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어느 정당의 해산 판결문을 다시 읽으며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4. 12. 5. 23:59

통합진보당의 해산에 관한 헌법 재판소 2014.12.19 선고 2013헌다1 전원재판부 판시사항을 다시 읽어본다. 몇몇의 생각 만으로도 정당을 해산했던 정치사에서, 12월 3일 밤 조직적으로 실행에 옮겨진 - 탄핵 상정안에 대해 이 글이 씌여진 후 자행된 조직적 탄핵반대로 내란에 동조한 - 내란죄 혐의는 정당의 해산 혹은 선관위 등록 취소의  사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당시 통합진보당의 해산 - 선관위 등록 취소-에 대해 반대의견을 내었던 김이수 재판관의 판결문을 옮겨본다. 

 

이 글을 옮기는 이유는 내란죄 혐의의 계엄이 어느 구석에서 이러한 반대의견이 충족되는가를 살펴보기 위함이다.

 

 

재판관 김이수의 반대의견

 

사. (1)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민중주권’은, 주권 독점의 특권적 현상을 타파하고, 지금껏 정치·경제적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계급·계층의 주권적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취지이지, 국민주권의 원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민생 중심의 자주자립경제체제’는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사회복지·정의 실현을 위한 국가적 규제와 조정을 강화할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서, 기본적 인권의 보장을 위한 경제적 토대가 되는 사유재산권이나 경제활동의 자유를 박탈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코리아연방제’는 체제통일과정에서의 과도기적 통일국가를 전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나, 피청구인이 종국적으로 추구하는 통일국가의 상은 코리아연방제 통일안에 나타나 있지 아니하다. 그 밖에 국가보안법 폐지 등 피청구인의 주장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충분히 논의된 여러 현안에 대한 하나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에 불과하다. 즉 피청구인의 강령상 ‘진보적 민주주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특정한 집단의 주권을 배제한다거나 기본적 인권을 부인하고 나아가 북한의 적화통일전략에 동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없다.

 

한편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민주노동당 시기 강령에 도입된 것인데, 그 도입과정을 종합하여 보면, 사회주의적 이상과 가치를 반영하는 광의의 사회주의 지향성을 드러낸 것으로서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 남미의 모델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이고, 민주노동당이 제시한 ‘대중투쟁을 동력으로 한 선거승리’나 ‘원내외 통합전략’은 궁극적으로 선거에 의한 집권 추구, 군소정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서, 폭력 사용을 용인한 것이라거나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의 수단인 통일전선전술을 편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청구인은 피청구인이나 피청구인의 주도세력이 북한 체제를 추구하고, 대한민국체제를 전복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에서 피청구인에 이르는 분당과 창당 및 재분당 과정을 종합하여 보면, 민주노동당 내 자주파의 대북정책이나 입장이 우리 사회의 다수 인식과 동떨어진 측면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자주파의 노선 자체가 주체사상에 기초한 북한식 사회주의 추구나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 추종에 기초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현재 피청구인 내부에 자주파 또는 이에 우호적인 사람들의 비중이 더 커졌다고 하여, 그것이 곧 과거 민주노동당 구성원 가운데 종북 성향을 가진 사람들만이 피청구인에 남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라 보기 어렵다. 또한 피청구인 구성원 가운데 반국가단체인 민족민주혁명당 조직원이나 하부 조직원 또는 관계자였던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직접 유죄판결을 받았거나 판결에서 조직원으로 언급된 단지 몇 명에 불과하고, 그 중 이○기와 그 지지자들이 이념적 통일성을 가진 조직을 형성하여 피청구인을 장악하고 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그 밖에 청구인 주장에 의할 때 피청구인을 주도하고 있다는 경기동부연합, 광주전남연합, 부산울산경남연합이 과거 민족민주혁명당 또는 그 조직원 등에 의하여 의사결정이 좌우되는 상태에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현재 어떤 이념을 공유하거나 지지하여, 통일적으로 단결하여 활동하고 있다고 볼 수 없으며, 피청구인과 북한의 직접적인 연계는 전혀 입증되지 아니하였다.

 

피청구인이 대안체제의 수립이나 구조적이고 급진적인 변혁을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피청구인이 폭력적 수단이나 그 밖에 민주주의 원칙에 반하는 수단으로 변혁을 추구하거나 민주적 기본질서의 전복을 추구하려 한다는 점이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아니하는 한 피청구인의 목적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

 

(2) 피청구인의 지역조직인 경기도당이 주최한 2013. 5. 10. 및 5. 12. 각 모임과 그 모임들에서 이루어진 이○기 등의 발언은 단순히 언사에 그친 것이 아니라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이 있다고 할 것이나, 그와 같은 활동은 피청구인 전체의 기본노선에 반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피청구인이 그러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거나 그러한 활동으로부터 기본노선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므로 이를 피청구인 정당 전체의 책임으로 볼 수 없다.

 

한편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이나 중앙위원회 폭력 사건, 야권단일화 여론조작 사건과 같은 피청구인의 일부 구성원의 개별 활동이 당내 민주주의를 훼손하거나, 민주적 의사결정원리를 존중하지 않았거나, 실정법을 위반한 사실은 인정된다. 그러나 피청구인 전체가 조직적, 계획적, 적극적, 지속적으로 위와 같은 활동을 한 것은 아니고, 위와 같은 활동들을 제외하면 피청구인은 다른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정당활동을 영위하여 온 점, 그간 우리 사회가 산발적인 선거 부정행위나 정당 관계자의 범죄에 대하여는 행위자에 대한 형사처벌과 당해 정당의 정치적 책임의 문제로 이를 해결하여 온 점 등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활동들이 피청구인 자신의 정치적 기본노선에 입각한 것이거나, 거꾸로 피청구인의 기본노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서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이 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따라서 피청구인의 활동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 아니한다.

 

아. 피청구인에 대한 해산결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데 반하여 그로 인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에 야기되는 해악은 매우 심각하므로, 정당해산결정은 그러한 이익이라도 긴절하게 요구되는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 한하여 최후적이고 보충적으로 선고되어야 하는데, 피청구인 소속 당원들 중 대한민국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전복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형사처벌 등을 통해 그러한 세력을 피청구인의 정책결정과정으로부터 배제할 수 있는 점, 정당해산 여부는 원칙적으로 정치적 공론의 장에 맡기는 것이 적절한데 지방선거 등 우리 사회의 정치적 공론 영역에서 이미 피청구인에 대한 실효적인 비판과 논박이 이루어지고 있는 점, 피청구인에 대한 해산결정이 피청구인의 대다수 일반 당원들에게 가하게 될 사회적 낙인 효과, 그리고 현격한 국력차를 비롯한 오늘날 남북한의 변화된 현실 등을 고려할 때, 피청구인에 대한 해산결정은 비례원칙에 위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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