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계급론 - 소스타인 베블린, 김성균 역, 우물이 있는 집
나의 대학시절 이 책은 금서였다.
나는 영문 복사판의 너덜한 똥색 표지를 기억한다. 당시의 많은 복사제본이 그 빛깔의 표지를 하고 있었다.
김지하의 시집이 그랬고, 다른 몇 권의 저작들도 그랬다.
유한계급론을 당시에는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는 오랜동안 잊고 있었다.
이제 이 책을 다시 집근처 남포집에서 구해서 읽으려한다.
예전의 "계급론"에 대한 인상과 지금의 그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내 몸을 거쳐간 일상의 흔적은 "계급론"을 상당히 "자본주의적"으로 이해하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요컨대 그것은 조선을 거쳐온 한국 귀족의 역사적 실재와 최근의 여러가지 "계급적 현상의 노출"로
여전히 그이의 저작이 의미있으리라 본 탓이다.
(아래 인용은 옮겨적은 페이지를 밝히지는 않는다.)
1. 유한계급의 기원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전사나 성직자 같은 상류계급들은 생산활동을 면제받는다는 원칙이 봉건사회를 지배했고,
그러한 면제는 그들의 우월한 신분을 나타내는 경제적 표시가 되었다....
그러나 유한계급이 하는 일들이 그렇게 분화되어 있긴 했어도 경제적으로 비생산적인 일이라는 공통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한가롭로 비생산적인 상류계급, 즉 유한계급들은 정치, 전쟁, 종교의식, 스포츠 같은 활동을 주로 했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위해 매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육체노동 즉 생산활동은 열등계급만 하는 일로 간주된다.
야만문화 이전의 덜 발달된 야만문화로 눈을 돌려본다면...분명한 유한계급이 존재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정도의 경제적 수준에 있는 부족들은 남녀의 직업이 분명히 구별되는 시점까지 경제적 분화를 계속하기는 하지만,
이런 구별은 불공정한 차별의 성격을 띤다. 이런 부족들은 거의 대부분 규범화된 관습에 따라
여자들을 향후 발달하게될 생산적인 직업에만 할당하는 반면에,
남자들은 비천한 생산활동으로부터 면제시켜 전쟁, 사냥, 스포츠, 종교의식을 대비하고 종사토록 한다. ...
따라서 사실상 모든 생산적인 직업은 원시적인 야만사회에서 여성들의 일로 분류된 활동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생산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이유로 전통경제학자들은 수렵을 원시적인 산업의 전형으로 간주했다.
그러나....야만인 사냥꾼은 자신을 일개 노동자로 여기지 않았고 여자들과 같은 계급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유한계급제도는 원시적인 미개사회에서 야만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평화로운 생활습관이 시종일관 호전적인 생활 습관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출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제도가 일관된 형태로 출현하기 위해서는...
첫째, 그 공동체에 약탈적인 생활 습관이 존재해야 한다.
둘째, 공동체 구성원의 다수가 힘겨운 일상 노동에 시달리지 않아도 충분히 생계를 유지할 만큼 물자를 쉽게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고대적인 직업구분방식에 따르면 가치있는 직업은 공명을 획득할 수 있는 직업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고,
가치없는 직업은 공명의 요소라고는 아예 깃들 여지가 없는 필수적이고 일상적인 직업을 가리킬 것이다.
...예컨대 비천한 직업에 대한 우리의 습관적인 혐오감이 증명하듯이,...., 널리 유행하는 진부한 선입견으로서 매우 끈질기게 존속하고 있다.
인간이 강제로 인간을 이용하는 일은 생산적인 활동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지만,
인간이외의 환경을 이용하여 인간생활의 향상을 꾀하는 모든 노력은 생산적인 활동으로 분류된다.
...오늘날의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산업생산력의 실질적인 특징으로 가정하고 있다.
...자연에 대한 이러한 산업의 지배력은 짐승들의 생명력을 비롯한 모든 원초적인 폭력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포함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리하여 인류와 야만적인 피조물 사이에 하나의 경계선이 그어진다.
다른 선입관에 물든 다른 시대의 사람들 사이에서...그 경계선은 미개인이나 야만일들의 생활공간에서는 다른 위치에 다른 방식으로 그어진다.
야만문화에 속하는 모든 공동체에서는 야만인 자신을 포함하는 일단의 현상과 그의 식량을 포함하는 일단의 현상을 정반대의 것으로 느끼는...
현대적인 형태의 반대감각과는 다른 것으로 보이는...그들의 반대감각은 인간과 야만적인 피조물 사이가 아닌
활동체와 부동체 사이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부동체와 활동체를 이처럼 투박하게 구분하는 초보적인 지침을 따르는 원시적인 사회집단의 활동은...
명예로운 일과 생산활동이라는 부를 수 있는 두 부류의 활동으로 분화되는 경향이 있다.
...명예로운 일과 비천한 일의 구별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와 부합하여 이루어진다.
(전투와 사냥 모두 약탈본능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그러한 남성의 활동들은 생산적인 노동이 아니라
강탈에 의한 자산취득 활동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에 따라 강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재화를 획득하는 일은
최고의 신분에 있는 남자라면 부끄러워해야 할 일로 평가된다. ...
한편으로는 명예로운 일과 강탈행위를 동일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적인 노동을 멸시하는 불공정한 차별이 발생한다.
이렇듯 모멸적인 평가를 받게 된 노동은 바야흐로 지루하고 힘겨운 노역의 성질을 갖기에 이른다.
문화의 진보는 ....습관적인 호전적인 정신상태에서 발생한다는 데 있다. ...남자와 사물에 대한 상식적인 평가가
투쟁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만 비로소 약탈 문화단계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약탈문화의 하한선은 생산활동의 상한선이다.
2. 금력과시 경쟁
문화의 진화과정에서 유한계급제도와 소유권 제도의 발생시점은 일치한다....
여기서 유한계급의 여가와 소유권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그것들이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요소 즉 관습적인 사실들이기 때문이다...
유한계급과 노동계급의 구별은 발달이 덜된 초기 야만문화에서 유지된 남자들과 여자들의 분업을 기원으로 한다.
최초의 소유권은 공동체의 강력한 남자가 여자들에 대해서 소유권을 행사하면서 나타난다. ...
(여자에 대한 남자의 소유권과 달리) 개인은 자신이 만들거나 획득한 ...사소한 물건들을
소유권 문제를 유발하지 않고도 습관적으로 전유하고 소유할 수 있다.....
전리품인 여자를 적으로부터 강탈하는 관행은 소유와 결혼을 동일시하는 관례를 낳았고,
그로부터 남성이 가부장 역할을 하는 가부장적인 가족이 생겨나게 되었다....
약탈적인 생활환경에서 진행된 경쟁의 결과 한편에서는 강압에 의한 결혼 관행이,
다른 한편에서는 소유의 관습이 생겨나게 되었다...
여자들에 대한 소유권을 기원으로 형성된 소유권의 개념은 여자들이 생산한 물품에 대한 소유권도 아우르며 자연스럽게 확대되었고,
그때부터 인간에 대한 소유권은 물론 사물에 대한 소유권까지 등장하는 것이다.
생존이나 육체적 안락이라는 동기는 결코 그처럼 두드러진 역할을 하지 않는다.
소유권은 처저한도의 생존조건과는 무관한 환경에서 탄생하여
인간의 제도로서 성장했다. 지배적인 동기는 처음부터 부에 대한 시샘과 선망을 낳는 명예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관습이 일관성을 획득하자말자,
사유재산의 기반인 시샘이나 선망을 낳는 차별적인 비교에 영향을 미치던 그런 관점도 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소유한 재화들은 약탈에 성공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그것을 소유한 자가 그와 같은 공동체에 속하는 다른 개인들보다 우월함을 과시하는 증거의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그러한 선망을 낳는 차별적인 비교관행은 이제 소유자를 그가 속한 집단의 또 다른 구성원과 비교하는 최우선적인 방식으로 자리잡는다.
...소비용 재화의 유용성이 재화의 가치를 결정하는 가장 두드러진 요소가 되더라도,
부는 여전히 소유자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명예로운 증거로서 효용성을 결코 상실하지 않는다.
...정상적이고 평균적인 기준에 필적하는 재산을 그가 축적하더라도 그때부터는 만성적인 불만을 대신하여
그의 재산과 이러한 평균적인 기준의 격차를 좀더 벌리기 위한 끝없는 긴장에 시달리게 된다.
...한 남자가 자신의 금력을 다른 남자들의 금력과 차별적으로 비교하여 확인받는 상대적인 성공은
그 남자의 관습적인 행위 목적이 된다.....따라서 차별적인 비교는 결국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과정과 다름 없다.
3. 과시적 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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