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고향마을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02. 8. 15. 02:06

오랜만에 초등학교-예전에는 국민핵교라고 불렸는데- 동창들을 만난 자리였다.

남한 산성 아랫말에 닭죽을 잘하는 곳이 있다기에 모였더랬는데. 문디 가시나들, 자기집 옆이라 정한 격이었다.

각설하고, 학교 가던 길의 풍경과 얽힌 추억담에 동동주 사발께나 비우고 난 후,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고향 마을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더랬다.

 

지금이야 개발의 바람아래 아파트와 신시가지로 바뀌었지만, 마을이름 '구이동' ''자는 옛''자가 아니던가.

당시에도 ''이동이 있었으니, 우리들의 자람터로서 그 마을 구이동은 낮은 집들과 살풋한 담장들이 어울린, 어린 눈에도 꼬옥 차는 아담한 곳이었다.

 

음식점 달력을 쭈욱 찢어서는 우선은 철길부터 그려넣고 보니, 예나 이제나 신작로와의 심정적 거리는 멀었나 보다.

방앗간 집과 가게집, 뒷 동네의 정자나무까지 기억을 새록새록 밟아 그려낸 지도는

어린 날의 나발 나발한 발품을 재며 달렸던 먼지길에 닿아 있었다.

 

앞 동네와 뒷 동네가 뚜렷이 구분되던 건 어린 날 우리들의 눈길이 높지 않았던 터일 것이고,

아랫말과 웃말이 갈렸던 것 또한 엇비슷한 연유였으리라.

 

정자 나무 공구리 너럭에서 낮잠을 자거나 숙제를 같이 했던 벗들의 기억이 새롭다.

 

어린 과학자들이 자라서도 과학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거니와,

나 또한 소시적의 꿈에서 하냥 벗어나 있다.

로봇을 만들고, 우주 정복을 꿈꾸었던 아톰과 철인 28호가 일본 만화였다는 것을 안 것은 나이 스물이 가까왔을 때였지만.

 

언제고 다시 한 번 더 그 지도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 때는 더 많은 코흘리개 벗들의 이름과 얼굴이 저 마다의 마당을 돌아 너웃이 살아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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