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 산 아래 살고 있는 터수라 산에서 나는 것들로 가끔 술을 담그는 호사를 누린다.
그것까지 없다면야 웰빙이 온갖 화두로 붙는 요즈음에 난곡 골짜기에 살 이유가 달리 있으랴.
한 3년 전에는 아카시아꽃으로 술을 담았더랬는데, 조금 비릿한 꽃 내음이 있어 묵혀 두었다.
그런데 그놈을 최근에 다시 꺼내어 맛을 보니, 예전의 비릿함은 가시고, 아카시아 꽃의 향만 묻어 나는 게, 더없이 깔끔한 맛이었다.
아카시아는 늘 지고나면 아쉬움이 남지만, 술에 남은 꽃은 살풋한 향기를 남겼다.
며칠 전에는 아내와 같이 엉겅퀴 꽃을 꺾으러 갔다. 웬걸 나만이 아니지 않은가.
할머니 한 분도 보리똥 나무 아래에서 알이 탱글탱글한 보리똥을 따고 있었다. 술을 담근댄다. 듣고도 아니 딴다면 안될 말이지.
나 역시 보리똥 한 웅큼 따와 술을 담았다.
설익은 푸른 빛과 잘 익은 붉은 보리똥의 조화는 술단지 안에서 화안하게 살아나고 있었다.
엉겅퀴 보랏빛이 도는 꽃술과 뿌리로도 술을 담구었다.
꿀병을 비우고는 씻지도 않고, 병에 붙어 남은 꿀과 함께 엉겅퀴 꽃술과 뿌리를 넣고는 소주를 부었다.
처음에는 꽃술에서 나왔는지 약간 보라빛의 술빛이 나더니만,
어제보니 뿌리에서 우러난 듯한 은근한 갈색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벗들을 불러 엉겅퀴 주를 맛볼 생각에 절로 흐뭇해진다.
'이발소 깨어진 유리창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자기에 담긴 마음 (0) | 2003.04.06 |
---|---|
책 꺼풀을 메기며 (0) | 2003.02.09 |
고향마을 (0) | 2002.08.15 |
태극기 유감 (0) | 2002.08.15 |
꿀꿀이 공책과 토끼털 귀마개 (0) | 2002.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