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 그 만화방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오늘 같은 광복절 때문일 것이다. 만화방 치고는 이름도 거창하였는데, "무궁화서림" 으로 기억된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집(사실은 세들어 살던 그 집)은 철둑 근방이었거니와, 경화 시장과 쇠전을 끼고 있었다. 기차가 닿는 곳에 장이 서는 것이야 당연한 이야기겠고,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장을 따라 흘렀던 개골창에 대한 추억 한 자락이다.
개골창을 가로 질러 널빈지로 바닥을 대고, 가설로 판자집을 올려 가게들이 몇몇 서있곤 하였는데, 그 하나가 무궁화 서림이었다. 예전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무궁화 지우개, 무궁화 연필, 무궁화 공책, 하다못해 무궁화 비누까지 온통 무궁화 무궁화 꽃이 만발하였지만, 일개 만화방에 무궁화 서림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양철간판에 새겨둔 주인 아저씨의 호기로움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더구나 '서림'이라니.
그 만화방에서는 바닥의 빈지널에 뚫린 옹이구멍 사이로 개울을 볼 수 있었고, 우리들은 고무다리의 출렁 거림에 알듯모를듯한 현기를 즐겼다.
사실이지 그 만화방을 곧잘 가곤 했지만, 이유인즉 딴 데 있었다. 만화를 빌릴 때마다 끊어주던 딱지, 무궁화가 빨간색 도장밥으로 찍혀있던 입장권 때문이었다.
만화 세 권에 한 장 쯤으로 기억되는 그 딱지는 요즘식으로 말하자만, 심야극장 입장권에 해당하던 것이었다.
텔레비젼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그 만화방에 있던 텔레비젼이 유일한 저녁 볼거리였다. 딱지 한 장을 내면, 이른바 텔레비젼 시청 입장이 되었다. 그 놀라운 상술을 발휘한 주인아저씨에 대해서는 기억할 수 없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더라도, 그 때 보던 프로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내 어린 날이 그리 한가롭지 않은 탓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요괴인간 벰/베라/베로 같은 일본 번역 만화를 본 것도 그 집이었거니와, '여로'같은 드라마를 본 곳도 거기였다.
요즈음은 만화가 교보같은 큰 서점에 깔리는 것을 보면, 나는 늘 그 널빈지 바닥에 뚫린 옹이 구멍 아래 흐르던 개골창을 생각는다. 곧잘 10원짜리 동전이 빠져있기도 하였으니.....
그에 값하는 라면땅이라는 과자가 나온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다. 뽀빠이 아저씨의 넥타이가 남침하는 '북괴군'의 화살표를 그렸다는 둥 어쨌다는 둥 하던 이야기를 전해 듣기는 좀더 후의 일이겠고.
2001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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