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 글에서 만화방 입장권 얘기를 하다 보니까,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다.
종이 한 장 조차도 귀하던 시절, 아버지는 항상 그 공책만을 사오셨는데(공책값이 좋이 나갔다) 그것이 꿀꿀이 공책이었다. 그 공책은 당신의 사랑이셨다.
공책 겉장 귀퉁이에 조그마한 네모점선으로 오려낼 수 있는 딱지가 있었고, 그 갇힌 네모 속에 돼지 한마리가 그려진 노트였는데, 그 놈의 돼지가 웃고 있었는지는 통 기억나질 않는다.... 꿀꿀이 공책이었다.
기억에는 한 스무 장 쯤 모으면 새 공책 한 권으로 바꿔 준다는 딱지 였다. 지금의 통닭집 쿠폰 비슷한 것이었던 셈이다.
유독 그 공책은 다른 공책보다 두꺼웠고, 가격 또한 비쌌다. 겨우 겨우 어찌 어찌하여 스무 권의 꿀꿀이 공책을 다 채워 딱지 스무장을 채우기는 하였는데.....
이제 그 딱지를 들고 달려가야 할 곳은 '고바우 문방구'였다. 시장통을 주욱 따라 올라가면 '고바우 문방구'라는 가게가 있었고, 나는 그 공책 보다는 가게 앞 장터에서 토끼가죽을 벗기는 구경에 넋을 놓곤 하였던 기억이 있다. 가끔은 관절염에 좋다는 고양이 가죽을 벗기는 풍경도 볼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토끼털 귀마개가 원래 온전히 싸고 있었던 것은 그 선한 살이었다는 생각에 가끔은 섬뜩해진다. 비록 갖쟁이 할아버지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가죽을 벚겨낼 수 있는 재주를 가졌다해도.
세상의 모든 것은 자기 있던 그 자리에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 생각을 한 게, 그 때부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생명을 다한 모든 것은 그 태어난 곳, 땅 속으로 소리와 흔적 세상에 남겼던 빛까지 모두 거두어 가야 하는 것이라는 믿음도 함께 생겼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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