 사례에서 보면 마른논에 손뿌리기를 할 경우, 한 마지기에 5-6되, 곧 0.6말이 소요되었다고 하고,
모내기를 할 경우라면 한 마지기에 1되 3홉이 필요하다고도 한다.
결론적으로 한 마지기를 150평으로 보는 것이 차라리 타당할 것이다. 한 말 씨나락의 파종을 기준한다면)
한 마지기의 소출은 약 3.5~4가마가 소출된다.
(80 kg 나락 4가마니를 얻으면 도정수율을 감안하여 쌀로는 230 kg 이 되어
예전기준 2인 부양, 현재 도시가구 4인 부양의 쌀을 얻는다.)
이는 거름과 비료에 따른 다른 생산량으로 거름과 비료 없이는 3 가마도 어렵다고 되어 있다.
(직파, 무논에 손뿌림의 경우 3가마 생산의 경우 종자 대비 27배-예전 50원 동전의 도안개수와 일치한다!!
모내기의 경우 4가마 생산에 종자대비 153배의 생산량을 보인다.
이 값은 밀과 비교하면 거절할 수 없는 경쟁력이다.)
곧 1 마지기는 2-3 식구가 먹을 곡물을 생산하는 셈이다.
- 농업노동
실제로는 소작료를 감안해볼 때,
조선시대라면 양반계급의 수탈을 감안하면 최소한 2배의 면적, 2 마지기를 경작해야
주식으로서의 쌀을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산업화 이전까지도 소작료는 30 수준이었다.)
(자본의 축적 없이 본전치기, 최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탈구조에서이고,
노동력 그 자체를 수탈한 경우까지 생각하면 2인 부부 일일 노동량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
마지기란 단위는 벼농사를 위한 부부 노동력에 기초한 셈법일지 모르겠다.
(조선시대 곡기의 양이 반찬과 부대 음식이 적어 저 정도의 양으로는 턱없이 모잘랐을 것이다.
외국인이 찍은 조선말의 밥상 고봉 사진은 시사적이다.)
거칠게 정리되었지만.
(풋거리도 먹어야 하므로 실제로는 밭도 한 두 마지기쯤 있어야 할 터이다.
이 계산에서 양반지주계급의 수탈, 소작에 대한 부분은 빠져있으므로
최소한 2-3배의 토지를 경작해야하고 수탈량을 감안하면
실제 농노의 작업량은 어마어마 한 것이리라.)
조선시대의 과세단위는 이런 논배미의 면적이 아니라 소출, 곧 생산량 기준인 먹(結)을 사용했다는데,
요즘 단위로 환산하면 개략 1200평 정도로 보인다. 마지기수로 따지면 6마지기 정도이다.
(먹과 마지기에 대한 환산단위가 갈린다. 나의 계산법에서는 1137평이다.)
가구당 6마지가가 할당되었다면 좋으련만 그런 것은 기대할 수 없는 귀족연합체였던 조선이었고보면,
그것은 노동력 착취를 위한 단위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즉 6마지가가 성인 2인의 노동력을 수탈하기에 (좋은) 최소한의 면적이었다는 느낌이다.
(세수의 단위는 면적 단위가 아니라 생산량 단위였다는 점은 생각해 볼 점이다.
소위 먹(結)이라 불리는 단위로 세수를 메겼다는 조선의 세정은 기이하며 착취적이다.
땅이 온전히 농업생산수단이었고 다른 용도가 개념적으로 불가한 시절의 이야기이리라.)
결론적으로
논배미 1 마지기 = 200평 = 4가마니 (나락) 320kg = 230 kg (쌀, 도정수율 72%)을 얻게된다.
참고로 소줏잔으로 익숙한 도량형
1홉 = 약 150g 이므로 역산하여 들어간다면.....
1섬 = 180 Litre, 2홉들이 소주로 따진다면......
말술이란 말도 짚어보면 소주 됫병 (혹은 댓병) 10병을 마시는 주량이다.
치사량이리라.
P/S
쌀알 한 톨은 발아하여 자랄 경우 약 1000개의 낱알이 달리고, 밀의 경우에는 200여 톨이 달릴 수 있다.
모든 볍씨가 발아하는 것이 아니라서,
종자 대비 쌀의 경우 120배, 밀의 경우 10배~20배 정도의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이 계산법은 손뿌림이나 모내기의 방법과 거름을 내기에 따라 생산량에 차이가 있다. )
(예전 50원 동전에 새겨진 통일벼의 낱알 개수는 1972년28개에서 83년 43개로 도안되었다.
이 마저도 독재자 박정희의 치적으로 삼는 이가 있다. 잘살아보세 내지는 보릿고개를 극복하려는 의지의 산물이라고.
50원 동전의 벼는 UN 세계식량농업기구 FAO의 식량 동전 권장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고 알려져있다.
독재의 기간이 길면 사소한 것도 신화가 되는 모양이다. 기실 아무런 뜻이 없다.
일본이 벼 낱알 27개를 도안한 이후 1알을 추가한 것 정도가 그 독재자의 치적이라면 치적이다.
통일벼의 실제 산출량과는......)
벼의 경쟁력은 위에서 말한 종자 대비 수확량 뿐 아니라
수생식물로서 토양이 아닌 논물을 통한 양분의 흡수로 지력을 보전하고,
우기와 장마 등의 기후적 장점으로 인한 토양 염분의 제거와 지력회복의 장점 등으로
(밀에서 보이는 중세의 휴경지와 3포제와는 달리)
해마다의 연작이 가능한 점까지 겹쳐,
노동력의 집약이 필요하고 또 관개수로 등의 국가/집단적인 추가적 부대시설이 필요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의 중앙집권적 정부형태에서나 가능하겠지만)
오늘날 우리가 보는 농촌 풍경과 인구밀도를 만들어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논 손뿌림이라는 직파제는 생산량은 낮고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하나 봄가을의 가뭄에 대응이 가능한 농법이며,
모내기, 소위 이앙법은 생산량이 상대적으로 높고 노동력이 적게 들어가는 농사법이다.
그러나 당연히 기후의 영향, 가뭄과 풍수해의 영향을 입게된다.
임진전쟁 이후 신분제의 변동으로 지주계급이 임노동자를 쓸 수 밖에 없는 상황,
노동력의 부족이 모내기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나는 늘 인구밀도가 (사람과 사회의) 만병의 근원-결과이기도 하다-이라 생각한다. 쌀이 그 한 축이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인간이 쌀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쌀이 인간풍경을 선택한 것이리라.
* 노동과 마지기의 관계는 다른 정리가 필요하다. 좀더 엄밀하고 정밀한 정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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