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장
(신부 돈 압본디오는) 앞으로 닥칠 다른 위험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번 일이 어떻게 끝날까? 몽둥이는 늘 밑으로 떨어지고, 넝마 조각은 바람에 날리게 마련이야...
하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한 내가 죄를 뒤집어써야 한다니.....추기경 저하께서 나를 끌어들인 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전보다 더욱 복잡해진 일은 때때로 포기되기도 하지. 좋은 일을 하는 자들은 일을 대충한다고. 만족을 느끼고 그것으로 충분하면,
성가시게 모든 결과를 책임지려 하지 않아. 하지만 나쁜 일을 하는 자들은 더욱 부지런히 하고, 끝까지 책임을 지며, 결코 휴식을 취하지 않아.
그들에겐 그들을 갉아먹는 지병이 있기 때문이지.' (89쪽)
27장
그러나 (돈 페란테가) 때때로 말하듯, 정치 없는 역사가 무엇이겠는가?
뒤에 추종자가 아무도 따르지 않는,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는 안내인일 뿐이다. 그러면 그는 결국 걷기를 포기한다.
정치에 역사가 없다면 안내인 없이 길을 걷는 사람고 마찬가지인 것이다. (161쪽) ......
28장
우리의 경우로 돌아와보면, 결국 폭동의 중요한 결과는 두 가지였다.
폭동 때문에 현실적으로 식량이 손실되고 파기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공정가격이 유지되는 동안 다음의 곡식 수확기까지 충분했을,
그 소량의 밀을 한도없이 무분별하게 소비했던 것이다.
이런 일반적인 결과와 더불어, 폭동을 선동한 죄로 교수형을 당한 불행한 네 사람이 있었다. (169쪽)
....그 시기에 식량과 사람들의 요구 사이의 불균형은 해소되지 않았다.
일시적으로나마 결과를 기대하고 나왔던 대책 때문에, 외국의 농산물이 충분히 수입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불균형은 심화되었다.
.....법 자체도 가격을 낮게 책정하고 그 가격을 유지하려고만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빈곤의 원인은, 혹은 더 정확히 말해서 빈곤 그 자체는 제멋대로 온 힘을 다해 움직였다. (170쪽)
그러나 가장 추악하면서도 동정이 가는 광경은...농민들이었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면제받을 수 없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즉, 전쟁물자라 불렸던 것을 충당하기 위해 너무 과도하게 책정했던 세금과,
불모지가 된 땅 때문에,
옛 근거지인 양, 풍요롭고 경건한 아량이 있는 최후의 피난처인 양 도시로 왔다.
....아래 지방 사람들의 창백한 얼굴과, 평야와 언덕지대 사람들의 그을린 얼굴과,
산촌의 혈색 좋은 얼굴들은 그러나 모두 야위고 일그러져 있었고, 눈음 움푹 팼고, 움직이지 않는 시선은 매섭지도 넉이 나가 있지지도 않았다. (172쪽)
우리 인간들은 그렇게 생겨먹었다. 우리는 평범한 고통에 대해서는 격분하고 화를 내고,
극단적인 고통에 대해서는 말없이 굴복한다. 처음부터 참을 수 없다고 말했던, 극한에 이른 고통을 체념하진 않으나 망연자실한 마음으로 견딘다. (176쪽)
...그러나 모두 운명을 바꾸겠다는 희망 때문이 아니라 해도, 적어도 증오스러웠던 곳으로 되돌아가지 않기 위해,
절망했던 장소를 다시 보지 않기 위해 (도시를 떠나는 자들이나 들어오는 자들이나) 각자 가던 길을 계속 걸었다. (177쪽)
31장
전염병이라는 일반적인 견해에 반대했던 의사들은...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명백하고 일반적인 새로운 명칭을 달아야 했으므로
해로운 고열과 페스트성의 고열을 동반하는 병이라고 했다. 그것은 처참한 타협이자, 말 속임수에 불과했고 또한 심각한 손상을 동반했다.
왜냐하면 진실을 인식하는 척하면서, 눈으로 보고 믿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믿지 않도록 했기 때문이고,
병이 접촉을 통해 전염된다는 것을 믿지 않도록 했기 때문이다. (235쪽)
생각과 말로 쓴 역사에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는 없는데, 많은 생각과 말이 이와 유사한 경로를 밟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런 종류의 생각과 말이 많지 않으며, 그것은 결국 그 값을 치르게 되고 다른 부수적인 일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말을 하기 전에 관찰하고 듣고, 비교하고 생각하는, 오래전부터 제기된 방법을 따른다면,
큰일에서뿐만 아니라 사소한 일에서도 그렇듯 오랫동안 왜곡된 경로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하는 것 역시 유일한 것은 아닌데, 다른 모든 것보다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우리 일반적인 사람들 역시 동정을 받아야 한다. (244쪽)
32장
현실의 재난으로 더욱 고통받고, 계속되는 위기에 격해진 사람들은 기꺼이 (페스트의 원인으로 기름칠에 대한 의혹) 그러한 견해를 받아들였다.
분노한 감정은 처벌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248쪽)...
(폐스트의 원인이라고 지목된 기름 칠장이로 오인받은) 불행한 사람들은 돌멩이 세례를 받거나 붙잡힌 채 감옥으로 인도되었다.
그러므로 감옥은 어느시대까지는 구원의 안식처가 되었던 셈이다. (250쪽)
.....당시의 한 작가는 (페스트의 창궐원인이 되었던 행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행렬이 있던 그날 동정심은 배덕과, 사악함은 정직함과, 관용의 상실은 관용의 획득과 대립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빈약한 지혜는 스스로 만들어낸 유령과 대립되었다. (254쪽)
...."더욱 추악하고 치명적인 것은 사람들의 의심이 무절제하고 흉악했을 뿐 아니라 광포해졌다는 것....
가까운 사람이나 친구, 손님을 의심했을 뿐 아니라 인류의 자비를 의미하는 유대 관계 및 그 명칭,
즉, 부부와 부자와 형제도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가정의 식탁과 부부의 침대가 마치 복병처럼,
독이 숨어있는 곳처럼 두려운 장소가 되었다." (261쪽)
35장
재난을 예고하는 그런 시절에 밖에서 보면 전혀 움직이지 않는 듯한 자연은 내면의 고통으로 동요되어 모든 생명체를 억압하는 듯했고,
모든 작업과 태만과 존재 그 자체에 뭔지 모를 중압감을 가중시키는 듯 했다.
그러나 그 자체로 고통과 죽음이 운명지워진 그 장소에서 이미 병에 걸린 사람들은 또 다른 압력에 굴복했다. (320쪽)
(크리스토포르 신부가 렌초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일이 진행되어도, 자네에게 어떤 행운이 따르더라도,
'그를 용서합니다'라는 말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를 용서하는 한,
모든 것은 형벌이 될 것임을 명심하게" (331쪽)
36장
"하느님께서는, 더 나은 결과로 되돌릴 수 있다면, 인간들이 그분과 계약할 수 있는 의무와 책임을 되돌리고 판단할 권한을 그분의 교회에 부여하셨습니다.(354쪽)....
기억하게 형제여, 교회가 자네에게 신부를 되돌려주었다면, 일시적인 세속의 위안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네. 세속의 위안은 비록 그것이 완전하다 할지라도,
어떤 불쾌감이 섞이지 않았더라도, 위로가 사라지는 순간 커다란 고통으로 끝날 것이야. 그러나 교회는 자네들 모두를 끝나지 않을 위로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신부를 돌려준 것이야. (355쪽)"
38장
(렌초는)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재난은 가끔 찾아온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더욱 신중하고 결백하게 행동한다면 그것을 충분히 멀리할 수 있다고,
잘못을 했든 하지 않았든 재난이 찾아올 때 하느님을 믿으면 재난은 잠잠해지고 좀더 나은 삶을 위해 쓰인다고 결론을 내렸다. (398쪽)
'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도원의 역사 - 최형걸 : 노동과 금욕의 공동체 생활을 통한 영혼의 안식 (0) | 2019.06.21 |
---|---|
신들의 계보-헤시오도스 : 불의 대가로 받은 필멸의 인간들에게 마련된 재앙, 판도라 (0) | 2019.06.19 |
양동휴, 대공황시대 (2) - 가공할 테러를 써서 추진된 계획경제의 부상 (0) | 2019.02.22 |
양동휴, 대공황시대 (1) -참호 속에서 생겨난 대중의 정치적 조직화와 노동계급의 힘 (0) | 2019.02.21 |
유한계급론-소스타인 베블린 : 약탈문화의 하한선은 생산활동의 상한선이다. (0) | 2019.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