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약발에 대한 짧은 생각 - 잔치는 끝났다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1. 11. 8. 14:08

한 시대의 약발이 끝나는데 얼마나 걸릴까?

(1953년을 기준한다면 15세의 학도병이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80세를 가정하면 65년, 2018년쯤일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의 안테나는 3년이나 늦었으나 이런 생각이 든 것은 3년 이전이니 얼추 맞는 셈이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한국사회는 조선조의 전근대적 외피를 벗는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해방 후 친일파 제거에는 실패하였지만, 적어도 반상의 계급을 겉보기로 해체하는데는

외적인 요인에 의해 성공 당-했-다-.

이러한 겉보기 계급해체의 양상은 일견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사회인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만들고,

턱없이 높은 교육열이란 이름으로 산업노동자를 양성해내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우리의 교육이 노동자 양성 교육이란 것은 미국 귀족의 교육인 교양대학 등을 보면 간단히 알 수 있다.)

 

516 군사쿠데타 세력은 당시로서는 가장 선진적인 미군의  군수시스템의 경험자로서 

민간 대비 우월한 구석이 있었다. 아울러 쿠데타 초기에는 기존의 경제세력과의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었을 것으로 보여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국가 자본주의란 이름으로 60-70년대에는 일정하게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약발도 반란 주모자로 결론난 모 대통령의 혼사를 보면 정경유착으로 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최근에 있었던 조모 교수의 아빠찬스는 (그이의 진정성과 별개로)

법종사자들과 의사 등으로 대변되는 계급과 부의 상속에 대해서 

이제 더 이상 공정한 경쟁이 없음을 보여준 사례로 비친다.

변호사 양성에서부터 기득권이 아니면 접근할 수 없는 진입장벽이 부활되었고,

시절의 관례란 이름으로 부와 권력의 세습이 서서히 외피를 벗고 양지로 나오고 있다.

(사실상의 음서제는 원래부터 친일파와 이후 기득권계급으로부터 계급내에서 암암리에 유지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치와 경제의 유착, 관료와 지역 유지의 유착, 자원의 불균등 배분과 경쟁의 불공정성이 

서서히 노출되며 한국전쟁의 약발이 끝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더 이상 미래지향적인 사회가 아니라 조선조의 계급사회와 빈부 격차의 시대로 환원되어 간다는 의미이다.

(빈부격차가 유지되어야만 그 현상속에서 자본의 욕망을 구현하는 세력이 있다.

저임금 노동자를 쉽게 쓸 수 있고 독점을 포장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시민과 정치의 거리를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으로서의 관료와 법 종사자들, 정치와 결탁한 욕망의 덩어리로서의 재벌,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기득권을 지키고 진입장벽을 쌓는 제도의 구축,

그로 인한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는 현재는....

(예전에 이해되지 않았던 '국가는 부자인데 국민은 가난하다'는 일본의 사례가 이제 서서히 이해되어가는 대목이다)

 

 

적을 적으로 돌리게끔 하는 것은 다른 민족이라서거나 종교이라서거나 혹은 이념이라서거나 하는

고차원의 위장이나 외피가 아니라, 지극히 단순한 자본과 그것을 지키고자하는 자들의 자기 욕망이다. 

이것을 숨기고자 함 역시 기득권의 목적이다. 

미국의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이 그것을 여실히 증명한다. 

 

이제 약발은 다한 듯하고, 잔치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