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 그늘 아래에서

경제강대국 흥망사, 킨들버거 - (그냥) 저물녘의 단상

산 그늘이 되는 나무 2022. 3. 26. 18:10

경제강대국 흥망사, 찰스 P. 킨들버거, 주경철 옮김, 까치, 1996 (2004) 읽고나서

 

 

경제 강대국이 어떻게 쇠퇴의 길을, 절대적이든 상대적이든, 걷게 되는지는 궁금한 주제였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처한 한국의 현실이 일정 정도는

그러한 저물녘의 노을 아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제조업에서 금융, 자본, 스포츠  및 연예의 중심으로 축이 이동한 점이거나,

귀족과 관료의 부흥과 계급 고착화, 화이트칼라 금융범죄, 

굳이 일본과 비교하자면 자기조직을 우선시하는 사법체계의 고착화와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치 권력의 세습,

거기다 사회경제적인 구조적 저출생, 그로 인한 역동성의 상실,

인구밀도의 시간적 변화량의 불변과 공간적 불평등과 이로 인한 예산의 불균등과 불평등,

주택과 토지를 통한 계급의 이동과 수익의 창출에 전 세대가 몰두하는 관심사가 된 점 등이 그러하다.

 

서방의 경제사가 익숙하지 않은 주제였지만 그 보다 관심을 끈 구절은 의외로 다른 쪽이다.

 

"(몇 년 전 국무부에서 나는) 직원들이 지리적인 구분으로부터 기능적인 구분으로

혹은 그 반대 방향으로 자주 - 대략 10년 마다 - 재편성됨으로써 최상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보았다."

 

사실이든 어떻든 킨들버거의 관찰에 따르면

그러한 조직의 재편성이 조직의 동맥경화를 막는,

요컨대 과거의 경험과 성공에 안주하는 경로 의존적인 경직성에 대응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지적했듯이, 재편성이 큰 흐름으로서의 쇠퇴를 막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쇠퇴의 시기를 늦추거나 재도약의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것이다.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거나 그 성공의 관성에 도취된 자기만의 독특함을 주장하기 전에 말이다.

 

실무에서는 프로젝트 별 조직과 matrix 조직이 늘 상충되는 대안이었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 있어서 미국 국무부의 조직개편은 쇠퇴를 예비하는 필요조건으로서 눈여겨 볼 대목이었다.

 

우리로서는 박정희 독재와 일본식 교육잔재로 통일된 중앙집중을 알게 모르게 선호하는 편에 있고,

(군 조직과 일본의 계서적 위계적 질서의 사회를 상기하라.)

대부분의 관료적 연구보고서는 그 결론에 무슨 수직적, 혹은 계서적 통합관리를 위한

중앙집중적 기관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데 익숙하다.

(그게 가장 쉽다. 쉬운 것은 언제나 답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분권이 불안한 그대는 중세적 인간이다. 전근대적 노예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중앙집중은 충분조건으로서의 "보완성"을 전제한다.

경직되거나 안주하지 않는 변화는 정답으로의 방향성을 담보한다.