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플라톤의 향연 - 좋은 것이 늘 자기 것이 되기를 갈구하는 연습(204e)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14. 7. 6. 22:52

향연

좋음 agathon, 자기것 oikeion, 그리고 불멸 athanathon

참으로 좋은 것을 늘 자기 것으로 하려는 갈구(에로스)와,

이를 위해 연습을 통하여 앎을 유지시키고 불멸로 보존시키는 것.

짤려진 반쪽의 상대방 속에다가 자식을 낳고 출산하는 그러한 불멸을 보존하는 것처럼.

 

172a

 

나는 자네들이 묻고 있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할 연습(melete)을 안 거친 상태가 아니네.

 

191d

 

그러기에 우리 각자는 한 인간의 부절(符節)이네.

마치 넙치들 모양으로 하나에서 둘로 잘라져 있으니까 말일세.

각자는 자신의 부절을 하염없이 찾아 다닌다네.

 

192e

 

즉, 자기가 사랑하는 자와 한데 모여 융합되어 둘이던 게 하나가 되는 것 말이네.

그 이유는 바로 이것이네. 우리의 옛 본성이 이제까지 말한 바로 이런 것이었고

우리가 온전한 자들이었다는 것 말일세.

그래서 그 온전함에 대한 욕망과 추구에 붙여진 이름이 사랑 (에로스)이지.

 

 

 

207d

 

인간 이외의 동물의 경우에도 인간과 같은 이치에 따라

필멸적인 본성은 할 수 있는 한 늘 있기를,

즉 불멸적이기를 추구하거든요.

그런데 그건 이 방법만으로만 즉, 생겨남으로써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오래된 것 대신 새로운 것을 늘 남기니까요.

사실 이건 각 동물  하나하나가 살아 있다고,

그리고 같은 것이라고 불리는 동안에도 그렇죠.

 

예컨대 사람은 어리디 어린 소년 시절부터 늙은이가 될 때까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해 지지요.

하지만 이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고 불리긴 하나,

그가 어느 때고 자신 속에 같은 것들을 갖은 적은 없고

오히려 늘 새로운 사람으로 생겨나고,

 

207e

또 머리카락, 살, 뼈, 피 등 몸 전체에 있어서 어떤 것들은 잃는 것도 있습니다.

또 몸에서만이 아니라 영혼에 있어서도,

즉, 성격, 성품, 의견, 욕망, 쾌락, 고통, 두려움 등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이것들 각각이 어느 때고 각자에게 같은 것으로 있지 않고,

오히려 어떤 것들은 생겨나고 어떤 것들은 소멸합니다.

 

208a

이것들보다 훨씬 더 특이한 일은

앎의 경우도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생겨나고 어떤 것들은 소멸하며,

그래서 우리가 앎에 있어서도 어느 때고 같은 자들이 되는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각각의 앎 하나하나도 같은 일을 겪는 다는 점입니다.

연습한다고 우리가 부르는 것도

앎이 우리에게서 떠나가기 때문에 있는 것이니까요.

망각은 앎이 빠져나가는 것인데,

연습(melete)은 떠나가는 기억 대신에 새로운 기억을 다시 만들어 넣어 줌으로써,

같은 앎으로 보일 정도로 앎을 보존하니까요.

 

208b

사실 필멸적인 것이 다 이런 방식으로 보존되지요.

즉, 신적인 것처럼 모든 면에서 늘 같은 것으로 있음으로써가 아니라

늙어 가고 떠나가는 것이 그것 자체의 원래 모습과 닮은

또 다른 새로운 것을 남겨 놓음으로써 보존 됩니다.

이런 장치에 의해 몸에 있어서든 다른 모든 것들에 있어서든

필멸적인 것이 불멸에 참여하지요.

하지만 불멸적인 것은 다른 방식으로 보존 됩니다. (다른 식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다 본성적으로 자신의 새싹을 귀중히 여긴다는 것에 의아해 하지 마시길.

이런 열성과 사랑이 필멸적인 것 모두에게 붙어 다니는 건 바로 불멸을 위해서니까요.

 

210a

 

이 일을 향해 올바르게 가려는 자는

젊을 때 아름다운 몸들을 향해 가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끈는 자가 올바로 이끌 경우

그는 하나의 몸을 사랑하고 그것 안에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낳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는 어느 한 몸에 속한 아름다움이

다른 몸에 속한 아름다움과 형제지간임을 깨달아야 하며,

종(種)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할 때,

모든 몸들에 속한 아름다움이 하나요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주 어리석은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걸 파악하고 나면 모든 아름다운 몸들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

하나의 몸에 대한 이 열정을 무시하고 사소하다 여김으로써 느슨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는 몸에 있는 아름다움보다

영혼들에 있는 아름다움이 더 귀중하다고 여겨야 합니다.

 

210e

 

그러니 이제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주의를 기울이도록 노력해 보세요.

아름다운 것들을 차례차례 올바로 바라보면서

에로스 관련 일들들에 대해 여기까지 인도된 자라면

이제 에로스 관련 일들의 정점에 도달하여

갑자기 본성상 아름다운 어떤 놀라운 것을 직관하게 될 것입니다.

앞서의 모든 노고들의 최종 목표이기도 했던 게 바로 이겁니다.

 

211c

 

즉 이 아름다운 것들에서부터 시작하여

저 아름다운 것을 목표로 늘 올라가는 것 말입니다.

마치 사다리를 이용하는 사람처럼

그는 하나에서부터 둘로,

둘에서부터 모든 아름다운 몸들로,

그리고 아름다운 몸들에서부터 아름다운 행실들로,

그리고 행실들에서부터 아름다운 배움들로,

그리고 그 배움들에서부터 마침내 저 배움으로,

 즉 다름 아닌 저 아름다운 것 자체에 대한 배움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마침내 그는 아름다운 바로 그것 자체를 알게되는 거죠.

 

211d

인간에게 삶이 살 가치가 있는 건 만일 어딘가에서 그렇다고 한다면

바로 이런 삶에서 일 겁니다.

아름다운 바로 그것 자체를 바라보면서 살 때 입니다.

......

그렇다면 순수하고 정결하고 섞이지 않은

아름다운 것 자체를 보는 일이 누군가에게 일어난다면,

즉 인간의 살이나 피부나 다른 많은 필멸적인 허접쓰레기에 물든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단일 형상인, 신적인 아름다운 것 자체를

그가 직관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떠하리라고 우리는 생각합니까?

 

212a

 

당신은 그가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는 수단으로 그것을 보면서 사는 바로 이런 삶에서만,

덕의 모상들이 아니라 (그가 접촉하는 것은 모상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참된 덕을 산출하는 일이 (그가 접촉하고 있는 것은 모상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에게 일어나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까?

참된 덕을 산출하고 키웠을 때 비로소 신이 친애하는 자가 되는 일이 그에게 있게되고,

불멸적이 되는 일이 인간들 가운데 누군가에게 있다고 한다면

다름 아닌 그에게 그런 일이 있게 됩니다.

 

218a

 

그런데 나는 살무사보다도 더 큰 고통을 주는 것에 물렸을 뿐만 아니라

물릴 수 있는 곳들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운 곳을 물렸다네.

나는 내 심장 혹은 영혼을, 아니면 그것을 뭐라 부르는 게 마땅하든 간에

그곳을 지혜 사랑에 속하는 이야기들에 두들겨 맞고 물렸거든.

 

222a

이보게들, 내(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 선생님을 찬양하면서 말하는 것들이 바로 이것들이네.

그런가 하면 나는 내가 불만을 가진 것들까지도 섞어 가지고,

그 분이 내게 어떤 방자함을 부렸는가 하는 것들을 자네에게 말했네.

.....

이분은 자신이 그들을 사랑하는 자인양 여기게끔 그들을 기만했는데,

오히려 그분 자신이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애인이 되네.

아가톤, 바로 이것들을 나는 자네에게도 말하고 있는 것이네.

이분(소크라테스)에게 기만 당하지 말라고,

속담마따나 어리석은 자처럼 직접 당해 본 다음에 깨닫지 말고

우리가 당한 것들로부터 깨달아 주의하라고 말일세.

 

 

223d

 

그러자 소크라테스 선생님은 저들을 잠들게 한 후에 일어나 떠나갔고

뤼케이온으로 가서 씻은 후에 다른 때처럼 하루의 나머지 시간을 보내다가,

그렇게 날을 보내고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가서 쉬었다고 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