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양동휴, 대공황시대 (2) - 가공할 테러를 써서 추진된 계획경제의 부상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9. 2. 22. 00:11

극단의 실험


뉴딜 정책의 기조 가운데 하나가 공황극복을 위해 경제 운행과 자원 배분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필요하면 정부가 개입한다는 것이다. (26쪽)...

산업부흥법은....경제적 측면에서....당시 단체교섭의 관행이 뿌리내리면서 노동시장의 성격이 크게 변했다.

즉, 실업이 별로 줄지 않는 가운데 임금과 노동조건이 개선되었다. 실질임금이 상승하면서 노동생산성 또한 증가했다. (27쪽)


농업조정법....하지만 소작농은...농지에서 축출되었다. 땅을 잃은 소작농은 임금노동자가 되어 다시 도시의 노동시장을 압박했다. (28쪽)


나치는 외환 통제를 실시하면서 이 보호막 안에서 팽창정책으로 돌아섰다. (32쪽)...단지 기존의 정통적 재정 운영과 자유방임시장으로 인한 혼란에서 벗어나고자

계획화와 관리를 택한 것이다. (33쪽)...정책 내용보다는 정책 변화 자체가 경기부양의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34쪽)...그토록 가공할 테러를 써서 추진된

계획경제가 나치 독일 말고는 서방세계에 없었다. 그런 체제는 스탈린의 계획경제 즉, 대공황과는 무관했으면서도 더욱 끔찍한 테러 방식으로 운영된

공산주의 계획경제에나 비할 것이다. (34쪽)


대공황 기간 동안 강대국들이 수입을 억제하고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교역장벽은 높아만 갔다....이런 상황에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의

아바시니아 침공(1936년)을 연합국이 수수방관하는 것을 보면서 히틀러가 용기를 내는 순간, 경제장벽의 불길이 군사장벽 쪽으로 옮겨 붙었다.

결국 세계경제가 정상적인 경기회복을 마무리할 기회를 놓친 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야 만 것이다. (42쪽)


서유럽 자유주의의 역사와 몰락


영국의 전통은 '개인은 모든 자의적인 폭력으로부터 법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주로 개인의 자유를 강조했다.

이에 반해 대륙에서는 '모든 개별 그룹은 그 국가 형태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요구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로써 대륙의 자유주의 운동은 초기부터 민주주의 운동과 연결되었고

그래서 관심사가 영국적 자유주의 전통과는 달랐다. (45쪽)


당시 유럽에서 자유주의의 내용은 아직은 급진적 요소로 분류되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 내용이 헌법으로 작성되어 미합중국이 탄생했다.

그러므로 미국에서 자유주의자는 자기네 헌법을 수호하는 사람이란 뜻이고, 따라서 미국에서는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태도가 곧 보수적이 되는 것이다. (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