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표준어로 '용왕먹이기'로 옮겨지나, 어머니의 표현따나 '용왕미이'였다.
곧잘 '용왕미이로 간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미이다'는 경상도 사투리로 '먹이다'에 상응하긴 한다.)
그러나 '먹인다'는 말은 낮춤말로서, 치성물을 진설하고 용왕에게 바친다는 점에서는 맞지 않은 표현일 것이다.
용왕막이>용왕맥이>용왕맥이기>용왕먹이기>용왕미이기 등으로
음운적 유사성과 의미의 전이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일 것이다.
정월 보름의 새벽달을 밟아
어머니는 바닷가가 아니라 개울의 처음으로 올라가셨다.
경화동 동방유량을 끼고 흐르던 개울의 처음에는 작은 샘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검정 찰흙을 캐어 미술시간 준비를 하곤 했다.)
소금과 생쌀, 삼색 나물과 북어포, 초와 축원 소지 등을 준비하여 소쿠리를 이고 앞서 가시고
나는 시종 자부롭다고 -춥기도 했다- 지청구를 해대며 따랐었다.
용왕님께 무엇을 비셨는지는 기억에 없다.
맑고 깨끗한 처음의 물에 용왕 매기는 데 무슨 다른 소원이었겠는가?
그냥 조용한 개울물소리가 가볍게 깔리는 가운데
어머니의 치성드리는 비손 소리와 입속으로 기도하시던 소리의 기억은 있다.
어느 산사에 산신각 자리에 용왕각이 있는 걸 더러 보았다. 그것도 내륙의 절들에서.
용왕 매기기 이리라.
하데스의 땅에서 아내를 구하면서 빠져나오는 오르페우스에개 내려진 신약처럼,
용왕 매기기는 치성을 드린 후 떠날 적에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용왕의 식사에는 사람에게는 보여서도 보아서도 아니 되는 까닭이라 들었다.
모든 신들의 약속에는 인간으로서는 지키기 힘든 신약이 따른다.
그것은 동양이라고 다르지 않다.
< 정월 보름>
잠시 잦아든 바람에 새벽안개 사이로 물줄기를 헤쳐 가던 풍경의 붕어는 절집 네 귀퉁이를 돌아 결국 제 자리에 지친 지느러미를 내린다.
일렁일렁 촛불이 타는 새벽, 정한 바위 골라 용왕 매기실 어머니, 두 눈동자도 밤새 깨어 있을 것이다.
근심앓이야 소지로 흩어지질 않아 잰걸음으로 떠나는 달을 등에다 묶어 고샅길 밝히며 돌아오신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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