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였던가?
"사랑을 잃은 소년은 글 슬픔을 노래할 수 있지만, 돈을 잃은 수전노는 그 슬름은 노래할 수 없다.
A heartbroken boy can sing, but a miser with a lost purse cannot.
라고 했던 이는. ( Lady Windermere's Fan, 오스카와일드 )
일상이 짜잔할 때, 누군들 수이 노래할 수 있을까? 시를 쓴다는 게 그러하다. 누군가를 위해서 울어줄 수 없는 이는, 시로 노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요즈음엔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한 선배시인은 종종 이런 말씀을 하시곤 하셨다.
"정 많은 년 갈보되고, 정 많은 놈 술보 된다."고.
신림동 골목의 한켠, 번화한 술집을 건너 조그만 포장 마차도 아닌 블록 틈새의 선술집에서
조기 한 토막으로 소주를 비우시면서, 정 많은 사내로서의 한 생을 그렇게 정리하셨다.
전라도 지방에선 인구에 흔히 회자 된다는 마무리와 함께.
중국인들, 특히 우리땅과 가차운 산둥상인들의 이야기엔
"간은 상해도 정은 상하면 않된다"라는 표현이 있단다. 일견 우리 정서와 맞는 듯도 하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서 사마천의 "사기", 화식열전에서 보이는 정서는 이와는 조금 차이를 보인다.
"벼슬도 않고, 명예를 멀리하며, 정치를 어지럽히지도 않고 남의 생활을 방해하지도 않고,
때를 맞추어 거래해서 재산을 늘려 부자가 되었다.
지혜로운 자는 여기서는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라고 화식열전의 서문은 적고 있다.
생활을 살피는 역사가의 안목은 봉건시대라한들 자본주의 시대의 통찰과 다르지 않다.
공자는 누구 덕에 먹고 살아 천하를 주유하며 인의예지를 논했으며, 부처 또한 뭇대중의 도움없이 팔정도를 펼칠 수 있었겠는가?
사마천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집이 가난하고 부모님은 연로하시고 처자식들은 밥벌이를 못할 지경이며,
그리고 명절이 되어도 조상에게 제사 지내거나 술자리를 마련할 돈도 없고
또한 먹고 마시고 입고 하는 기본적인 衣食住(의식주)도 마련하지 못하는 주제에
스스로 부끄러워 하지도 않는다면 그런 인간들에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우리가 대국중국의 대의 명분이라고 알고 있던 것들이 한 순간에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따지고 보면 대의 명분이란 것이 중국에 있던 것이 아니라,
기껏 중국의 산둥 지방 언저리의 정서를 우리땅에서 가공한 제3의 것이었다는 생각에 지식인의 폐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나 생각케 된다.
글쓰는 이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을 듯 싶다. 술보가 되든, 갈보가 되든.
사람 사는 곳에는 사람의 냄새가 있다.
일견 사마천의 이야기는 "돈"에 대한 이야기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정작으로 그것은 철저한 현실적 감각을 요구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정작으로 하고픈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 총총
'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극기 유감 (0) | 2002.08.15 |
---|---|
꿀꿀이 공책과 토끼털 귀마개 (0) | 2002.08.15 |
개골창 옆 만화방 (0) | 2002.08.15 |
보리밥 (0) | 2002.05.26 |
짜장면에 대한 짧은 생각 하나 (0) | 2002.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